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취업성형에 ‘반대’하지 않냐고?
여성주의와 성형수술
조이여울 | 입력 : 2005/07/26 [04:01]
<이 글은 월간 ‘작은책’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모 방송국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업성형’에 대한 찬반토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취업성형이란 말 그대로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반대’쪽 패널로 나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섭외담당자의 기대와 달리, 선뜻 섭외요청에 응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성형수술은 찬성/반대로 이야기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지요. 성형수술 자체가 갖는 문제점이나, 성형수술 붐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논하는 것은 좋겠지만, 성형수술을 찬반으로 이야기하면 마치 성형수술을 한 사람들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처럼 되어버릴 것 같다는 우려가 들었던 것입니다.
섭외담당자는 상당히 의외라는 듯이 “편집장님은 성형수술에 반대하지 않으시나요?”라고 재차 묻더군요. 글쎄, 이렇게 이분법적인 질문에 대해 현명한 답을 하려면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그 정도 선에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어쨌든 그에게 취업성형 찬반 토론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니 말입니다.
성형수술은 자기 몸에 대한 미움의 표시이기 때문에 ‘자존감의 상처’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화상을 입어 성형수술을 하든, 트랜스젠더가 성확정(성전환) 수술을 하든, 취직을 위해 미용성형을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여성의 미용성형이 대중화된 사회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보았을 때 성형수술은 ‘여성 몸에 대한 학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성형수술을 찬성 또는 반대로 이야기할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 수술을 해서라도 복구해보겠다는 데, 그 방식이 좀 걸리긴 해도 단순히 반대입장을 표할 문제도 아닌 것 같습니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내가 반대하는 것은 신체적 조건을 이유로 사람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며, 신체에 대한 획일적 잣대와 그 잣대대로 ‘정상/비정상’, ‘미/추’, ‘남성다움/여성다움’을 나누는 것,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그 기준에 맞추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세수대야에”, “저 무다리를 하고”, “뚱보야~” 식의 숱한 남성들의 비아냥이나, 아이들에게조차 “못생겼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대화도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유행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모든 업체들과, 몸을 변형하면 세상이 바뀔 것처럼 성형수술을 광고해대는 병원과 각종 매체들, 그리고 의류 사이즈를 점점 더 작게 설정하고 있는 패션, 의류업계도 폭력적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와 두 번째로 예쁜 여자가 등장하는 <백설공주>와 같은 동화들, 여성의 몸을 부위별로 나누어 채점하고 전시하는 각종 ‘예쁜 여자 선발대회’, 학생들에게 외모 꾸밀 것을 강요하는 실업계 고교 진학상담은 또 어떠한가요. 무엇보다 외모를 기준으로 한 채용을 ‘노동권 침해’가 아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로 사뿐히 용인해주는 이 사회가 폭력적입니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어떻게 ‘취업성형’을 찬성/반대로 이야기할 수 있으랴 싶습니다. 취직하려고, 구박 받지 않으려고, 지금보다 좀 더 대우 받고 싶어서 성형수술을 하겠다는데, 주위에 그런 친구가 있다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다시 생각해보라’는 것 정도지요. 성형수술을 하고 나서 후회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정보’ 말입니다. 성형광고에 가려진 ‘사실’들을 전달해줄 순 있겠지만, 성형수술 같은 걸 왜 하냐고 뜯어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 받기는커녕 외부로부터 자존감의 상처를 입어왔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신체를 미워하고, 변형시키길 원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현상. 그에 빌붙어 수많은 이들의 잇속들이 개입해 더욱 외모주의를 부추기고 끊임없이 악순환 되고 있는 과정. 이러한 구조를 ‘빙산’이라고 한다면 성형수술은 그 일각에 불과합니다.
물론 여성주의자로서, 성형수술을 둘러싼 이야기들 속에서 매번 갈등하게 되는 점도 있습니다. 사회에서 홀로 돌출해 나와 살지 않는 한 이 같은 문제에서 개인이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개인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무리지만, 그러나 성형수술과 같은 문제에 대한 여성들의 개별적인 저항도 역시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다만, 거의 대부분 여성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듯 가부장적 제도와 문화에 대응하는 여성들의 의지와 저항을 촉구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개별 여성들을 탓하거나 그저 눈에 보이는 현상을 나열하며 반대하고 개탄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취업성형’ 찬반 토론은 기업의 ‘외모기준 채용’에 대한 대책논의가 되었어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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