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대체 대학은 무엇인가

‘대학교육’을 논하기에 앞서 거쳐야 할 질문

금오해령 | 기사입력 2005/01/31 [15:25]

우리에게 대체 대학은 무엇인가

‘대학교육’을 논하기에 앞서 거쳐야 할 질문

금오해령 | 입력 : 2005/01/31 [15:25]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대학가 운동사회의 화두 중의 하나가 ‘대학의 공공성 쟁취’였다. IMF 직후에는 동결되었던 대학 등록금의 큰 폭 상승이 예고된 것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엔 가계가 어려워진 학생들이 많은데다, 청년 실업 문제와 맞물려 휴학생들이 속출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교육은 사회의 책임이고, 돈 때문에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 당해서는 안 된다는 매우 타당한 이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있었다. 대학교육은 ‘고등교육’에 속하고, 그 고등교육에 대해서까지 사회가 어디까지 공동으로 부담을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이 고민은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이미 ‘필수적인 특권’이 되어버린 대학 졸업장에 대한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소위 “수도권 명문대”에 재학 중이고 그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있던 몇몇 지인들에게 다음과 두 가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사회가 전면적으로 책임을 지더라도 경쟁을 통과하고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검증된 사람만이 대학에 간다고 치자. 그러면 지금의 상황에서 그 교육을 받은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릴 것이다. 그러면 그 고등교육에 투여되는 엄청난 자원을, 대학을 선택하지 않거나 선택할 수 없었던 사람들까지 포함한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이 정당한가?”

“교육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대학들이 원하는 사람에게 공공재로서 경제적 부담 없이 열려있다고 하자. 그래서 당장 내년부터라도 그 어느 대학도 서열도 차등도 없는 하나의 대학으로 여겨진다면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첫번째 질문은 “대학교육이 이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평등을 위해서 당신 자신이 가진 특권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던진 필자도, 이 질문을 받은 지인들도 이미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한국에서 대학교육은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등교육’의 역할조차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조차도 의심스럽다. 또한 지식인이라던가 명문대, 교육의 사회 환원이라는 식의 단어가 얼마나 많은 기만들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그간 한국의 대학교육에 대한 우려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육이 무너진다”, “대학의 취업준비 학원화”, “인문학에 내려진 사형선고”와 같은 수식어들은 이미 익숙해졌다. 경영학 복수전공생이 한 학교의 1/3, 1/2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학부제 실시 이후 소위 비인기학과의 학생가뭄 현상 같은 것들, 그리고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대학원에서의 교수-학생간의 위계와 하청구조, 착취의 문제는 공공연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대학교육의 구조, 내용과 질 만큼 우려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대학교육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학벌/학력 사회의 문제들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를 졸업 후, 진학하지 않고 기술을 배워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 하나를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대학교육과 상관이 없는 일이어서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당시 그저 안이한 대학생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던 필자는 왜 내가 대학에 다니고 있는지 설명할 언어가 없음에 당황해야 했다.

 
그리고 약 5년이 지나서 다시 만난 그 친구는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잘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말을 덧붙였다.

“난 지금 이 일이 좋고, 대학 졸업을 했어도 이 일을 했겠지. 하지만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해. 대학을 갔었어야 했나 보다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되물어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대학은 그저 교육기관이라는 원론적인 말이 그 친구에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은 매우 기본적이다. 왜 한국사회는 그렇게도 대학입시와 대학졸업장에 목숨을 거나? 어떤 종류의 일에 대학교육이 꼭 필요한가?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이 가지는 의미란 무엇인가?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고 사회의 직간접적인 지원 받는 이 교육기관은 사회에 어떤 환원을 해야 하는가? 누가, 무엇을 잃기 때문에 이 대학을 둘러싼 모순적인 구조는 무너지지 않고 계속 지탱되고 있는가? 우리에게 대체 대학은 무엇인가?

사회가 교육을 어떻게 지원하고 책임져서 사회 구성원 교육권과 평등권을 보장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동시에, 반드시 끊어내야 할 고질적인 병폐의 고리가 한국의 대학 뒤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그토록 존경 받는 사람들인 교수님과 박사과정 학생들이 국가에서 지원받은 연구비로 단란주점에서 뒤풀이를 했다는 식의 얘기, 어딜 가나 ‘명문대’를 중심으로 한 출신 학교별로 줄을 서야 해서 도무지 낄 곳이 없다는 하소연, 대졸직원과 같은 일을 하는데도 ‘고졸’이라는 딱지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넋두리가 들려오는 한, 그리고 수능시험 하루에 “평생이 결정된다”는 훈계를 들으며 끝없는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청소년들이 있는 한, 한국에서 ‘대학 교육’ 그 자체를 논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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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지상 2005/05/02 [12:28] 수정 | 삭제
  • 정말 깊이 공감이 되는 군요. 제 블로그에 기사를 링크 시킵니다. 트랙백을 걸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제가 잘 몰라서요..ㅋ~ 멋진 기사입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기사의 맥락과는 조금 다르지만) 전 대학사회를 비롯해 이 사회의 평가제도 자체가 아주 싫어요.
  • ear 2005/02/01 [21:24] 수정 | 삭제
  • 대학교육은 미처 생각 못했지만, 학교교육 얘기하다보면 사회의 너무 많은 영역의 문제들이 다 얽혀있어서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가 어려워집니다. 대학교육도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다른 문제들이 아귀가 안맞을 것 같아요. 대학이 뭐길래.. 이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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