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학교 안에서 많은 동성애자 청소년들은 혼란과 좌절감을 느끼며, 더 나아가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마저 갖게 된다. 이들 중 대부분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 채 가출, 자퇴, 성적부진, 우울증, 자살시도 등을 경험한다. 아무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가능한 고민이라고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기관의 대응과 변화가 매우 절실하게 요구된다.
‘철수와 영희’만 등장하는 교과서의 폐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교과서 개편이다. 직접적으로 동성애자를 비정상, 혹은 일탈로 규정하는 대목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사회 구성원에 동성애자가 단 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편견을 강화시키는 데 한 몫을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 속에는 동성애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전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관련 단체에서는 초, 중, 고 정규 교과서에 성 소수자의 존재를 등장시키는 것이 “사회에서 성적소수자가 함께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제언한다. 또한 이 단체들은 성교육 교과서는 물론 국어, 사회, 도덕, 윤리 교과서 등의 교과서 전반에 걸쳐 성 정체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내용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부대표는 “기본적으로 교과서 내에 ‘철수와 영희’ 식의 이성애자뿐 아니라 동성애자들도 등장해야 하며, 수업시간 내에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성 정체성’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의무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한채윤 부대표는 “성교육 관련 매뉴얼의 경우만 봐도 ‘두 남녀가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힘세고 멋진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새로운 생명을 만듭니다, 무럭무럭 자란 생명은 어느새 이성을 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나이가 됐습니다’ 식으로 작성된 것을 본 적이 있다”면서, ‘이성을 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나이’로 성장을 묘사하는 것은 강고한 이성애중심주의라고 비판했다. ‘이성간 사랑’만을 정상적인 성장의 과정으로 전제 함으로써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고민은 발 디딜 틈이 없게 된다. 동성애자 차별환경개선 위해 교사교육 필요 한 부대표는 “학생들이 실제적으로 체감하게 되는 학교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학교 급훈이나 게시판, 복도에 걸린 포스터나 문구 하나하나 동성애자를 차별하거나 조장하는 교육환경은 아닌가 점검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교사 교육을 비롯한 교육관련 종사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정욜 사무국장 역시 “성 정체성 교육은 전반적인 인권사안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상담’이 함께 진행될 수 있는데, 학교 내에서 교육이나 상담을 진행시키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상담기법 교육이 우선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사와 상담가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학생들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물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교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욜 사무국장은 교육에 있어 무엇보다 “성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서, 상담은 일대일 관계로 이뤄지는 것인 만큼 ‘이건 이거다’ 지시하기보다 학생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성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에서 학생이 직면하게 되는 고민과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 태도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그 다음으로는 “가족이나 또래집단에 노출될 위험을 대비해 ‘비밀보장’의 원칙을 지키고 기록화하지 않는 것, 일정 기간 동안 한 학생을 담당, 관찰 상담을 진행하는 것 등”이 필요하고, 구체적인 원칙들도 인권교육 범주 안에서 숙지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교사의 노력이 자긍심 형성 계기가 돼 정욜 사무국장은 중학생 레즈비언의 상담사례를 통해 다시 한번 교사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 2때 이 여학생은 담임교사에 의해 성 정체성이 공개되어 고통을 받았다. 걱정이 된 교사는 부모에게 연락을 했고, 금새 또래집단으로까지 소문이 퍼진 것이다. 이후 이 학생은 중 3이 된 이후까지 가출 등 방황의 시기를 거쳐야 했고, 결국 정욜씨는 그 학생과 학생의 담임교사와 함께 미팅을 가졌다. 학교 구조상 교사가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었지만, 몇 차례 면담을 통해 학생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해주었던 교사에 대해 학생의 신뢰감은 매우 높아졌다. 이는 그 학생으로 하여금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정욜 사무국장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상담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현실이다. 또 설령 교사가 도움을 주고 싶어해도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학교 시스템도 견고하다”면서 “청소년들은 학교 내에서 고민을 소통할 사람을 원한다”고 강조한다. 정욜 사무국장은 “청소년들은 작은 도움에도 자긍심을 찾을 수 있는데 소통의 접근성이 멀고 단절만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그 단절을 연결시켜주는 것부터 시작해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제도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지승희 상담교수는 2003년 10월 16일 특수상담사례발표회에서 “성 정체성 고민을 하는 청소년을 위해 상담자, 학부모, 교사의 편견 없는 태도가 필요하다”(일다 2003년 10월 20일자 보도)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단지 동성애자를 배려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가질 수 있는 교사지침서 및 교사교육 과정의 개편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성애자 관련 단체들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했듯이, 교육기관에서 성적소수자 차별예방을 위한 인권교육을 의무화하는 강력한 정책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00년 9월 26일, 유럽의회는 각 유럽 정부들에게 학교와 의료기관, 군대와 경찰 등의 동성애혐오적인 태도들을 없애는 교육적 프로그램을 실시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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