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을 바로 알기 위해

<인간으로 살고 싶다-영원한 신여성 나혜석>

정희원 | 기사입력 2005/10/10 [21:10]

나혜석을 바로 알기 위해

<인간으로 살고 싶다-영원한 신여성 나혜석>

정희원 | 입력 : 2005/10/10 [21:10]
“요컨대 제대로 된 나혜석의 연보 하나도 아직 가지지 못한 채 우리는 풍문 속에서만, 무책임한 농담으로만 나혜석을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이상경, <인간으로 살고 싶다> p.43)

나혜석은 누구인가? 흔히 그의 이름에는 근대 최초의 여성 유화(서양화)가이자 대표적 신여성으로 연애대장으로 불리며 떠들썩한 결혼과 이혼을 감행한 이야기, 이후 사회적인 화살을 온 몸에 받으며 집도 절도 없이 떠돌다가 거리에서 행려병자로 죽었다는 풍문이 따라붙는다.

현대여성이 말하는 나혜석

그러나 이상경 교수가 쓴 나혜석 평전, <인간으로 살고 싶다>(한길사)는 이러한 시선에서 벗어나 건조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되 평자로서 나혜석을 읽는 눈을 제공하고, 그 삶이나 말하기 방식을 지금의 여성 개인들의 현실에 확장ㆍ재생산할 수 있는 예를 보여주고 있어 독특하다. 이러한 형태의 평전은, 사실 정보(사료)를 관점의 치우침 없이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나혜석이 일관되게 추구했던 여성의 눈을 평자와 독자의 눈으로 끌어올려 새로 적용할 수 있게 한다.

연차 순으로 11개 파트를 나누어 나혜석 일대기를 21세기 여성의 눈으로 주도적으로 평한 이 책은, 각 활동기별로 주제를 부여해 그의 행보와 맞물린 작품세계와 사상적 변화를 주도 면밀하게 추적한다. 또한 나혜석의 결혼, 임신, 출산, 이혼 등에 내재된 정황(주변인의 발언, 발표한 글, 가족 상황 등)을 다면적으로 바라본다. 이로써 시대ㆍ계급과 맞물려 매우 복합적으로 보이는 나혜석의 걸음을 비교적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당대 나혜석의 삶에 내재한 동기를 가시화했다. 그것은 바로 ‘여성도 인간이외다’하는 근대의 과도기를 온 몸으로 개척한 삶의 일관성이다.

지은이는 수원 나 부잣집 딸로 압축되는 성장 환경, 즉 근대적 신 문물을 적극 수용할 수 있던 부모와, 나혜석이 일본 여자미술학교로 유학할 수 있는 역할을 한 형제 등, 그가 조선 여성들 가운데서 특이한 출발선을 갖고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학창 시절 우수한 기록을 남긴 재량과 인물 특성, 주변인들과의 상호작용을 생생히 복원하고 평함으로 나혜석이라는 여성 개인이 가진 힘, 특질들이 한 시대의 유행이라든지 ‘부르주아 신여성’ 등 뭉뚱그려진 이름에 갇힐 수 없는 이유를 주의 깊게 논하고 있다.

시대와의 ‘불화’를 감행하는 여성의 자의식

나혜석이 시대와 불화했던 방식에 대한 설명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그가 조혼타파, 자유연애, 시험결혼, 당사자 간 계약을 중점에 둔 자유이혼 등을 주장하거나 실행한 맥락을 찾고 있다. 여기에는 나혜석이 삶의 기반과 캐릭터를 확립한 것으로 짐작되는 여자미술학교(동경유학)생활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예컨대 『학지광』이나 『여자계』등 유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창간한 잡지에 실린 나혜석의 (복원된) 글들을 보면, 그의 사상과 의식이 조형되는 모습이 드러난다.

나혜석의 삶의 동력을 압축하는 ‘여성의 근대적 자기 표현’(이상경)은 당대 (그나마) 진보라 믿어지던 양처현모나 여성교육론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나혜석은 여성의 개성 확립과 공ㆍ사적인 장에서 자유로운 표현을 실행했다. 그는 당대 식민지하에서 국가주의와 단합을 위한 인간 재료로서 ‘국민’ 단위의 교육받은 여성이 되는 것이나, 제국에 충성하는 남성을 위한 가정의 평화유지자로서의 양처현모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었다. 저자는 나혜석이 여성의 연애, 결혼, 가정을 ‘근대’사회 전반의 구조적 모순의 맥락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의식에 영향을 준 엘렌 케이의 사상을 통해 추정했다.

여성의 눈, 여성의 경험, 여성의 목소리

<인간으로 살고 싶다>에는 나혜석의 작품들이 다수 인용돼 있다. 필자는 또 다른 저서 <나혜석 전집>(태학사)를 통해 나혜석 작품만을 따로 복원하기도 했으나, 평에 있어 당사자의 육성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자유연애를 하며 결혼을 감행하기까지의 나혜석의 모습과 ‘개화된’ 집안의 구습 강요에 의해 갈등을 겪는 모습을 소설 <경희>를 통해 분석하기도 한다. 여기서 자각한 여학생의 기운을 인간관계 속에서 미시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이광수의 <무정>에 나타나는 단편적이고 왜곡된 신여성, 자유연애의 허구성과 비교 고찰하기도 한다.

이처럼 최승구, 이광수, 김우영 등과의 연애나 결혼생활 등을 공개일기나 글 발표를 통해 드러낸 것은 당대 획기적인 ‘여성적 글쓰기’였다. 1930년대, 여성인 자기 경험을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언어로 말하는 것. 여성 자신을 통과한 성찰을 수많은 시선과 제도의 제약, 인습이 마치 없는 것처럼 발화하는 일은 일종의 혁명이었다. 또한 나혜석은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와 제도 속에서 꾸준히 경험적이고 성찰적인 관점을 제안했다. 예컨대 <섣달대목>이라는 만평을 매일신보에 연재하면서 ‘여성화가의 눈’(이상경)을 대중에게 돌출시킨다.

“나혜석은 섣달 대목이라는 주제로 여성들의 바쁘고 고된 가사노동을 묘사의 중심에 놓은 뒤 차례 지내기, 세배하기, 꼬까옷 입고 단장하기, 널뛰기, 신수점 보기 등 설날에 반드시 행해야 할 예식과 관습들을 두루 그렸다. 여성들이 챙겨야 할 일상적인 의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물의 표정이나 소도구의 묘사도 매우 섬세하다. 반면 고희동의 스케치는 남자들의 놀이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널뛰기만은 여자의 놀이이지만 나머지는 모두 남자들의 놀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여성인 나혜석이 챙겨야 할 설날은 남성인 고희동이 챙겨야 할 설날과 이렇게도 달랐다. 이렇게 화가로서 대중 앞에 활동을 시작하는 출발점부터 나혜석은 여성 화가라고 하는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경, 본문 p.173)

결혼 생활기 나혜석의 작품들을 감상해보면, 저절로 샘솟는 애정이라든지 성역화되고 신비화된 모성의 신화를 간파하고, ‘모된 감상기’, ‘내가 어린애를 기른 경험’ 등의 글을 통해 임신의 억울함, 출산의 극악한 고통과 육아의 괴로움 등을 솔직하게 매우 육질적인 언어로 공론에 부쳤음을 느낄 수 있다. <모된 감상기>에 반박하는 백결생에게 그녀는 <백결생에게 답함>이라는 글로써 여성의 경험적 언어에 대해 관념적인 논박을 시도한 당대 남성필자의 언어와 차별화했다.

나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

나혜석의 사회적ㆍ육체적 죽음은, ‘남성의 家에서 버림받은 여성’이 결국 온전할 수 없다는 1930년대 반(反)인간적 통념의 누더기 속에서 발견된다. 나혜석이 ‘여성’인 자신의 이야기를 ‘공적’으로 말했던 작업들은 한 세기가 되어가는 현재에도 용기와 희생을 요구하고 있어, 나혜석을 사유할 때는 현대인들의 삶을 확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화가 나혜석’, ‘문학인 나혜석’에 대해서는 각기 별다른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여성 나혜석’에 대해서는 말이다.

지금도 ‘최초의 여성’을 배척하는 기형적인 사회적 두려움은 지금도 수많은 여성들의 행위력을 억압하고 있다. 나혜석에 부쳐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것은 그녀의 변화무쌍한 개인사, 그 삶의 조건과는 별 관계가 없다. 그것은 인간 위에 더해져 무엇을 소유하는 문제, 인간성이나 삶의 방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혜석이 끊임없이 그림으로, 글로, 행위로 사회에 말 걸기 한 내용 ‘여성도 인간이외다’는 당대 매우 이례적이지만 사실상 지극히 당연한 것을 위한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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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까 2005/10/14 [12:16] 수정 | 삭제
  • 최초의 여성...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생활은...
  • ... 2005/10/11 [10:05] 수정 | 삭제
  • '인간으로' 는 '온전한 개별자적 한 인간인 여성으로' 쯤 되지 않을까요. 좀 갑갑한 어휘속에 가두자면 ('근대'들어 짐짓 인식하기로 한) '개성' 이구요. 외피는 변하긴 했지요. 최소한 법령이나 외부에 표방하는 조직의 규칙정도는. 문화주의쪽 운동들도 있어왔고요..비록 그들만의 생활이긴 하지만... 나혜석의 외침이 지금과 직결되는 어이없는 유효함이, 여성들에게 불균형하게 해당하는 거라면 또 어떨까요. 낡은 통념들 간단하게 벗어버릴 수 있는 일 대부분 어렵죠. 평범한 여성 개인들이 (비록 힘들지만) 실현가능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 신여성 2005/10/11 [08:56] 수정 | 삭제
  • 과연 한국에서 여성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몇 퍼센트일까요?
    나혜석이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여성에 대한 편견이 바뀐게 있습니까?
    근본적으로 바뀐건 없다고 보는데요.
    나혜석이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외친건 지금 현재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그나마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세상에서 사는걸 감사하게 생각해야겠죠.
    물질에 가리워져..그런것들이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을뿐...
  • 해리 2005/10/11 [02:15] 수정 | 삭제
  • 신여성이란 이름은 뭔가 나랑은 먼 것 같고 불편한 게 느껴졌지만 나혜석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면서 좀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치열했던 여성에 대해서 가슴 아프게 동감하고 싶은 느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