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탈북여성’으로 산다는 것

북한이주여성의 이야기-2

최이윤정 | 기사입력 2005/08/15 [22:23]

남한에서 ‘탈북여성’으로 산다는 것

북한이주여성의 이야기-2

최이윤정 | 입력 : 2005/08/15 [22:23]
홍지영(40대. 가명)씨는 1997년 4월 북한을 탈출해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왔다. 그 해 12월 남한의 여러 일간지에 13명의 탈북자 일행이 한국대사관에서 외면 받고, 결국 베트남 지뢰밭에 버려졌다는 기사가 보도된 바 있다. 홍지영씨는 바로 그 일행과 함께 1998년 3월 한국에 넘어왔다.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았던 홍씨는 무산 광산의 시멘트 생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로, 급성폐렴으로 생사를 오락가락하던 중, ‘중국에 가서 약만 쓰면 살 수 있다’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국경을 넘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당시 북한에서는 영양제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던 상황이며, 링겔 같은 것도 맞을 확률이 없어서 그냥 아프면 죽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상황”이었다는 것.

‘꽃제비’(굶주림 때문에, 가족에게 버려져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지칭하는 용어) 생활을 20여일 하는 동안, 주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아무도 안 보는 곳에 가서 죽는 게 가족들의 걱정을 더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죽을 결심까지 하며 두만강을 건넜다.

남한이라는 ‘낯선’ 곳에 오다

1998년 3월 남한에 들어온 홍씨는 당시 받은 문화적 충격에 대해 말했다. “지금은 북한의 전 지역 사람들이 남한사회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다 알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에선 ‘한국에 가면 죽는다’는 식의 선전 비디오를 많이 보여주던 때였다. 한국에 와서 놀란 점은 “남한에서는 저녁때에도 불빛이 번쩍거리는 것”이었다 한다. 북한에서는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저녁 땐 텔레비전도 보기 힘든 데, 남한에서는 밤낮으로 전기가 들어오는 게 신기하고 이상했다는 것이다.

큰 돈을 만져본 적이 없던 홍씨에게 남한에서 받게 된 돈은 하나같이 다 ‘큰 돈’으로 느껴졌고, 처음으로 자기 소유의 돈을 가져보는 것이라 무척 소중했다. 당시 정착금으로 약 천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홍씨는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랐다. 북한에서는 은행에서 적금이란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통장도 가지고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정착금을 받으면 다들 끼고 있었다”고 한다. 강의를 하고 받은 돈을 은행에 가지고 갔을 때 비로소, 적금을 들고 통장을 만들어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그가 남한사람들과 차이를 느낀 것은 언어문제였다. 홍씨는 “강의를 하던 중에 한 학생이 ‘북한사람들은 다 말이 빠릅니까?’라고 질문하면서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고 했을 때 너무 답답하고 억울한 생각에 남한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북한사람들이 남한사람들에 비해 말이 빠르고, 빠르다 보니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장 힘든 건 일자리 문제

홍씨는 “이렇게 남한사회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준비도 안 된 조건에서, 남한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와서 살다 보니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북한여성이 살아가면서 처음에 나올 때 아무런 능력, 기술, 조건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가자는 것이 힘든 건 당연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탈북자들이 와서 가장 크게 겪는 문제가 ‘일자리’라고 그는 주장한다. 홍씨는 “지방마다 시청, 도청, 이런 데서 모임을 가지면 시의원, 시장님들이 같이 주관해서 탈북자들의 애로 사항을 묻는데, 열이면 열 하나같이 취직문제를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기술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식당 일밖에 없다. 그것도 “오래 해야 5개월 정도며, 쉬다가 또 다른 식당에서 일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홍씨는 “취직하려고 해도 이력서 내고 면접을 볼 때마다 ‘배운 게 없다’, ‘북한사람들은 배운 게 없어서 무식하다’, ‘북한사람들이라서 안 된다’는 이유로 잘린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곳에 가면 조선족 취급을 하기도 하고, 월급도 안 주는 경우가 있거나, 색다른 눈으로 자꾸 보고, 식당에서 일할 때 남자들이 성희롱 식으로 몸도 만지고, 어디 가자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주위 탈북자들에게서 듣는다”고 밝혔다. ‘탈북여성’이 남한사회에서 일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이럴 때마다 한국에 와서 산다는 게 수치스럽고 중국에서 괜히 왔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고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북한 이주여성이 바라본 한국사회

이런 상황에서도 처음에 회사에 들어가 약 50만원의 월급을 받고서, 너무 대단한 돈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홍씨는 “북한은 남자나 여자나 직업에 귀천이 없고 남자 여자가 다 똑같이 일하는 사회인데, 여기서 일하면서 느낀 건 여자들이 쉬우면 쉬울수록, 일이 헐하면 헐할수록 더 헐하게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한에서 남자는 힘든 일을 하고 여자는 쉬운 일을 해야 한다는 관점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홍씨는 “무겁지도 않은 물건을 쏟는 일을 여자들이 절대로 안 하고 남자들이 하기를 기다리는 걸 보면서 너무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무겁지도 않은데 이렇게 하면 일이 빨리 되고 좋잖아요’라고 하면서 물건을 쏟으면서 일을 하니까, 다른 여자들이 ‘하면 버릇되는데’라면서 마지못해 하기 시작했던 적이 있다”고 자신이 일하던 직장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런 걸 보면 한국여자들이 마음에 안들 때도 있다고 한다.

사실 북한에서 여성들의 생활은 1990년대 이후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과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고달프고 힘들어졌다. “아직까지도 북한에서는 봉건의식이 높아서 남자들은 성격 급한 거, 다혈질인 거, 툭 하면 손찌검 나가는 거, 여자를 시켜먹는 거, 여자 등쳐 먹는 일 등이 많다”고 한다.

홍씨는 남한에 와서 남대문에서 장사하는 남성들을 처음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북한에서는 남자들이 그런 걸(상업) 한다는 것을 상상을 못했기 때문”이란다. 그는 “북한남성들은 손 털고 앉아서 여자가 해주는 걸 먹으려고만 하고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 게 없으며, 간혹 한국에 온 탈북자 남자들이 일하지 않으면서 어디서 얼마씩 주는 돈으로만 사는 모습은 바로 그러한 습관이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적으로 상처주지 말라”

남한에 살고 있는 북한이주민들이 남한의 주민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북한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정신적으로 정말 상처 받지 않게끔 해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물질적으로 절대로 도와달라는 얘기는 아니다. 마음으로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줘서 정말로 이 생활에 마음 놓고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홍씨는 자신이 한동안 이력서를 들고 면접을 보려 다녔을 때, “탈북자라면 왜 이렇게 경계를 하는지, 간첩도 아닌데 경계하는 데가 많아서 힘들었다”고 말하면서, “특별히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취직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그럴 때 같이 고민해주고, 면접 볼 때 이상한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갱상도사나이 2005/08/17 [21:48] 수정 | 삭제
  • 탈북 아주머니가 우릴 포용해야한다는 뜻은 아니구요. ^^;; 우리가 포용해야죠. 통일 대비해서 미리 미리 연습하는거라 생각하고... 그런데 ..아직 현실은 이 소수의 탈북인도 못받아들이는거보면 참...거시기 합니다.

    여성들이 대체로 편한일을 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가진건 제3자의 시각에서도 입증되기는 하는군요. 허긴 뭐... 그게 여성들만의 책임은 아니지만요.
  • pado 2005/08/17 [16:21] 수정 | 삭제
  • 식당 일하다가 남자들한테 성희롱 당한다는 얘길 주위에서 많이 듣게되네요.
    조선족이거나 외국인여성이면 더 쉽게 생각하고 고소 못할 것 같으니까 그런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남자들 왜 그 모양입니까.
  • 나선 2005/08/17 [07:10] 수정 | 삭제
  • 뭔가 남한사람과 달라보이니까요. 조선족과 말투도 비슷하고. 그러나 조금 다른데 말이지요. 조선족이든 북한사람이든 남한사람들이 무시할 권리는 없지요. 뭐가 그렇게 잘나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쉽게 무시하는지 모르겠어요.
  • Thinking 2005/08/17 [00:19] 수정 | 삭제
  • 공산사회에서 살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려면 얼마나 정신차리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울까 싶어요. 한국이 먹을 것이야 있겠지만 사람들이 각박하잖아요. 독재사회에서 그래도 북한보단 자유가 있는 남한에서 사는 게 좋은 면도 있겠지만 적응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말을 비슷하게 쓴다 뿐이지 너무 다르잖아요. 태어날때부터 다른 교육을 받았고 말이죠.
    타임머신 타고 다른 시절로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네요.

    우리 사회가 탈북인들 받아줬으니 맞춰서 적응해라만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