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여성들의 지역자치 운동

대전여민회 아파트공동체운동 이모저모

김경희 | 기사입력 2005/08/30 [02:38]

“평범한” 여성들의 지역자치 운동

대전여민회 아파트공동체운동 이모저모

김경희 | 입력 : 2005/08/30 [02:38]
<일다는 풀뿌리 지역운동 현황과, 여성들의 지역정치 참여활동을 되돌아보고, 현재 지역 현안엔 어떤 것이 있으며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여성의 의정참여와 지역운동을 살펴봄으로써 지역정치의 전망을 그려보고자 한다. 필자 김경희님은 대전여민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주>

“생각은 전지구적으로, 행동은 지역에서”라는 구호가 귀에 익숙하긴 해도 현실은 이와는 괴리가 있다. 국가발전이란 정부정책의 강력한 영향 아래 지역은 자기중심성을 갖지 못하고 늘 주변부적이다. 서울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중앙, 전국, 한국이란 접두어가 붙고, 서울에서 발생되는 모든 뉴스는 전국뉴스가 된다. 여성운동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이슈와 과제가 서울 중심으로 논의됐다. 몸은 지역에 있으면서 마음은 중앙을 향해 있는 모습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1995년부터 3년 동안 아파트 자치부녀회장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미 지역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지역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해보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활동을 시작하면서 자발적 의사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사회 공공서비스영역에서 행정기관의 손발이 돼 활발한 활동을 하는 지역 여성조직들이 많으며 각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파트 부녀회 통해 지역자치 시작

관 주도로 형성되고 운영되는 조직이 아니라, 자치적인 조직이 필요하단 생각에 미쳤다. 그래서 아파트 라인마다 회원 모집공고를 내 부녀회를 조직했다. ‘알뜰나눔장터’와 복지시설 봉사활동도 동원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활동 주체로 의견을 모아 결정하고 실천했다.

아파트공동체 운동을 펼쳤던 지역은 대전의 다섯 개 구 중 인구밀도가 가장 높고 생활수준도 높은 편인 서구 지역이다. 서구는 70% 이상이 아파트로 구성돼 있고, 30~40대 중산층 주부들이 많은 곳이다. 당시 지역여성들의 정서를 설명하자면 ‘개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여가활동을 즐기며 가족간 단란함을 우선으로 여기고’ 있었다.

대전여민회 회원의 상당수(40%)가 서구에 살고 있는데, 막상 이웃과의 교분을 쌓고 여성 이슈들을 알려낼 활동들이 거의 없었다. 여민회 사업을 알려내고 지역조직 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한 시민학교’를 진행하면서 아파트관리 차원 접근으로는 여성단체로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워, 문화행사를 중심으로 아파트에 들어가 여성들을 만났고 부녀회 구성원 등과 접촉을 하며 활동을 폈다.

그러나 이미 지역에서 활동하던 기존 조직들의 상당수가 다른 조직이나 외부 인사들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고, 자율적인 행사나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하는 수없이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도해야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홍보만을 맡기거나, 행사 때 바자회 등 일부를 담당하도록 사업을 배치하고 성과가 생기면 함께 나누었다

골목문화제, 전과물려주기, 이동식 재활용품장터…

아파트에 거주하는 기혼여성들은 자녀나 일상에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일 경우 관심이 많았고, 가족 단위로 함께할 수 있을 때 높은 호응을 보였다. 때마침 시정소식지나 구정소식지, 언론 등의 홍보가 신뢰감을 주었고, 행사 내용이 알차면 그만큼 만족도가 높아 이후 회원가입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깨달은 바는 “지역주민들이 여성운동진영이나 사회 다양한 이슈에 결합하게 하기 위해선 천천히, 지치지 않고,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지속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활동들은 지금도 <솔밭문화마당> 등 골목문화제 형식의 작은 축제들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또 공급자 위주의 녹색가게와 달리 임대주민 등 소비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역 이동식 재활용물품장터를 연 것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빼놓을 수 없는 사례는 학부회 활동이다. 학교는 자연스럽게 지역 여성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같은 또래 자녀를 둔 부모(대부분 어머니들이다)와 교육 문제나 생활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쉽게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전과물려주기’ 운동 등은 아이들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딸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선 ‘어린이 경제교실’, ‘고사리들의 알뜰장터’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부녀회나 학부모회 활동은 지역사회 안에서 작지만 큰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중요한 활동영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여성운동에 무심했던 사람들 관심 끌어내야

지역운동은 작은 일, 작은 차이, 작은 변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와 ‘세상’의 변화를 위해 관심과 시간을 쏟고 참여하는 마음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된다. 개인의 삶은 사회변화와 연결고리를 갖는다. 나의 삶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고, 나의 삶의 태도가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돌파구다. 우리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찾아 드러내고, 생활세계를 바꾸어내려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때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

아파트공동체 운동은 여성관련 법률이나 제도를 마련하는 측면에서 진행되어 온 기존 여성운동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여성 이슈나 여성계 목소리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던 많은 여성들과, 내 가족의 일상에만 신경을 쓰며 윤택한 삶이나 의미 있는 여가생활을 즐기려 애쓰는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무엇보다 지역여성운동은 지역여성들을 ‘조직화의 대상’으로만 보는 입장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지역여성들이 주체적 시각으로 지역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가려는 생각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풀뿌리 조직은 ‘평범한 지역여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것은 지역여성운동의 발전에 핵심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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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u 2005/09/01 [16:24] 수정 | 삭제
  • '전과 물려주기'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다닐적에 했었지요. ^^
    생활환경의 차이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앞으로는 서구 이외의 다른 구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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