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도 지역정당운동은 곧 ‘정치개혁’

일본 가나가와네트워크의 급진적 실험

윤정은 | 기사입력 2005/05/24 [09:26]

여성주도 지역정당운동은 곧 ‘정치개혁’

일본 가나가와네트워크의 급진적 실험

윤정은 | 입력 : 2005/05/24 [09:26]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여성정치인과 지역정당 조직인 가나가와네트워크 활동가 10여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시민사회로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기도 하고, 최근에 ‘마을 만들기’ 등 생태마을에 대한 논의와 함께 지역정치와 녹색정치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시점이기에, 이들의 방문에 더욱 관심이 모아졌다.

혈연, 세습 등 부패한 정치에 저항

여기에 더욱 중요한 의미부여를 할 것이 하나 있다. 가나가와네트워크는 ‘여성지역정당’이라 할 수 있다. 가나가와네트워크는 20년 전부터 남성정치인들의 활동과 차별성을 둔 정책과 조례제정 등을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펼쳐왔다. 또 그 성과를 바탕으로 여성정치인 45명을 배출했다. 여성정치세력화가 ‘여성정치인’ 중심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현재 한국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가나가와네트워크가 보여주고 있는 활동의 의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가나가와 현은 도쿄 남쪽에 있는 인구 850만 명의 현이다. 가나가와네트워크는 1980년 ‘생활클럽 생협’ 가나가와 조합원을 중심으로 22만 명의 서명을 모아 합성세제 추방을 위한 지방의회 직접청구운동을 전개했다. 이 저력을 바탕으로 1983년 처음으로 여성 시민후보를 내 시의회에 진출시켰다.

히야마 토모코(가나가와네트워크 공동대표, 현 오다와라시의회 의원)씨는 설립 배경에 대해 “일본 지방의회는 남성정치인들이 혈연, 세습, 지역 기업계와 각종 이권이 연결”돼 권력을 나눠먹고, “지역 실력자를 배후로 둔 남성정치인이 판을 치던 때였다”고 설명했다. 가나가와 현 여성들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남성정치’가 아닌 ‘생활정치’를 위해 “더 이상 기존의 프로 정치가에게 맡기지 않고, 지역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로컬 파티(지역 정당)”를 설립하고자 한 것이다. 이 활동의 모체가 된 것은 ‘살기좋은 마을 조성을 추진하는 모임’이라는 이름의 지역여성 정치단체였다.

이처럼 가나가와네트워크가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역사와 내용을 충실하게 다져온 것에 비해, 이들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지역주부들이 하는 환경, 복지운동 혹은 생협 활동” 정도로 그치는 경향이 짙었다. 중앙정치에 매몰된 한국에선 ‘지역정치’가 폄하되고, 정치투쟁이 강한 토대에서 생활저변의 시민운동을 ‘개량적’으로 보며, 남성중심적인 정치 무대에서 여성이 주축이 되는 정치에 대해 폄하했기 때문이다.

성평등한 노동정책과 복지정책 제시

이번 방문에서 가나가와네트워크 측은 “철저한 남녀의 역할분담에 입각한 사회제도”와 “남성의원과 지역의 유력자들로 인해 대충 넘어가던 일들”을 개혁하고자 하는 조직임을 분명히 밝혔다.

와타나베 사토모(‘레인보우 앤 그린스’ 스탭)씨는 ‘지역정치’를 논하는 한 토론회에서 한국측 참석자들이 거의 남성이란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사토모씨의 말에 이어, 곧바로 마유미 이마무라(가나가와네트워크 조사정책실 스탭)씨는 “가나가와네트워크와 여성운동과의 깊은 연관성”을 설명했지만 한국 측 참가자들의 이해는 턱없이 부족했다.

또 가나가와네트워크 참가자들 대부분 자신의 의견을 밝힐 때, 기존의 ‘남성’ 위주 정치풍토와 ‘성평등을 고려한 정책 지향성’을 설명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이라고 정확히 언어를 사용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한국 측 발표자들은 성인지적 관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지역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성별(젠더) 구분을 거의 하지 못했으며, 단지 지역정치를 중앙정치의 반대하는 대안적 개념 정도로만 보았다.

현재 가나가와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인 광역의원 3명과 기초의원 32명이 모두 여성의원으로만 이뤄진 것에 대해 한국측 참가자가 질문을 던지자, 유미코 토모자와(가나가와네트워크 NPO법인) 이사는 “선거 전 다양한 후보자를 받았지만 남성후보 중엔 우리가 내건 요건에 부합하는 후보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의 정치진출이 “정책결정 사항에서 남녀성비를 맞춘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 테마, 즉 사회보장, 육아,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여성이 남성보다 잘 한다는 것이 가나가와네트워크 활동경험을 통해 입증됐다”고 답했다.

한편 와타나베 사토모씨는 “정치의 장에서 남녀가 성별 역할분담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책결정 시에는 남녀의 성비뿐 아니라 다양한 지향성을 가진 그룹들의 대표가 비율적으로 참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나가와네트워크는 20년 역사와 앞으로의 정책 방향을 보더라도 ‘여성정치’가 중요한 키워드였음에도 그간 한국사회에서 그 핵심이 제대로 전달된 적은 없었다. 가나가와네트워크의 주요한 정책 과제는 “기존의 남녀 성역할 분담에 입각한 사회보장제도를 바꾸고, 성 평등에 기초한 노동정책을 제시하며,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보육 및 복지서비스 창출하고, 새로운 공공영역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들이다. 이를 위해 현재 “배우자 공제나 세대 단위의 연금 등 성별역할분업을 고정화해 온 제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