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얽힌 상식을 뒤흔드는 책

야마다 아카네의 <베이비 샤워>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5/07/11 [23:10]

결혼에 얽힌 상식을 뒤흔드는 책

야마다 아카네의 <베이비 샤워>

김윤은미 | 입력 : 2005/07/11 [23:10]
언젠가 친구와 타로 카드 점을 본 적이 있었다. 친구는 자신이 아이를 낳아도 괜찮을 것인가 라는 난제를 가지고 점을 봤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라도 태어나는 생명은 환영 받아야 한다.” 야마다 아카네의 소설 <베이비 샤워>의 마지막 문장을 본 순간 타로 점을 보던 친구가 다시금 생각난다.

내 친구뿐 아니라 대부분 여성들에게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일 듯싶다.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에서 경제적 문제까지 난제가 무수히 널려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꼭 엄마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자신이 아이를 키울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점검도 피해갈 수 없다. 생물학적 나이와 질병의 유무 또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아이란 결국 뜻하지 않게 생겨도 결과적으로는 좋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여성에게 아이 낳기란 정답이 없지만 고민해 볼 만한 문제다.

<베이비 샤워>는 임신 8개월 경에 임부를 둘러싸고 열리는 여자들만의 파티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소설은 색다른 가족의 품에서 자라난 주인공 ‘나’가 자신의 가족이 형성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나’는 자신의 가족이 색다를지라도, ‘베이비 샤워’의 자유로운 환영을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나’의 주장이 보여주듯, <베이비 샤워>는 핵가족 도식의 붕괴가 가시화된 현대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무엇이며, 사회는 이 여성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짚어보는 소설이다. 텔레비전 디렉터 출신의 지은이는 “결혼에 얽힌 현대인의 상식을 뒤흔들고 싶었다”고 당당하게 밝힌다.

지은이가 내세운 주인공은 이제 서른아홉 살이 된 비혼여성 미소노와 쿄코다. 두 여성 모두 방송계에서 전문적이지만 완벽하게 생계를 보장하지는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 결혼한 애인을 만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요리 프로그램 도우미인 미소노가 어느 날 아이를 갖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들의 일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미소노는 부유한 남편과 아이를 가진 완벽한 전업주부이자 요리사인 루리코로부터 “제대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라”는 충고와 함께 “아이를 만들지 않는 관계는 장난이며 무의미한 사랑”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듣는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라는 충고는 아무리 흔해빠진 정론이라 할지라도 비혼여성들에게 상처가 된다. 또한 미소노는 중국인 애인에게 ‘인종차별이 걱정되어 아이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현실의 벽을 실감한다.

한편 미소노 때문에 쿄코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여성이 아이를 가지는 문제에 대해 미소노와 쿄코가 나누는 대화는 결혼과 엄마 되기, 양육과 관련된 많은 담론들을 충분히 포괄한다. 유전과 모성애의 문제부터 ‘단독세대’가 점차 보편화 되어가는 현대 사회의 경향, 피임의 보편화와 출산율 저하의 문제까지 이들이 나누는 폭넓고도 핵심적인 대화는 지은이가 가족과 여성의 문제를 매우 세심하게 고민했음을 보여준다.

<베이비 샤워>의 문제제기 방식은 가볍고 산뜻하다. 쿄코는 프리랜서로 불안하게 살면서 ‘불륜’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현재가 금전적인 원조를 받지 않는 부분만 뺀다면 1백 년 전 “창녀”나 “첩”의 삶과 유사할 것이라고 통찰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도넛 가게의 쿠폰처럼 여자이기 때문에 받은 “엄마 되기 쿠폰”을 사용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조롱하다가도 ‘하고 싶은 대로 하자’는 미소노의 생각에 동의한다.

연애와 결혼, 가족, 아이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흔해빠진 정론이 아니라 당사자의 심리적 상태와 의지일 것이다. 가족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4인 핵가족의 모습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불륜’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가끔 상대 남자의 가정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하는 미소노와, 상대 남자의 성병 바이러스에 의해 자궁경부암에 걸린 후 누가 자신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는지 궁금해 하는 쿄코의 모습은 인상적인 비혼여성의 단면이다.

결국 미소노는 파리에서 건너온 게이 남자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가지게 되고,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 젊은 남자 츠요시와 결혼한다. 그러나 이들의 삶이 사회적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만은 않다. 주인공 ‘나’는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동성애 이야기를 하다가 학부모에게 혼나는 등 순탄치만은 않은 학교생활을 보낸다. 쿄코는 ‘불륜’이 상대 남자의 부인에게 들키는 바람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런 삶의 방식도 있다”는 쿄코의 주장은 지은이의 생각과 합쳐져서 믿음직스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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