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김홍수영님은 ‘노숙인 사망 실태조사 및 근본대책 마련을 위한 연대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노숙인을 둘러싼 문제는 IMF 경제위기 이후부터 사회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면 노숙인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임시거처를 제공하는 응급구호와 이들의 취업을 유도하는 자활사업에 지원의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여전히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인의 수는 예상만큼 크게 줄지 않았다. 인권운동단체와 학계에서는 노숙인을 임시적인 구호대상으로만 규정하기보다는,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적 소수자’로 인식하고 이들의 ‘사회권 보장’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숙인의 인권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와 같은 지원 프로그램들은 권리보장보다는 시혜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통계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기존의 인권항목들에 비추어 노숙인들이 어떠한 권리를 침해 당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폭로하는 방식이나,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정부의 지원을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이들의 인권실태를 깊이 이해하거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먼저, 노숙인의 인권을 ‘사회적 배제’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첫째, 노숙인을 옹호해야 할 인권개념 자체가 이들을 배제하기도 한다. 프라이버시권을 예로 들어보면, 프라이버시권은 공적 세계로부터 사적 세계를 보호하는 권리다. 따라서 사적인 공간 없이 공적 공간에서만 부유해야 하는 노숙인에게 프라이버시권은 매우 생소한 것이 된다. 따라서 노숙인의 프라이버시권이 침해 당했다고 말하기보다는 프라이버시권의 개념 자체에서 이들이 배제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노숙인의 실상에 가깝다. 둘째, 노숙인은 집을 잃는 사건을 갑작스럽게 경험하고, 그 이후 어떤 상태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노숙이라는 상황에 처하기 이전부터 사회적 한계계층에 속했고, 따라서 노숙 이전부터 이미 많은 권리들을 박탈당하는 ‘노숙에 이르는 경로’를 밟는다. 노숙인의 인권실태를 계측하는 연구들은 특정한 시점에 이들의 상태를 조사하고 이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숙인에게 있어서 노숙 자체는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셋째, 노숙인의 인권실태를 개선하려는 복지정책에 의해 이들의 자율성과 존엄성이 손상되기도 한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사회가 대처하는 방식은 이들을 울타리 밖으로 추방하거나, 아니면 이들을 이등시민으로 울타리 안에 포섭하는 것이다. 복지수급자를 “시혜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을 경험했던 소수자가 다시 사회적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여전히 이들은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노숙에 이르는 경로’ 노숙에 이르는 구조적 경로는 도시빈민 집단이 주거지를 옮겨온 역사를 통해서도 그려볼 수 있다. 1960년대 서울로 이주해온 도시빈민들은 청계천과 같은 ‘도심 내 하천’에 무허가 판자촌을 짓고 살았다. 하지만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게 되자 정부는 1970년대 중반 ‘정착지조성이주사업’을 통해 주거빈민들을 신림동, 봉천동, 상계동, 상도동, 미아동, 정릉, 금호동과 같은 ‘도시외곽’으로 집단 이주시킨다. 이렇게 조성된 곳이 바로 달동네다. 달동네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이주를 유도하였기 때문에 일명 ‘허가받은 무허가 정착지’로 불렸다. 따라서 달동네에서는 주거의 합법적인 전매와 전대행위가 가능했고 주민등록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팽창으로 이 지역의 토지 수익성이 높아지게 되자 198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판자촌들이 강제로 철거되기 시작했다. 재개발사업은 집단을 이루고 살던 빈민주거를 ‘도시 곳곳’으로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나마 경제력이 있는 일부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이나 지하주거, 옥탑방을 구해서 이사를 하였고 이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나대지, 체비지, 자연녹지, 공원녹지처럼 개발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은 마지막 유휴지를 찾아 도시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강남구, 송파구, 서초구에 조각조각 산재되어 있는 ‘비닐하우스촌’은 이렇게 형성된 신종 무허가 빈민촌이다. 1980년대 이전에 건설된 달동네와 달리 비닐하우스촌은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한 ‘불법 점유지’였고, 따라서 원칙적으로 합법적인 매매나 주민등록이 불가능하게 됐다.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나 공공, 민간임대주택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나마 도시의 촘촘한 망사조직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든 도시공간에 정착할만한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도시공간의 끝자락에서 부유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한계공간이 바로 쪽방이나 만화방, 다방, 사우나 그리고 지하철역과 공원, 거리인 것이다. 물론 건강악화, 알코올중독, 정신질환, 실업, 가정해체와 같은 개인적인 요인에 의해 노숙에 이르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노숙에 이르는 경로를 도시빈곤계층의 역사를 통해 짚어나가다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하천, 달동네, 비닐하우스촌, 공원에서 거주하는 행위는 모두 무허가로 공유지를 점유한 행위이지만, 시장과 행정기관이 이를 묵인하느냐 처벌하느냐에 따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거빈민에 대한 처우와 인식이 달라진다. 또한 노숙에 이르는 집단적 경로는 노숙이 한 개인의 삶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것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달동네, 비닐하우스촌, 그리고 쪽방처럼 저질주거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거빈민층들은 현재 노숙을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도시개발이 고도화될수록 주거빈민에게 허용되었던 제도적 묵인과 사회적 관용이 점차 약화되기 때문에 이들이 언제 노숙이라는 사건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노숙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수의 주거빈민들은 노숙에 이르는 경로를 위태롭게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단계적, 장기적 안전망 고민해야 한 개인의 생애사 속에서도 노숙에 이르는 경로를 살펴볼 수 있다. 상당수의 노숙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장시간에 걸쳐 저학력이라는 교육권의 박탈, 저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이라는 노동권의 박탈, 건강악화와 방치라는 건강권의 박탈을 경험한 이후, 최종적으로 노숙생활로 전락한다. 노숙이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연속적인 침체 과정이라면 자활지원사업이나 귀향사업처럼 단기지원을 통한 ‘원상복귀’라는 목표는 성공할 수 없다. 즉 노숙에 이르는 각 경로에서 단계적, 장기적 안전망을 고민해야 한다. 상당수의 노숙인은 끈기 있는 지원이 필요한 무기력, 저학력, 불건강 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노숙인 복지에 배분되는 재정수준은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노숙인이 하루아침에 노숙에서 탈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구제불능”이라고 비난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노숙인의 인권은 거리나 불안정 주거에서 생활하는 그 순간에도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이들에 대한 복지혜택이 온정주의와 관료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또 다른 인권침해를 파생시키기도 한다. 물론 이런 지적이 자칫하면 노숙인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무간섭주의’나 ‘무개입주의’로 빠질 우려도 있다. 그러나 길거리나 지하철 역사에서 만나는 일부 노숙인의 상태는 주체의 자율성을 따지기에는 너무도 열악해서 생존을 위한 하향식 개입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사회복지적 지원과 노숙인의 인권문제에 다가설 때, 개인이 처해있는 실제 상황을 고려하면서 현실적 차원에서 조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구체적인 사례별로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의 관건은 현재까지 인권의 개념과 논의가 소수자인 노숙인의 상황과 존재를 설명해주지 못해왔다는 것을 반성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의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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