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아이, ‘힘’의 논리로 길들인다?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해병대 교육’

정희선 | 기사입력 2005/10/10 [21:37]

폭력적인 아이, ‘힘’의 논리로 길들인다?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해병대 교육’

정희선 | 입력 : 2005/10/10 [21:37]
공공장소에서 아이들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음식점이나 지하철이 놀이터인 양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패스트푸드점 의자 위를 신발 신고 걸어 다니는 아이들. 한 번은 버스 안에서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한 시도 쉬지 않고 간판 이름을 큰 소리로 읽는데, 부모들이 말릴 생각은 하지 않고 ‘저건 어떻게 읽어야 되냐’며 아이를 계속 부추겨서 신경이 거슬렸던 기억도 있다.

SBS의 <실제상황! 토요일>의 한 코너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말썽 많은 아이들을 아동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버릇을 고쳐주고 양육 방법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주말에 목욕탕에 갔을 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이 방송을 보게 됐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내용엔 초등학교 1학년 쌍둥이 형제가 등장하는데, 학교나 학원 등 다른 곳에서는 모범적이고 숫기가 없다는 평까지 듣는 아이들이 집안에선 막무가내로 떼를 쓰고 누나와 엄마에게 폭력을 쓰는 등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아동심리 전문가의 처방은 ‘들어줄 수 없는 요구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는 이런 방법이 별로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가족들 간 갈등만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도 버릇이 고쳐지지 않자 제작진은 부모 사랑의 소중함을 알게 한다는 명목으로 ‘해병대 극기훈련 캠프’에 이들 형제를 참가시키기로 결정했다.

캠프 책임자는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부모들이 아이들을 입소시키는 경우가 많으며 캠프를 마친 후 모두들 효자 효녀가 되어있다”며 효과를 자신했다. 군복을 입고 철모를 쓰고 총까지 든 아이들은 철조망 밑을 등으로 포복하며 건너고, 흙탕물에 잠수하는 등 성인들과 거의 같은 훈련을 받았다. 식사 시간과 옷 갈아 입을 때는 정해진 시간에 못 하면 기합을 받고, 단체체조 시간에 틀린 동작을 하면 전원 기합을 받았다. 캠프 교관들 또한 군대에서 쓰는 말로 아이들을 대하고 오직 명령과 복종을 강요했다.

훈련 마지막 날 <우정의 무대>의 한 장면처럼 가족들이 몰래 와서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할 때 나타났다. 가족과 상봉한 형제는 부모에게 자신들이 잘못했던 점을 눈물로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달라진 것 같아 보이던 아이들은 며칠 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부모는 특단의 조치로 해병대 훈련 대장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훈련 대장은 아이들에게 교관들을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협박을 하고, 아이들은 거실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잘못했다고 대성통곡을 했다. 이윽고 어머니가 들어오자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아이들은 진짜 달라졌다는 게 지난 방송 분의 결론이었다.

프로그램을 보며 쌍둥이 형제들이 진짜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 건지, 아니면 해병대 교관이 무서워서 그러는 건지 헷갈려 하고 있을 때, 마침 어떤 꼬마가 몸의 물기를 닦고 있는 엄마에게 계속 안아달라고 떼를 쓰고 울었다. 목욕탕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 그 꼬마에게 “너도 해병대 보낸다!”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정들의 특징은 아버지만 돈을 벌고 어머니는 집에서 일하는 전업주부란 것이다. 이번 경우도 어머니가 전업주부인데, 아이들은 아버지는 가정을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가진 힘이 있는 사람이고, 어머니는 항상 자기들 곁에서 비위를 맞춰주고 원하는 것을 해주는 만만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방송에서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문제만 아니라 부모도 꾸중이나 칭찬의 일관성이 없고 아이들과 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한 에피소드에서 쌍둥이 형제 중 한 아이가 어머니에게 ‘존중’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어머니는 “나이 적은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분고분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너희들은 엄마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숫자를 세라고 하며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체벌을 하고, 새 게임 CD를 사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 “지금 가지고 있는 CD를 다 부셔버리면 사주겠다”는 엉뚱한 제안을 했다. 아이들이 그러자고 하자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는 것을 가르쳐 줘야 한다며 집안에 있는 게임 CD를 다 칼로 긁어 버리고 새 게임 CD를 사주는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또 나중에 달라진 아이들이 설거지를 자청해서 하자 “고추 떨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아이들은 집안의 명확한 성별 분업과 성별 위계를 가능케 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둘이 힘을 합쳐 누나와 어머니에게 폭력을 쓰기도 하지만, 아빠에게는 그나마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힘과 권위로 남을 제압하고, 명령과 복종이라는 수직적인 관계밖에 없는 ‘해병대 교육’으로 말을 듣게 만든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다.

성장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얻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말로 의사표시도 하고, 애교도 부리고, 다양한 방법을 써보면서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을 찾게 된다. 이때 양육자의 역할은 원하고 싶은 것을 얻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주는 피해나 침해는 없는지, 외부 조건이나 환경이 가능한 지를 파악하면서 정확히 표현하는 방식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의사전달 방식에 있어서 문제가 있을 때, 부모의 양육방식이나 아이들과의 소통방식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물론, 아이들 요구에 대해 태도를 일관성 있게 조절하는 것은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아직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모든 책임을 돌리고, 힘의 무서움을 보여줌으로써 버릇을 바로잡고자 하는 모습은 교육이라기보단 오히려 문제를 수면 아래로 밀어 넣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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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2005/10/24 [17:06] 수정 | 삭제
  • 이런일이 있었군요.
    저는 쌍둥이 형제의 첫주 문제들을 보면서 부모들의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했었고 어떤식으로 해결해갈지 부모들은 어떻게 변해갈지 무척 궁금 했었는데.. 이런식으로 해결이 났었군요.. 황당~

    쌍둥이 형제전에 세살짜리 '욕쟁이 아이' 편을 보면서는 참 훌륭한 프로다고 생각했었어요.
    모든 아이들의 문제 행동 90%이상이 부모에게 있으며 그걸증명하던 욕쟁이 아이의 부모와 할머니들의 변화를 보며 (특히 아빠) 참 흐뭇했었는데..
  • rEnI 2005/10/16 [01:20] 수정 | 삭제
  • 확실히 그 아이들은 정도를 넘어서서 버릇이 없었습니다.
    무엇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 하지만 그것이 하필이면 폭력인 것일까요..
    그 아이들은 이미 폭력이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더 큰 폭력으로 위협하는 것이 장기적인 인격 형성에 어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제작진의 짧은 생각에 안타까웠습니다.
    차라리 청학동 체험이나 단기간 절에서 동자승이 되어 체험하는 프로그램 등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청학동의 경우 가부장 문화의 소산을 확대 재생산 한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해병대 보단 낫겠죠)
  • 토토의천국 2005/10/12 [19:44] 수정 | 삭제
  • 기본적인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 표범 2005/10/12 [00:09] 수정 | 삭제
  • 벌써 찬반에 붙인 걸 보았어요..
    해병대식으로라도 버릇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이들이.. 아주 많다.
    머리에 깊이 인박힌 그 생각들은.. 어떻게하면 바뀔까..
  • . 2005/10/11 [19:35] 수정 | 삭제
  • 떼쓰는 아이..그건 겉으로 들어난 모습일뿐이죠.
    그 가정의 내부를 들여다 보고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전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고 봤는데..
    왠 해병대? 너무 뜬금 없네요.
    겁줘서 일시적 문제 해결?
    그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보는데요.
  • 지나다 2005/10/11 [19:18] 수정 | 삭제
  • 군대식 훈련이 주를 이루지 않습니까? 몸에 좋다고 훈련하는건지, 뭘 잘못해서 벌을 받는 건지 알 수 없었던.... 군대문화 잔재인 것 같아요. 방송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해병대교육을 했다는 건 비난받을만한 일인 듯..
  • 황보래용 2005/10/11 [15:12] 수정 | 삭제
  • 군대 가야 인간돼서 나온다 버전이네..
  • 해리 2005/10/11 [01:53] 수정 | 삭제
  • 애들은 너무 미웠지만, 해병대 교육 프로그램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엔 뜨악했습니다.
  • starsailor 2005/10/10 [23:38] 수정 | 삭제
  • 훈련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훈련대장이 집에 찾아와서 고함을 지르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겁에 질려서 막 우는데, 잘못을 뉘우쳐서라기보다는 그냥 '공포'를 느꼈기 때문인 것 같더군요.

    교육의 대상이 아이들일 경우에는 그 방법에 있어서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텐데
    그런 면에서 이번 방송은 참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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