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빙의 자격은 외모?

노동시장은 프로크러스테스의 침대

이미영 | 기사입력 2005/02/07 [15:51]

[기고] 서빙의 자격은 외모?

노동시장은 프로크러스테스의 침대

이미영 | 입력 : 2005/02/07 [15:51]
백수생활이 2년째 접어든다. 오래 전부터 백수라고 느꼈지만, 학교 다닐 땐 어쨌든 학생 신분이었으니 그렇다 치자. 졸업하고 입사한 출판사에선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공식적인 절차도 없이 해고를 당했다. 어느덧 서른을 내다보는 나이가 됐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이 노동시장 근처를 배회하는 신세가 됐다.

부모님 집에서 먹고 자는 것도 송구스러운데 용돈까지 받아 쓸 순 없다. 내가 인간 구실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책이 밀려왔다. 최근에 알아본 일자리는 아르바이트뿐이다. 나의 조건에서는 아르바이트도 괜찮은 곳을 구하기가 어렵다. 집 부근과 학교 주위에서 일할 사람 구한다는 광고를 훑고 다녔다.

다단계의 유혹이 심했지만, 주위에서 그거 하다가 인간관계까지 파탄에 이르렀다는 정보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뿌리쳤다. 백화점이나 상가 판매원 자리를 노렸지만 나에겐 무리였다. 왜냐하면 외모가 걸렸기 때문이다. 몇 번 거절을 당한 후에야 화장품이며 옷 가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평균 이상의(?) 몸매와 미모의 소유자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내 나이에 적합한(집 앞 편의점은 청소년들만 상대한다) 술집이나 까페의 서빙 자리를 알아봤다. 상대적으로 외모를 안 따지겠거니 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대학 주변의 까페와 술집에 면접(?)을 보러 가면, 주인은 나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죽 훑어보고는 “이미 사람을 뽑았다”는 뻔한 거짓말을 하고 눈을 돌려버렸다. 그 앞에서 “그럼 왜 사람 구한다는 푯말을 붙여놓았냐”는 순진한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어떤 술집에선 나이가 몇 살인지 묻고는, “우린 대학생만 뽑는다”는 거절 이유를 대기도 했다. 며칠을 그렇게 거절 당하고 나는 기가 죽었다. 생각보다 내가 처량하고 볼품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밥상 앞에서 엄마의 얼굴을 보고, 지금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죄송하단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알음알음 아르바이트 자리를 부탁하다가, 이제 마지막이다 하는 심정으로 들어갔던 곳에서 내게 기회를 줬다. 친구가 자주 다닌다는 까페에 서빙 자리가 빈 것이었다.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긴 했지만 내게 그런 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까페 서빙 아르바이트 자리 구한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라니!

하루 이틀 일을 익히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서빙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삼일 째 되던 날이었다. 나를 고용한 사람은 실제 까페 주인이 아니라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날은 마침 주인이 까페를 방문했다. 새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 받은 그 주인은 이전에 모든 주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나는 잠시 인사를 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주인이 가고 나자 나를 고용했던 사람이 너무나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불러냈다. “저기…” 요지는 그랬다. 서빙 삼일만에 나는 해고를 당한 것이다. 이유는 내가 “너무 어려 보여서”라고 했다. 서른이 가까워오는데, 다른 곳에선 나이 너무 많이 먹었다고 안 쓰는데, 어려 보여서 자르겠다니. 별 희한한 이유도 다 있다.

그 곳을 나서면서 나는 오바이트가 쏠릴 만큼 화가 났다. 단정하게 보이려고 동생에게 정장까지 빌려 입었는데,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그냥 죽으라는 소리냐, 더러워서 못 살겠다, 한강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지금의 내 심정이 아닐까, 집 앞에 도달했을 땐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불어있었다.

실업문제에 대해 떠들썩한 뉴스를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너네 이런 거 알아? 나는 아르바이트 실업자다.’ 세상이 그렇다. 노동시장이란 게 프로크러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같다. 정해진 침대 크기에 몸이 안 맞으면 죽인다. 직접 안 죽이고, 스스로 죽게 만든다는 게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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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반 2005/11/19 [14:36] 수정 | 삭제
  • 이틀동안 역 근처에 있는 모든 술집과 카페에 찾아다니며 구직활동을 펼쳤는데 냉큼 다 떨어졌었거든요; 그 이후로 서빙 알바는 두려움 부터 와요.
  • chip 2005/02/12 [02:36] 수정 | 삭제
  • 읽는 저까지도 울화통이 치미네요.
  • 에니비 2005/02/11 [19:47] 수정 | 삭제
  •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이뿌고 잘생긴거 좋아하는건 인간의 본능..(원숭이도 그러니 동물의 본능인가 쩝..)
    서비스업에서 외모따지는건..매출과 연관이 있다보니..-_- 외모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자신만의 다른 장점을 개발해서 어필하는게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 바람처럼 2005/02/10 [01:57] 수정 | 삭제
  • 엊그제인가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 보니깐 원숭이 사회에서도 외모가 중요하다고 하니... 섹시한 암컷원숭이나 늠름한 리더 원숭이가 있는 사진에 많은 원숭이들이 몰려들었고 볼품없는 원숭이사진은 거들떠도 않봤다고 하니.... 좋은 외모를 타고 태어나는 것도 복일런지.....
  • 흰 손 2005/02/09 [03:00] 수정 | 삭제
  • 일용직이라고 할 수 있나? 일당으로 계산해도 하루하루 돈을 받는 게 아닐텐데.
    아무리 알바라해도 적어도 한 달은 써야하는 것 아닌가요?
    잔인한 세상이죠. 그 주인 혼자 유별난 사람도 아닐 것 같네요.
  • S 2005/02/08 [16:04] 수정 | 삭제
  • 암담하네요.
    외모중심사회의 비극...
    아르바이트도 못하고..
    나이제한같은 것도 암암리에...
    너무 무섭네요.
  • 유리 2005/02/08 [00:10] 수정 | 삭제
  • 아르바이트 채용조건이 용모단정이라나.
    근데 이쁜 게 단정한 거죠.
    그니까 성형수술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견적 뽑으라는 말이 유행이 된 것 같아요.
    너무 속상해서 어쩌요.
  • .... 2005/02/07 [21:42] 수정 | 삭제
  • 서빙도 스타일과 미모를 많이 보죠.
    아르바이트도 인맥없음 못 하구..
    참...... 뭐라 할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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