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외각의 어느 허름한 동네. 슬레이트 조각들을 대충 엮어 가축의 우리를 방불케 만든 한 건물은 창문이며 문이며 온통 자물쇠로 꽁꽁 잠겨있다. 손바닥만한 창문조차 검은 커튼으로 가려졌고 그 위에 또다시 흠집 난 불투명한 유리창이 겹겹이 채워져 있는 곳. 이 속에는 건물의 외양보다도 더 꽁꽁 감추어진, 누구도-주인 자신도- 도저히 조사할 도리가 없을 의식 속 낡은 상자들을 차곡차곡 채워 잠근, 네 여성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제각각 무거운 우주를 짊어지고 병든 따가운 피부를 맞대며 돌아가는 날과 돌아갈 필요가 없는 날을 꿈꾸고 있다.
연극 <지상의 모든 밤들>은 '그들이 말하기까지' 당사자 본인도 잃어버린 침묵을 여는 열쇠를 찾아 나선다. 연출을 맡은 김낙형(극단 죽죽 대표)씨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몇 개월 뒤, 단속을 피해 어디론가 숨은, 여전히 또 다른 은폐와 억압에 처한 피해여성들의 삶을 투영하고 싶었다. 그러나 법이나 정책에 책임을 묻거나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이 연극이 시민사회 일원이 되어야 할 피해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족하다"고 전한다. 이 연극은 법망의 ‘혁신과 보호’속에서도 사실상 탈성매매를 원하는 여성들의 굳게 잠긴 입을 열 장치의 모순성을 드러내고, 그럴듯한 제도를 갖추고서도 그 제도의 하수구에 흘려보낼지 모르는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진실을 보존할 이유가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 주인공들은 친분 관계가 있어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관계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도 갈 수 있을 것 같고, 성매매 공간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불금에 묶였고, 갈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는 그들에게 옛 업주가 제공한 이 은신처는 서로를 감시하는 잘 짜여진 그물이다. 넷은 외부 지원을 수용할 가능성, 진술 의지, 지지자 신뢰, 포주나 조폭과 연계 정도가 그들의 화려한 개성만큼이나 다르면서 포주, 동료들과 사방팔방 성관계로 얽힌 원치 않는 '가족'이다. 이들의 임시 거처는 새로운 차별과 더 교묘해진 은폐를 정점에 두고 그들을 에워싼다. 함축적 말들과 드러나지 않는 플롯만큼이나 이들이 '탈성매매'를 하기란 복잡하다. 이 끊을 수 없는 '유대관계' 속에 그들은 이 '치외법권의 성매매 공간'인 탈성매매로 넘어가는 불안정한 공간에서 희한한 방식으로 계속 변형된 차별과 착취를 경험한다. 범위가 성구매자 남성에서 지역 사회로 넓어졌을 뿐이다. 이 굴레엔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드는 황량하고 폭력적인 외부 사회도 한 몫을 한다. 그린벨트 지역, 앞에는 모텔이 올라가건만 유독 그들이 쉴 수 있던 무허가 건물만은 쳐부수어야 하고, 마을 운영위원회는 개를 풀어 그들의 주변을 감시하거나 동네 화장실에 한 번 다녀가도 그 주변에 모여 '회의'를 하는 등 노골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꽉 닫힌 그들의 방을 외부로 이어주는 자원봉사자 학생들은 나름의 고뇌, 위선과 이중성을 섞어 '외부 매개'라는 헐거운 고리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성특법 그리고 그 이후' 성매매 공간에서 분리된 그들은 여전히 자기 '말'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침묵을 달고 유령처럼 떠돌며 그것을 이용당한다. 그러나 이 곳은 넷의 새 안식처이자 대화가 시도되는 '우리들만의 방'이기도 하다. 여기 갇히길 원하고 원치 않는 이 여성들은 아무튼 서로 다른 개별성과 심리들을 퍼즐 맞추듯 되찾아간다. 얼굴 사진들을 붙여놓고서 대화를 하는 것 같다며 즐거워하는 십대 소영, 외부의 차별적인 시선과 행위들을 서서히 말로써 풀어내기 시작한 은영, 비만 오면 자신을 팔아넘긴 범죄자가 '그립다'는 모순 된 이야기를 토해낸 지연, 그리고 칼로 자신의 하복부를 세 번이나 자해한 경력을 지녔고 그들 중 외부 도움을 처음 긍정하여 '말'을 위한 노트를 어린 동생들에게 내미는 래경에 이르기까지, 한 ‘단위’론 결코 묶일 수 없는 색깔이 뚜렷한 네 개의 실타래들이 조심스레 아껴서 풀려나간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밤들>은 그들의 닫힌 내면 사이, 그리고 닫힌 외부와 자물쇠 틀어 채운 방 사이에서 애증, 불신, 갈등과 일시적인 화해가 숨 막히도록 반복된다. 끝까지 세 명과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택하려했던 지연. 그녀의 번쩍이는 눈빛 속에는 누구도 잠시 머무르지 못할, 특정한 형태를 갖지 않은 쟁쟁한 분노가 형형색색 빛깔을 내뿜으며 분산되고, 눈 감아야 들리는 거친 말투와 응시할 수 없는 크고 재빠른 몸동작 속에 은폐된 ‘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란 말인가. 겨우 이십 대 중반, 손바닥 두 개만한 가슴에 세계가 펌프질해서 주입한 강력한 분노로 살아왔고, 그렇기에 거대한 산꼭대기서부터 바닥까지 한 번에 와그르르 무너뜨릴 강렬한 분노를 온 몸에 빼곡히 채운 지연은 마침내 입을 연다. 어, 그렇게 듣고 싶어? 그럼 받아 적어. "나는 ‘썅년’입니다. 나는 죄 지은 적 없습니다. 나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놈이 해준 소중한 충고를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생리를 하게 되면 솜으로 틀어막아라. 그리고 손님만 받으면 돼. 이 속이 시커멓게 썩어가도, 병 걸린 동료와 더블 섹스를 하면서도 나는 시키는 대로 미친년처럼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예정된 죽음과 피흘림, 창과 송곳이 즐비하고 복병이 잠복한 벌판으로 자기 심장을 내어 밀 용기란 흔치 않다. 믿을 만한 열쇠 하나를 발견하기엔 기나긴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 것일까. 그러니 뜯으면 힘없이 깨어질 것처럼 생긴 그 유리창을 뜯지도 말고, 쳐들어가 열쇠를 제발 내놓으라고, 당신 위한 것이라며 '속일' 필요도 없다. 그녀의 세계니까,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녀에겐 이 모든 것, 지금도 속임수니까. 어쨌든 그녀에게는 열쇠를 찾을 권리가 있다. 셀 수 없이 희망을 조각 낸 밤들이 무수히 많은 문 속의 문들을 걸어 잠가 왔고, 열쇠는 어디론가 내동댕이쳐졌으며 ‘말’ 할 수 없도록 내면화되어 왔기에 오랜 침묵을 깨뜨리도록 또 다른 밤들은 그들의 입들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 불안의 공간에서 함께 몸살을 겪다가 스스로 출구를 찾은 여학생 윤미가 그랬듯 분리와 경계를 넘어 공존 가능한 소통을 확장할 때까지 말이다. 기나긴 준비 끝에 막을 올린 소극장의 이 연극 무대는 어떤 낭만이나 따뜻한 감동보다 차가운 현실 직시를 권고한다. 끊임없이 찍어내는 '창녀' 판타지가 모조리 제거된 인물들의 육성이 도드라진다. 또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불완전한 끊기는 가운데 적극적인 개입과 추리를 요하는 숨은 서사와 해소되지 않는 연속적인 긴장을 통해 주인공들의 세계에 섣불리 공감하려 드는 전적인 몰입조차 거부하고, 그렇게 재현된 새파랗게 날 선 리얼리티에 관객들이 독립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이 서사를 완결하고 ‘재생산’할 것을 요구한다. ※ <지상의 모든 밤들>은 12월 1일~31일까지 한 달간 (평일 8시) ‘혜화동 1번지 소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공연기획 이다 02-762-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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