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정’ 안에서만 출산장려?

저출산 고령화 정책 방향타 돌려야

정희선 | 기사입력 2005/12/05 [23:58]

‘정상가정’ 안에서만 출산장려?

저출산 고령화 정책 방향타 돌려야

정희선 | 입력 : 2005/12/05 [23:58]
“이래서 출산율이 높아지겠습니까? 아이를 낳으면 우선 훈장이라도 주고 다음으로 재정적으로 팍팍 밀어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교통방송 ‘굿모닝 서울’

시대를 못 따라가는 ‘정책의 위기’일 뿐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없는, “각기 다른 방향의 시각과 대책이 필요한 문제”라는 주장이 지난 11월 24일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저출산 고령화 관련 정책 및 담론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최명숙 민우회 공동대표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진짜 위기인지를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러한 문제가 위기로 인식되는 것은 성장주의와 발전주의라는 경제주의, 국가주의적 시각에서만 현상을 파악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우리 사회에선 저출산이 고령화 사회를 가속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그에 따른 경제 위기론과 각종 정책들이 생산되고 있는데, 사실은 저출산 고령화가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기 보다는 ‘현재의 정책들이 변화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정부 정책의 위기를 사회 전체의 위기로 확대해서 사고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홍미리(이화여대 여성학과)씨는 한국의 고령화 담론을 분석하며, 고령화가 가져오는 영향은 대부분 경제사회적 파급효과로 집중 이야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 듦’은 곧바로 생산성 저하로 연결되고, 고령자는 생산가능인구에서 이미 제외됨으로써 저축률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감소는 경제성장 둔화로 연결된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늘어난 고령자를 적은 수의 젊은 사람들이 먹여 살려야 한다는 논리로 위기담론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선 성장 후 분배’ 논리와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 등, 경제적 성과만을 기준으로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를 이해하고 있는 정부의 자세를 비판했다.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국민의 당연한 의무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으로 조정될 수 있는 변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특정 연령과 성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노동시장 내 제도와 관행을 개선할 때 고령화의 해결 방법이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비혼모 출산안정책은 고려되지 않아

최정은영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정부와 각 지자체의 저출산 정책은 혼인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출산 양육 지원을 강화하는 것으로, 고령화 정책은 임금직무체계, 정년 등 고용관행을 개선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분석했다.

최 연구원은 “남성의 양육 분담이 극히 낮고 여성노동자가 대부분 비정규직인 사회적 조건에서 이와 같은 정책은 결국 ‘저출산은 여성을 대상’으로, ‘고령화는 남성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라는 한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령화 정책과 저출산 대책이 여전히 성별분리적 관점에서 기획됐고 저출산이 사회 문제가 아닌 가족 문제로 접근되고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

2004년 발표된 ‘저출산 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국가실천전략’에서도 고용인력 정책 분야에서 여성고용정책이나 여성인력개발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결국 저출산 대책에 있어서 여성은 노동력이라기보다 ‘출산과 보육의 담당자’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출산으로 인해 고용과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조건은 개선시키지 않은 채, 여전히 여성은 ‘아이 낳고 키우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및 지자체의 정책에 있어서 또 다른 큰 문제점은 ‘가족 내 출산만을 지지한다’는 입장에서 결혼을 권장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투어 내놓는 출산장려책은 출산장려금, 철분제, 기저귀, 임산부 팬티, 태교서적 공급 등 일회성 금전적 대책이 거의 전부다. 셋째 출산에 한해서 최고 500만원 지급(함안군), 5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 경우 43평형 중대형 임대주택 지원(서울시) 등의 다자녀 가구 지지 정책, 맞선 주선 및 결혼비용 지원 등이 각종 출산 장려 아이디어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정상가족 형태 안에서의 출산만을 지지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미혼자와 비혼모 출산안정책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저출산을 확대하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고령화 정책에서도 배제되는 노인여성

고령화 정책 또한 많은 한계를 가진 것으로 분석됐다. 2005년 정부가 발표한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 속의 고령자 고용책은 노인여성 경제활동 인구의 특성에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노인여성은 임금근로자의 비율이 낮고, 임금근로자라 하더라도 일용직 종사자가 많아 임금근로자 중심의 고령자고용촉진법은 노인여성 고용을 촉진하는 정책으로서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 여전히 노인부양에 있어서 가족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정부는 각 가정에 수발급여를 지원함으로써 부양문제를 풀어나간다는 노인수발보장법 등에서 이런 정책 기조를 표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에 있어서 여성이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출산하는 몸으로 환원되고 있다면, 고령화 정책에서의 여성 역시 보살핌 노동을 지속해야 하는 돌봄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에선 기존의 성차별적이고 성장 발전주의적인 통념을 가지고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 변화에 대비할 수 없으며, 그러한 정책은 기존의 ‘차별’을 유지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는 출산, 가족, 연령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준비해 가기 위해서는 출산이 더 이상 인간에게 운명적인 것이 아니며, 고정된 성 역할과 통념이 더 이상 사회를 유지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보살핌 노동은 양성이 함께 책임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는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제안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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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7 [22:29] 수정 | 삭제
  • 참으로 어이가 없다.
    돈이 차고 넘쳐서 애를 많이 낳아키우는 집은?
    그런 집에 돈을 더 주고 주택지원까지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인가?
    다 국민세금인데.
  • 은이 2005/12/07 [20:46] 수정 | 삭제
  •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출산문제는 여자들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자들이 판단해서 출산하는 시대로 접어든 거 같다는 말입니다.
    여기엔 여성의 경제력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요,
    안정적인 경제력의 뒷받침(출산,육아로 경제적인 불안정상태등 )만 잘 보호해 준다면
    저출산의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되리라 봅니다.

    예전엔 남자의 경제력에 좌우해서 아이를 몇명 낳는냐 결정되었다면,
    지금부터는 여성의 경제력이 어느정도 안정적인냐에 따라서 아이를 몇명 낳는냐가
    결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돈으로 육아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있으니 아이를 낳을까? 말까? 로 고민하진 않겠죠!
  • 그램 2005/12/07 [19:54] 수정 | 삭제
  • 이건 대놓고 정부가 여성을 출산도구화하는 것 아닌가.
    한심하다.
  • 지개 2005/12/06 [23:59] 수정 | 삭제
  • 애를 다섯 이상 낳아 키우는 사람에게 43평형 임대주택을 지원한다고? 어떤 정신없는 지자체가 그러나했더니 서울시네. 미치지않고야 그런 걸 정책이라고 내놓을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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