대법원 신분등록 편제방안 한계 많아

인권단체들 “차별소지 커” 비판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5/01/17 [20:31]

대법원 신분등록 편제방안 한계 많아

인권단체들 “차별소지 커” 비판

김윤은미 | 입력 : 2005/01/17 [20:31]
앞으로 호주제가 폐지되면 호적 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때문에 어떤 신분등록제도가 채택되느냐가 관건이다. 호적부는 정상가족 및 부계혈통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차별적이었다. 또한 형제자매의 열람에 별 제한이 없어 이혼이나 입양 등 민감한 정보까지 손쉽게 공개되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기 쉽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때문에 이런 단점을 보완할 새로운 신분등록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대법원안, 여전히 정상가족형태 고수

대법원은 지난 1월 10일 ‘호주제 폐지에 대비한 새로운 신분등록 편제방안’을 내놓았다. 대법원의 방안은 1인 1적을 원칙으로 하되 가족부 일부 항목을 섞은 혼합형 방안이다. 1인 1적은 호주 대신 ‘나’를 중심으로 신분 등록부가 구성된다. 가족으로 합쳐져 있던 신분 등록이 개인별로 구성되는 셈이다. 때문에 여성은 결혼을 해도 남편의 호적으로 옮길 필요가 없으며 ‘나’의 신분 등록부에서 배우자 정보가 변경될 뿐이다. 또한 목적 범위에 맞게 가족 증명, 일반 증명, 혼인 증명, 입양 증명을 따로 발급하도록 한다.

그러나 가족관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가족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분 등록부에는 배우자와 위아래 1세대인 부모, 자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이 포함된다. 단 신분 변동 사항은 본인의 것만 기재된다. 물론 현행 호적부가 배우자와 부모, 형제자매의 출생, 결혼, 이혼, 입양 등 모든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혼합형에는 형제자매의 정보가 빠지며 부모, 자녀의 신분 변동 사항이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 정보가 대폭 줄어드는 셈이다.

게다가 가족 구성원이면 누구나 뗄 수 있었던 호적 등본과는 달리, 신분 등록부는 본인과 국가기관만이 열람할 수 있으며 그 밖의 경우에는 청구사유를 갖추어야 한다. 증명서 발급형태는 ‘목적별 공부’식 증명이다. 목적별 공부는 미국 및 유럽에서 사용하는 신분 등록 제도로 신분 등록부에는 최소한의 정보만 등록하고 신분 변동 사항은 출생, 혼인, 사망 등 사건 별로 편제된 별도의 공부를 만드는 방식이다. 대법원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없는 목적별 공부안은 행정적 효율성이 떨어지므로 증명서 발급에만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모, 배우자, 자녀를 구성원으로 하는 정상가족형태가 기록되는 한 한부모 가족이나 독신가족, 이혼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은 여전히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혼합형이 담고 있는 개인정보는 이전에 비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정보량이 많다.

또 혼합형은 여전히 신분 등록에 가족관계가 필요하다고 전제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신분 증명을 위한 기본 요소로 가족을 동원하지 않는다. 이는 신분 증명을 하는 데 있어서 가족관계가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오히려 개인의 가족 관계는 프라이버시의 측면에서 각 개인이 보장 받아야 하는 권리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편 증명서 발급에 있어서도 청구 사유를 모두 갖출 경우 기존의 호적부와 비슷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정보 유출을 방지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결국 대법원은 원칙으로 양성평등과 개인정보보호를 내세웠지만 실제로 ‘국민 정서에 부합 하는가’와 ‘행정적으로 효율적인가’만을 따졌던 것이다.

목적별 실현연대와 민노당, 대법원안 비판

목적별 신분등록제 실현연대(이하 목적별 실현연대)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의 절충안을 비판하고 목적별 공부식 도입을 주장했다. 목적별 공부식은 사건 별로 공부를 작성하며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지 않고 신분등록번호를 따로 부여하므로 불필요한 개인정보의 노출을 억제할 수 있다. 또한 가족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별의 소지가 적다. 사실 정보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을수록 남용되기 쉽다.

민주노동당에서도 논평을 통해 대법원의 안이 현존하고 있는 호적부 양식으로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다산인권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7개 인권단체들도 ‘차별’ 위험이 크다며 비판 성명을 냈다. 또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 레즈비언인권연구소 등 전국 4개의 여성성적소수자 단체 연대체는 목적별 실현연대의 ‘목적별 공부’안에 대한 지지성명을 냈다.

목적별 실현연대가 제시한 목적별 공부안을 살펴보면, 목적별 공부는 신분등록부와 혼인등록부로 구성된다. 각 목적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담고 있다. 신분등록부에는 신분등록번호, 이름, 생년월일, 출생적, 신고일, 부기번호 항목으로 구성된다. 개명, 정정, 신분등록번호변경, 사망 등 신분변경 사유가 있을 때, 신분등록부에는 변동된 최신의 내용이 기록되며 그 이전의 정보는 별도로 관리된다. 혼인등록부에는 혼인등록번호, 이름, 신분등록번호, 혼인연월일, 신고일로 구성된다. 두 공부는 신분등록번호를 통해 검색이 가능하며 신분등록부는 출생적으로도 검색 가능하다.

현재 호적제는 전산화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이제 이 자료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목적별 공부를 도입하나 대법원식 혼합형을 도입하나 비용, 시간은 비슷하게 든다고 한다. 대법원에서는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며 행정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어서 목적별 공부를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국민’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정상가족이 아닌 형태의 가족들, 가족관계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 개인 정보를 보호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대법원 안은 호주제와 마찬가지로 차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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