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등록제, “최소한의 정보만을 담자”

긴급토론회 ‘목적별 편제냐 1인1적제냐?’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5/01/24 [16:31]

신분등록제, “최소한의 정보만을 담자”

긴급토론회 ‘목적별 편제냐 1인1적제냐?’

김윤은미 | 입력 : 2005/01/24 [16:31]
“장애인 독신가구, 비혈연 공동체, 동성애가구 등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가족의 권리를 보장하라.”

‘목적별 신분등록제 실현연대’는 21일 ‘목적별 편제냐, 1인1적제냐?’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새로운 신분등록안을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 특히 현 가족중심적인 제도 하에서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법원안, 다양한 가족현실 배제한다”

현재 민법개정안은 유예기간을 2년밖에 두지 않고 있는데, 각 개인별 장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대안이 시급히 요구된다. 그러나 새로운 신분등록제는 호주제 폐지의 결과다. 때문에 새로운 신분등록제는 호주제가 포괄하지 못한 다양한 가족관계를 포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개인정보유출피해가 날로 급증하고 있는 만큼 개인정보인권 보호에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목적별 신분등록제 실현연대’ 활동가 타리씨는 우선 “가족해체담론이 성차별적”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가족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가족관계를 새로운 신분등록부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타리씨는 “이혼율 증가, 출산율 감소 등의 현상이 가족해체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주장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을 가족해체의 원인으로 돌리는 성차별적 담론”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타리씨는 “국민들이 가족해체를 우려한다”라는 표현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동의하는 듯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라는 형태는 모든 신분등록부에 적용될 만큼 일반적인 것이 아니며 이혼, 재혼가족(소위 결손가족) 및 장애인 독신가구, 비혈연 공동체, 동성애가구 등 다양한 가족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타리씨는 앞으로 이 같은 다양한 가족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안을 사회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는 만큼 새로운 신분등록제에서도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윤현식 정책연구원은 각 신분등록안들의 개인정보 보호의 실효성을 점검했다. 윤현식씨는 우선 대법원이 목적별 공부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대법원안의 경우 신분등록 원부에는 가족관계를 비롯해서 매우 많은 정보가 집중되어 다양한 증명부 발급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포함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질적으로 정보량에 있어서는 가족부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정보 남용의 가능성은 여전한 셈이라는 것.

윤현식씨는 “개인정보 보호의 원칙은 필요 최소한의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인데 이에 따르려면 목적별 공부가 적합하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추진될 개인정보보호법은 민주노동당안과 정부안 모두 주민등록번호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각 공부간 부기번호를 이용하는 목적별 공부가 더 낫다”고 설명했다.

가족부 도입은 필연 vs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때문

대법원 법원행정처 권순형 법정심의관은 “목적별 공부안에서 대법원안이 착안점을 찾은 만큼 목적별 방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장점을 최대한 반영했다. 유럽의 경우, 목적별 공부를 사용하나 친족관계 파악이 곤란하다는 필요성 때문에 가족부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족관계를 표시하는 것은 형법상 문제, 보험 및 연금수령문제, 소송대리자 문제, 근친혼 등을 다룰 때 가족관계의 손쉬운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목적별 도입은 한계적이라고 지적했다.

권순형씨는 토론회 발제자들이 지적한 대로 “개인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등본 발급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법률적으로 규정하여 증명서 발급을 ‘필요한 사항 및 일부증명’만으로 한정하여 원부 두더라도 제한을 둘 수 있으며, 본인의 경우도 일부 증명만 발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은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상속 개시, 근친혼 문제, 친권자 확인문제, 보험수령, 소득공제, 친족상거래, 친족간 법정대리 등에서 증명이 필요한 것은 어떤 특정인과 다른 사람의 관계가 해당 친족범위 내인가를 증명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모든 가족관계가 드러날 필요가 있는 경우는 상속시다”라고 반박했다.

또 “대법원안도 이전에 비해서는 진보적이지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고려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법률상 증명이 꼭 필요한 경우만을 담아보자는 발상이라면 목적별 공부에 추가적으로 몇 가지 증명방식을 더하면 된다는 것이다.

토론회에선 그 외에도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변화가 사회적으로 잘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지적됐다. 혈연관계가 아니면 가족이 아니라는 통념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 X파일’ 사건처럼 개인정보가 무작위로 수집될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행정적인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개인정보 수집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제기됐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