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하는 사람의 감정이 ‘오롯이’

국악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김진영

이은정 | 기사입력 2005/09/05 [17:42]

소리하는 사람의 감정이 ‘오롯이’

국악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김진영

이은정 | 입력 : 2005/09/05 [17:42]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더웠던 날이었음은 틀림없다. 아는 후배의 친구라고 하여 스치듯 한 번. 두 번째 자리는 광주 그녀의 집에서였다. 술자리였다. 창을 한다고 하길래 무례하게도 한 소절 청했다. 평소 노래에 관심이 많은 탓이기도 했지만, 지인들 중에 창을 하는 이가 없기에 가까이에서 듣는 소리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의례 한 번 민망한 듯 거절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뜻밖에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뽑아낸 소리가 춘향가 중 ‘이별가’였다. 그 때 난 책상다리에 눈을 감고 귀를 활짝 열었다.

‘이 친구 소리가 참 매력적이구나. 참 맑은 음색을 가졌구나.’

목이 쉬어 창을 하게 되다

그녀가 창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원래 성악이 전공이었으나 예고에 시험을 보던 당일. 목 상태가 안 좋아 시험을 치를 수 없었다. 시험장에 선 그녀가 안타까웠던 시험관은 다른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느냐고 물었고, 김진영씨는 장구를 조금 친다고 했다. 성악을 전공하지만 우리의 소리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 특별활동으로 풍물 반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시험관은 그거라도 해보라 했고 뜻하지 않게 합격해 예고에 입학했다.

전공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우왕좌왕. 그 때 창을 하던 친구가 소리를 권유했다. 어차피 성악을 전공했으니 창이 어떠냐고. 어쩌면 그녀는 타고난 소리꾼인지 모른다. 학원에서 한 소리한다는 선생님이 흔쾌히 그녀를 제자로 받아주었고, 자신 역시 국악이라는 새로운 소리에 흠뻑 빠져들었다 했다.

“창의 매력은 우리가 어릴 때 느끼던 정서를 고스란히 몸으로 체득한다는 것이에요. 우리나라 사람이어도 우리 음악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보통 우리 음악 하면 ‘아리랑’ 정도? 지금은 국악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이 많아요. 타인에게 당당히 우리 소리를 합니다 하고 말을 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어릴 적에 어머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활 속에서 들려주던 우리 가락 속에 묻힌 한국의 정서를 이제 제가 이해하니까. 우리 민족에게 음악은 하나의 동반자 같은 존재였어요. 그 민족의 음악과 정서가 일치한다고 말하잖아요. 선조의 정서를 내가 이어간다는 것. 정말 매력적이잖아요.”

김진영씨의 나이 이제 스물 일곱. 한창 놀기 좋은 나이에 눈을 반짝이며 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의 매력은 눈빛에 있다. 흔한 말로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고 하지 않는가. 김진영씨의 눈빛에는 흔치 않는 순수함과 소리에 대한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순수함은 생활로 고스란히 이어져 일상으로 파고든다.

소리를 통해 동심과 어울리다

내가 느끼는 그녀의 매력은 또 있다. 유난히도 아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다. 김진영씨가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친다고 했을 때, 머리에 그려진 첫 번째 장면은 음악신동 같은 아이들에게 레슨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보기 좋게 틀렸지만 말이다.

“요즘 초등학교 음악 교과과정은 국악이 50% 정도로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아졌어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거의 다 서양음악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당연히 선생님들도 국악을 잘 모르고. 그런 이유로 강의를 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주입식 이론 공부나 시험을 위한 국악은 하지 않아요. 일종의 놀이 국악을 한다고 할 수 있어요.”

‘놀이국악’. 학창 시절을 아무리 떠올려도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장르다. 그녀의 설명은 그랬다. “우리 어머니들이 아이들과 놀아줄 때면 그것은 하나의 정서 교환이었다”고. 도리 도리, 잼잼, 쎄쎄쎄까지. 하나의 율동과 간단한 음률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란다. 그녀가 ‘놀이국악’이라 부르는 그것도 같은 맥락이다.

“학교나 유치원 가면 소위 ‘왕따’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 아이들도 음악과 율동을 통해서 어울리게 할 수 있어요. 서로 손잡게 만들고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게 만들고. 그러다 보면 따돌림이란 나쁜 녀석이 자리 잡을 틈이 없죠. 그것이 놀이 음악의 매력이죠.”

아이들은 어른보다 순수해서 새로운 것, 좋은 것을 여과 없이 쉽게 받아들인다. 국악이라는 것도, 놀이라는 것도 그저 재미있으니 일상의 서운함까지 쉬이 버릴 수 있다. 그녀가 말하는 ‘놀이국악’이라는 것이 그리 좋은 것이라면, 나도 한번 같이 어울려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국악, 그 무한한 매력

“메세나는 복지 후원 기관이에요. 문화관광부에서 후원을 해서 아동복지프로그램의 강사로 보육원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처음엔 국악이라고 하니까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아주 어린 친구들 밖에 없더라고요. 중고등학생들은 ‘에이~’하면서 한숨을 먼저 쉬고요. 몇 달은 하면 하는가 보다 하면서 반응이 시큰둥했죠. 그래도 꾸준히 가르쳤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후원인의 밤’이 다가왔죠. 그래서 ‘너희들이 국악을 배웠으니 무대에 올려보자’고 제안했어요. 일종의 과제를 던진 거죠.”

과제로 주어진 무대는 한 마디로 대성공이었다. ‘후원인의 밤’이었던 것만큼 어르신들이 많이 왔고, 자신들이 마련한 무대로 인해 세대간 격차가 무너지고 어우러짐의 한마당이 연출되는 것을 경험한 아이들은 신명 날 수밖에 없었다. 성취감과 자부심, 그리고 자신감. 김진영씨는 그렇게 자신만의 언어로 아이들과 소통한다.

“국악을 가르친다고 해서 억지 식의 교육은 하고 싶지 않아요. 국악을 아이들이 자유롭게 느끼는 것. 생활 속에서 우리가 들리는 음악 소리에 흥얼거리듯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면 합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재미난 일은 더 찾아서 하는 법이잖아요. 아이들에게 국악이라는 것이 지루함이 아닌 재미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거죠. 그래서 아이들 정서에 맞게 개사도 해요. 유치원 노래도 기존 우리 민요에다 붙이고, 아이들이 노는 작은 놀이 음악에도 우리 가락을 붙여서 놀게 만들고. 그렇게 생활 속에 파고드는 거죠. 그것이 국악의 발전이라고 생각하고. 음악은 어찌되었든 대중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거니까요.”

도대체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국악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악의 가장 큰 매력은 정해진 음이 특별히 없다는 겁니다. 부르고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천차만별이지요. 음악을 하는 사람의 감정이 오롯이 더 솔직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건 서양음악도 마찬가지지만 재즈처럼 음은 있지만 그 형식의 자유로운 것이 국악이죠.”

국악의 영혼이 그렇게 자유로운 것인지는 사실 몰랐다. 그 소리의 깊이가 어디만큼 닿아 있는지 이제부터는 좀더 유심히 듣게 될 것 같다. 김진영씨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아이들을 현장에서 가르치면서 얻은 노하우와 수업 방식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일종의 국민 보급서 같은. 그 작업이 언제쯤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녀의 작업이 좀 더 빨리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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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no 2005/09/07 [13:55] 수정 | 삭제
  • 놀이국악이란 것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있는가요? 아니면 국악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면서 개인적으로 터득하고 계신 것인가요. 그런 분야도 키우면 좋을 것 같네요.
  • 혜란 2005/09/06 [22:22] 수정 | 삭제
  • 성악 전공해서 우리 소리에 빠지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아요.
    역시 음악은 하나로 통하는 데가 있는 건가 봐요.
    국악의 영혼이 자유로워서 어린 아이들이 먼저 그 재미를 느낀다는 얘기가 왠지 공감이 왔어요. 악기를 쉽게 접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국악이 대중화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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