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을 일구어가는 예술가

솔구름 미디어존 박은영 대표

정희선 | 기사입력 2005/11/22 [05:18]

자립을 일구어가는 예술가

솔구름 미디어존 박은영 대표

정희선 | 입력 : 2005/11/22 [05:18]
그의 작업실은 항상 지하였다. 예전에 들어가다 커다란 진돗개가 내 다리를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작업실도 그의 집 지하였고, 한국화 작가였던 그가 애니메이션을 처음으로 시작했던 작업실도 홍대 앞 건물 지하였고, 직원들 몇 명과 독립했다는 곳도 지하였다.

며칠 전 나는 이사했다는 작업실로 따라가면서 "싼 곳이 나왔나 봐요?", "조금 넓어 졌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러나 막상 옮긴 사무실에 가보니 지하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입이 벌어지도록 탐나는 공간이었다.

지하를 전전하던 그가 어떻게 누구나 부러워할 공간으로 들어간 세속적 의문과, 지금까지 그의 삶이 새삼 궁금해져서 자정을 넘긴 시각에 더 이상 ‘지하 세계’에서가 아니라 ‘지상 세계’에서 꿈을 펼치고 있는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 작업실로 찾아갔다.

지하 작업실에서 지상으로

박은영씨는 동양화 작가였다. 화실 주인이기도 하고 방과후 특별활동 교사이기도 했다. 또, 그는 얼마 전에는 독립 애니매이션 작가였고 지금은 애니매이션 회사의 대표다.

어렸을 때 왜 그림을 그리기로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의 엄마 말로는 어릴 때부터 그녀는 종이만 보면 항상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엄마는 아이의 그런 행동이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그랬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했다고 한다.

그의 첫 기억은 초등학교 때 반공인지 불조심인지 구호가 적힌 포스터가 교실 뒤 게시판에 걸려진 때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잘 그려서 게시판에 붙여진 것은 아니지만 공공장소에 자신의 그림이 걸려있는 것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서 그 앞을 맴돌았다.

예술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된 계기도 너무나 소극적인 그의 성격을 걱정하던 엄마의 조치가 미대 학생에게 미술 개인교습을 받게 했던 것이었는데 예상외로 진도도 잘 따라가고 재미있었다고 한다.

예술고등학교에 대해서 물어봤다.

"항상 경쟁적인 분위기죠, 인문계는 각자 하고 싶은 것이 그래도 다양해서 가고 싶은 과나 대학도 제 각각이지만 예술고등학교는 목표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옆에 있는 친구가 자신의 경쟁자가 될 수 밖에 없어서 견제하고 그랬어요."

그런 학교 분위기에 적응을 못했던 그는 인문계에 갈 걸 잘못 왔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2학년 때 동양화를 처음 접했던 그는 생전 처음으로 자신 속에 있던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화폭에 담아서 그림 한 장을 완성해 냈고 그 연유로 동양화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 그림으로 남고 싶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선생님이 내 그림을 봐준다고 손대는 것도 싫었어요. 잘 그렸던 못 그렸던 내 그림으로 남고 싶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힘들게 보냈던 예술고등학교 시절이 주는 장점도 있다고 회상한다.

"모든 일은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얄팍한 사람관계 밖에 못 접해 봤지만 미술 외에 무용이나 음악 등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죠. 전에는 그런 경험이 한번도 없었거든요."

그를 옆에서 지켜보면 그는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잘 아는 것 같다. 집중해야 할 것과 무모하게 덤비면 안 되는 것에 대한 분간을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가에 대한 상투적 이미지답지 않게 성실하고 정돈된 생활을 하는 그의 이미지에 대해서 물었다.

"의외로 보이는 것과 다른 면이 많아요. 뒤로는 할 것은 다 한다고 볼 수 있죠. 졸업할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때문에 좌절을 많이 했죠. 집에서도 다른 재주 없어서 미술을 전공한 딸이었고 그 즈음 내 주위에 어찌 그리 잘난 사람이 많았는지."

그는 서른살 될 때까지 외출할 때 부모님에게 1~2만원씩 용돈을 타갔고 부모님이 없으면 장롱 밑이라도 뒤졌다고 한다. 나름대로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지 못하고 작업실에 집에 있는 이유로 가사노동을 전담했고 그림을 그리다가도 아버지가 오시면 올라가서 밥을 차렸다. 밤에 그림 그리고 좀 누워있으면 놀면서 뭐가 그리 피곤하냐는 핀잔도 듣는 서러운 세월이었다.

첫 개인 전시회 때는 아버지가 전시회장에 오셨는데 동양화라고 해서 사군자나 호랑이를 기대한 아버지는 너무 실망해서 밖에 나가서 소주를 사와서 "통닭 좋아하더니 통닭 그린다"고 전시회장에서 술을 드셨다고 한다.

가깝고도 일상화된 예술

지금은 결혼도 했고 작지만 회사도 경영하는 그이지만 아버지의 그녀의 대한 평가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여자가 해봐야 뭘 더하겠냐는 생각일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평가에 휘말리기보다는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이 해결책임을 그는 알고 있고 그렇게 살기 위해 지금껏 노력했다.

그가 경영하는 '솔구름 미디어존'은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이다. 지금은 공중파 방송국의 외주 하청을 하고 있다. 지금도 경영은 빠듯한 편이지만 초반에 비해서는 안정이 됐고 당분간은 이 회사를 탄탄하게 기반을 잡을성싶다.

그러나 자신의 원래 업이 예술임을 잊지 않은 그는 '돈이 되는 예술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예술로 돈을 벌고 싶다'고 소망을 말한다.

얼핏 헷갈리는 이 말 뜻을 물었다.

"지금 하는 작업이 내 작업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일상으로 접하는 것들이 아름다우면 삶이 풍부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가깝고 일상화된 예술을 하고 싶어요. 내가 순수 미술을 한발 벗어나서 다양한 사람과 세상을 만났듯이 사람들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작은 계기를 만들고 싶어요."

예술가이면서 드물게 사업수완까지 겸비한 그는 계속 새로운 길을 묵묵히 개척해가며 누구도 해보지 않은 시도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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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23 [12:05] 수정 | 삭제
  • 정말 '자립'이란 말이 어울리시는분이세요..
  • ^^ 2005/11/29 [22:20] 수정 | 삭제
  • 은영님을 여기서 뵙다니.. 너무 반가와요.
    이젠 결혼도 하시고 사업도..^^ 잘 되셨으면 좋겠네요.
    (오래전이지만 한겨레에서 동양화 수업 듣던 늙은 학생이랍니다.^^)
  • 행복 2005/11/25 [01:40] 수정 | 삭제
  • 가끔 고집이 필요하죠. 다르게 사는 것 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 나무 2005/11/24 [00:57] 수정 | 삭제
  • 돈이 되는 예술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예술로 돈을 벌고 싶다. 어렴풋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요.
    예술로, 자기가 하고싶어하는 예술로. 그걸 직업으로 삼아서 먹고살기는 하늘의 별따기죠.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기신 것 축하드립니다~
  • Avene 2005/11/23 [14:11] 수정 | 삭제
  • 아버지 얘기 너무 황당하네요. 사군자가 아니라서 실망했다니..헐..
    옛날 분이신듯 해요.
    집에서 작업을 하는 여성들이 겪는 서러움이 조금은 공감이 갑니다.
    능력 썩히지 않고 살려가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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