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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21일)에 방영된 “스폰서 카페”를 기억해보자. 언제나 그렇듯 실화에 대한 시청자 배심원의 관심도 뜨거웠지만, 드라마로서의 <사랑과 전쟁>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도 많았다.
‘스폰서 카페’라는 일대일 성매매를 조직적으로 알선하는 업체와 계약을 맺고, 물질의 일방적 수급을 조건으로 ‘갑부’ 남성과 성적인 거래를 하던 전업주부는, 결혼관계가 드러나자 ‘간통죄의 리스크’를 구실로 한 상대남성과 스폰서 카페 측에 협박을 당하는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누구와 한 섹스가 원인인지 모를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 남편이 이혼을 신청했다는 줄거리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오피스텔에서 만나주면 돼. 죽으면 어차피 썩을 몸…” “자유분방한” 고급 성매매의 현장으로 서로를 끌어들이고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여성들의 대화엔 어떠한 ‘성적 자기결정권’도 없어 보인다. ‘스폰서’와 사귀는 여성캐릭터는 스스로의 몸을 가리켜 “어차피 썩을 몸”이라 서슴없이 말하며, 친구에게 “강남의 빌딩이 여러 채인 너의 스폰서를 잘 물어라”고 조언한다. 언뜻 폭로, 고발적 성격인 것 같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여성(혹은 남성)들이 일말의 동일시를 경험하지 못한 채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방영이 끝나기 무섭게 시청자들이 자신들을 불편하게 만든 해당 프로그램의 홈페이지 게시판으로 달려가 ‘욕설’을 내뱉는 현상은 한편으론 재미있다. 아마도 이런 사이클이 시청률을 반영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이 프로그램이 일부러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고 비판적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설정되어서 벌어지는 것 같진 않다. 여성에 대한 묘사 ‘굴욕적’ 문제는 이성애적 결혼부터 이혼에 이르는 전 과정에 있어서 여성을 인간 이하로 묘사하는 연출방식이다. 우선, 가지각색 사건처리와 캐릭터 묘사는 실화라는 드라마 질료와는 상관없이, 여성을 독립된 존엄성을 가진 개별체로 가정하지 않고 있다. “신랑이 돈을 잘 버나 봐.” 이 드라마가 그리는 여성은 이런 식이다. 반인권적인 현실을 폭로하여 작품의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기보다, 제작진이 기본적으로 여성들을 그려내는 데 있어서 여성들의 성격과 생활 등 전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이런 장면들은 극단적인 현실에 처한 부부의 이혼사유를 설명키 위한 과정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묘사가 주로 후반부 이혼기가 아닌 전반부의 연애와 결혼부에 일상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등장인물의 성별 위계는 매우 전통적인 수위에 머물고 있고, 여성/남성 이분법도 그 화려한 경계를 자랑하고 있다. 가부장제 하의 강고한 결혼이데올로기, 소비자의 위치와 사적 공간에 갇힌 여성성, 반면 생산자의 위치와 공적 공간을 거머쥔 남성성, (믿어지지 않지만) 자본가 남성과 신데렐라 여성 구도조차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사안들은 ‘이혼 법정’을 다루고 현대여성을 사유한다는 <부부클리닉>의 시사성에 비추어볼 때 기본적으로 점검돼야 할 것이 아니던가. “감히 한 집안의 대주와 계집의 속옷을 같이 넣고 둘둘 돌리고 빨아?” ‘조폭’에 가까운 ‘시집 어른’들이 조카며느리에게 자행하는 참극으로 인해 주인공 여성이 이혼을 신청한 ‘시이모 시집살이’의 각본은 이혼사유에 대한 설득적인 구성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되려 이혼을 신청한 주인공 여성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만든다. 순간적으로 주목을 끄는 대사로 시청자들을 자극하기 위해 그런지 몰라도, 현재 변모한 시대적 배경과 현실성이 드라마 연출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다양한 관점을 이끌어낸다는 기획의도도 의심스럽다. 유독 남성의 집안에 들어온 여자로서 여성성이나, 모성에 대한 지독한 집착은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변화된 여성의 자아나 사회 정체성, 관계 정체성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실화라는 것, 예컨대 전업주부의 현실을 주장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 이런 재현 구조를 가진 드라마 각본을 만들어 보인 후, 여성법조인을 인물화하여 여성의 눈과 목소리를 드러내는 듯 위조해봐야 당사자를 이해한다는 목적에 부합할 리 없다.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전략? “시내에 30평짜리 아파트 사 주신대! 재산을 재영씨한테 다 물려주실 거래! 엄마! 나 땡잡은 거 같애. 정말 시집 잘 가는 거 같애.” ‘시이모 시집살이’를 예에서, 우리는 이 드라마에선 여성들이 결혼에 이르기 까지 하게 되는 무수한 고민들, 고려들은 일절 생략되고 매우 비현실적인 각본에 따라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성은 남성의 집안과 돈과 지위로 인해 결혼을 결심한 듯 그려지고 있다. 이혼까지 한다는 그들이 어떻게 연애하고 결혼했나를 보여주면서, 천차만별의 소재와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성을 갖고 있다. 물론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방법으로 때론 상황을 극대화 시켜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과 전쟁>이 보여주는 방식은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기 보다는 이상하게도 공통적으로 이 사회가 여성을 혐오하고 모멸하는 지점에 맞닿아 있다. “요즘도 홈쇼핑 많이 해?” “이런 낙이라도 없으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아?” 전업주부는 홈쇼핑 말고는 ‘낙’도 없을까? 연구원 남편을 기다리며 파란 앞치마 두르고 된장찌개를 준비하고 남편이 없으면 홈쇼핑 채널만을 돌리고 있을까? 대사 처리도, 장면 처리도 끝내준다. 오히려 이 상황에 처한 당사자 여성의 목소리를 각본 구성을 거치면서 타인이 허위로 꾸며내는 듯한 불편한 느낌을 준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결혼생활이 단순히 조건과 물질의 거래관계, 상승욕구 등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님에도 이를 극화하는 방식은 너무나 정형화 되어 있다. 이런 각본을 토대로 해서는 드라마 뒤에 따라붙는 법원 장면의 ‘밖에서 바라보기’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시청자 배심원의 의견을 듣는 방식도 이미 각본에서 가정하고 있는 여성을 대상화해서 바라볼 수 밖에 없게 전개되어 있다. 가부장적 질서 답습해선 안돼 “(통장을 불쑥 건네며) 1년 만에 우리 ‘집안’의 아들을 쑥 낳아 준 선물이다.” 여성의 시각을 은폐하는 방식으로는 ‘클리닉’이 될 수 없다. 부부 간 갈등의 근원에는 성 차별과 남성가문중심의 발상이 놓여있음에도, 이 드라마 자체가 그러한 갈등을 보여주고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가부장적 질서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대안적 사고를 봉쇄해버리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빼앗긴 여성의 눈’을 복원해야만 ‘부부 갈등을 사유하는 형식’으로서 타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문제는 특정한 소재나 주제가 아니라, 각본과 연출의 방식, 나아가 그 밑에 깔려있는 가정들이다. 이것이 개선되지 않는 한 <부부클리닉>은 공중에게 시사적인 제안을 하거나 ‘클리닉’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안정적인 시청률과 시청자 배심원의 참여를 자랑하는 <부부클리닉>은 실화를 표방하려면 더욱 현실을 담아내야 하고, 현실에 대한 분석과 표현방식은 좀 더 깊어지고 정직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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