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더 살맛이 나잖아!”

장이와 갈라의 친구되기

장이와 갈라 | 기사입력 2006/01/02 [21:19]

“근데 더 살맛이 나잖아!”

장이와 갈라의 친구되기

장이와 갈라 | 입력 : 2006/01/02 [21:19]
여기, 너무 다른 그녀들이 있습니다. 다르다는 것의 의미 이상으로 극과 극에 서 있던 그녀들이라 하면 어느 정도 맞는 표현이겠죠. 한 사람은 부모의 너무도 벅찬 관심 속에서, 또 한 사람은 부모의 심한 무관심 속에서,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 끝에서 항상 서로를 주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이 인생의 전부였지만 자신과 화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갈라(김은진)와, 그림에 몸담게 될 줄은 모르고 있었지만 자신이 될 수 있는 거라곤 화가밖에 없다고 생각한 장이(석은지)가 고등학교 때 되어서야 만나게 됐죠. 어떻게 서로를 알아 봤냐고요? 보헤미안 랩소디. 다들 아시죠? 퀸의 명곡.

미술학원에서 장이가 퀸의 테이프를 틀어서 듣고 있었어요. 그때 갈라는 주루룩 눈물을 흘렸어요. 갈라에겐 이 음악만이 희망이었거든요. 오늘 와서야 장이의 고2를 잡아준 것도 퀸의 음악이었다는 걸 알았지만요. 친하지 않았던 장이 옆에서 둘이 나란히 앉아 라디오를 바라보면서 갈라는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이 음악 하나로 인해 또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요.(이건 좀 있다 얘길 하구요)

하지만 당시엔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기 힘들었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둘 다 ‘쟤는 어려워’라고만 생각을 했다는 군요. 둘 다 그림을 잘 그리고 있진 않았어요. 장이는 견딜 수 없어 학원을 뛰쳐나가길 번복했고 갈라는 항상 울상이었죠. 자신들이 왜 그렇게 그리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요. 문제는 그녀들에게 있었던 게 아니라 환경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게 됐지만 그때는 그녀들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는 ‘그렇게 됐다더라’는 소식만을 접한 채 연락 두절이 됐어요.

갈라 ‘쪽 팔리지 않은 인생’ 프로젝트

하나만 바라보고 전진하던 갈라가 막상 도달했던 곳은 그녀의 생각과는 아주 많이 달랐어요. 열정이란 건 찾아 볼 수 없는 그저 그런 곳이었죠. 회의를 느끼고, 심하게 아프고, 학교 빠지기를 밥 먹듯 하고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결국엔 스스로 포기해야 숨을 쉴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 모든 걸 접고서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됐죠. 이젠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겠습니다 라고.

그런데 그 때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구해주었어요. 사실 그녀와 아버지는 많이 닮았지만, 너무 안 맞았거든요. 아버지가 물으셨어요, “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그녀가 뭐라고 그랬겠어요? 펑펑 울면서 말했죠. 평생 후회하면서 살 거라고, 매 순간순간 후회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그 한 마디로 다시 그녀는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길 또한 쉽게 열리진 않았죠. 일단 수능시험을 다시 보고 학교를 다니면서 유학 준비를 하라는 조건이 붙었죠.

그 후 일년 공부를 하면서 정말로 많이 아팠어요. 너무 심하게 아파서 얼마 먹지 않던 끼니마다 체하고 평생 먹을 소화제는 그때 다 먹은 것 같았어요. 꿈을 위해서라며 매일 몇 페이지나 되는 일기를 쓰며 자신을 다독였지만, 몸과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 갔죠. 시험을 또 보고 대학을 갔지만 다니진 않았어요. 그림과 영어공부만으로도 부족한 시간이었거든요. 그렇게 또 시간을 보내버렸고 결국 오래 전부터 소원이던 유학 길에 오르게 되죠. 떠나는 그녀는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를 뒤로하고 웃으면서 비행기를 탔죠. 하나도 슬프지가 않았어요. 이제야 내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라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영국에 간 갈라는 아주 재수 없는 한국인으로 찍혀가며 영어공부를 했죠. 어렵게 유학까지 오게 되었으니 이제 졸업만 잘하고 교수가 되면 부모님도 좋아하실 테고 그녀 나름대로 쪽 팔리지 않는 인생이 될 것 같았죠.

장이 ‘남들보다 뒤처지진 않을 거야’

그에 반해 장이는 엄마에게 대학에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너무 무서웠대요. 그녀는 잘 그리는 걸로 유명했던 자신이 왜 미술학원에선 최하위권에 속했는지, 왜 자기가 실기가 아닌 성적으로 미대를 들어가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거든요. 장이는 매일 재능이 없는 자기는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대요. 대신 그녀는 돈을 벌었어요. 호프집, 김밥집, 비디오가게, 조립공장 등등.

그렇게 8개월간 번 돈을 들고, 서울에 와서, 고시원에 살면서 공연만 다녔다고 해요. 그 때 공연장에서 사귄 친구들이랑 아직도 연락하며 지낸대요. 아직도 새벽에 잠을 깨면, 일주일에 5-6번은 공연장을 찾던 그 때 기억이 너무 행복해서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해요. 돈이 바닥날 때까지 5개월을 그렇게 보내면서 무대 위의 사람들을 보며 그녀는 제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먼저 대학생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그림은 도저히 못 그리겠고, 그 걸 빼니 무엇을 공부해야 할 지를 몰랐다는 거였죠.

집에서 짐이 되 버린 장이는 혼자 독학을 해서 수능시험을 봤어요. 여전히 무엇을 공부할지 몰라 어디에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원서를 넣기 몇 일전에 한국의 특수교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특수교육을 한다는 내용의 다큐를 보게 되었어요. 평소에 아프리카와 사막에 가고 싶었던 지라, ‘아, 저 과에 들어가면 아프리카에 갈 수 있구나’란 생각에 특수교육과에 들어갔어요.

학비부터 생활비까지 오롯이 그녀의 책임이었기에, 평소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 했던 방학이 오는 게 가장 싫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랬던가요, 날이 갈수록 아프리카보다는 나이를 세고 있었고, 학교를 2년 늦게 들어왔으니 졸업하면 몇 살이 되고, 임용고사를 봐서 선생님을 하면 그래도 남들에게 빠지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녀를 안심시켰다고 해요.

근데 다들 아시죠? 사람 사는 일이 다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요. 그 둘은 이젠 다 될 줄 알았어요. 그냥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구나!

보헤미안 랩소디와 노벰버, 그리고 페미니즘


 

자, 그녀들의 이야기는 다시 보헤미안 랩소디로 돌아올 때가 됐네요.
영국에 있는 갈라가 장이를 찾기 시작했죠. 너무 찾고 싶었거든요. 갈라는 친하지 않았던 장이와 자신이 같은 공간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듣고 있는 그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았던 거예요. 가끔 그럴 때 있지 않나요? 자신은 저쪽에 있는데 영혼만 쓰윽 빠져 나와 아주 멀리서 자신을 찬찬히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 말이에요. 그때 딱 그랬어요. 항상 머릿속에 떠돌았던 이미지가 둘이서 라디오를 주시하며 앉아있는 뒷모습 말이에요.

이젠 정말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즈음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이었죠. 싸이월드에서 장이 이름을 찾고도 한참을 망설이고 몇 번의 글을 쓰고 지우면서 아주 큰 용기를 내어 쪽지를 보냈죠. 뜬금없이 몇 년 만에 친하지도 않았던 그녀를 찾는다니! 네, 그만큼 갈라에겐 그 장면이 강하게 남아있었어요.

그 즈음 장이는 “운명적”으로 노벰버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이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어떻게 밥을 먹고 살아갈까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가야지란 고민에 빠지게 되었죠. 노벰버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어요. 장이는 어떻게든 표현해야 했어요. 그때 깨달은 게 있어요. 그림을 그려서 불행했던 기억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않아서 더 불행한 것을 몰랐다고요. 영화 감상문으로, 하루의 정리로, 장이는 다시 그렸어요. 이젠 점수로 평가 받을 일도 없고, 잘 그리지 않아도 됐어요. 그리고 인터넷의 자기만의 공간에 올렸어요.

그런데 너무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어떤 사람이 장이의 그림을 보고 울었다는 쪽지를 보낸 것이죠. 장이의 그림이 너무 좋대요. 그림을 꼭! 계속 그리라고 한대요. 장이는 그때 또 깨달았어요. 재능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게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였다고. 이 영화는 정말 운명적이라는 말밖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해요. 나이를 세고,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던 생각들을 단번에 뒤엎어버리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그 이후, 이 영화 추종자가 된 장이는 주위에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에겐 모두 이 영화를 보여줬어요, 마침 허덕이던 갈라에게 이 영화를 보여준 것이 그녀에게도 모든 것의 끝이자 시작이었던 거죠. 그때 갈라가 장이에게 쓴 편지가 있어요.

“정말로 고마워. 그 어떤 말로도 지금 내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나는 너무 끔찍했어. 이곳에서 지금까지 늘 꿈꿔왔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내 속에 자라고 있었는데 그걸 알 길이 없었어. 그런데 네가 보여준 노벰버가 바로 내 꿈이었어. 정말 내 꿈!!! 그래서 또 한번 도박을 했어. 원래 지원했던 학교 인터뷰를 펑크 내고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 인터뷰를 보러 간 건지. 더 놀라운 건 나를 알아보는 교수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거야. 교수가 질문을 했어. 최근에 본 공연이나 영화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나는 너무 떨려서 막상 생각을 못하다가 이걸 기억 해낸 거지. 내 인생의 영화라고. 나는 이것 때문에 여길 오게 되었다고. 떨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야. 아. 이제야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정말 노벰버와 너는 내게 너무 큰 존재가 되어버렸어.”

전혀 친하지도 않던 그녀들이 퀸의 음악을 통해 서로를 알아보고 또 다시 만나게 되고, 노벰버라는 영화를 통해 서로를 느끼게 됐어요. 근데, 이것만이 아니었어요.

갈라는 어릴 때부터 여성으로서 엄마가 겪었던 일들과 또 자신이 경험해야 했던 부당한 일들로 인해 ‘여성’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거부하며 자랐죠.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끔찍해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작업에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녀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의 주제는 ‘페미니즘’이 되었고 그 얘기를 장이에게 해주었죠.

당시 장이는 특수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만 다양성이 존중되는(?) 이상한 분위기에 점점 염증을 느끼고 있었어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넓은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면서,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해선 또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것에 대해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것이 여성학이었어요. 적어도 장이에게 있어서 여성학은 모든 ‘다름’에 대해 포용하는 학문으로 다가왔거든요. 어느 날 장이는 말했어요. 여성학을 알면 알수록 숨통이 트인다고.

둘의 주변에는 여성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구 반대쪽에 있으면서도 수도 없이 많은 말들이 오고 가게 되었죠.

우리 커서 뭐 할래요?

이제 시작하는 그녀들의 이야기입니다.
“나, 그 책 다 읽었어요. 어쩌다 보니, 지하철 안에 있을 시간이 많았거든요. 아, 역시나 그건 정말 너무나 상식적인 학문이었어요. 왜 행복한 페미니즘이라고 하는지 알겠어요. 그 책을 읽다 보면, 그 안에서의 논쟁 자체도 나에겐 아이러니 할 정도죠. 아, 역사책을 읽어야겠어요. 여성학/페미니즘 역사. 꽤 흥미로운걸요. 내일 보아요. 사실은 내가 지금 좀 많이 심심하답니다. 그러니 이러고 있지요;; 난 커서 뭘 할까요? (다 컸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건 내 철학에 위배되는 말이예용;;) 난 뭐가 되지요? 아, 역시 결론이 이상해요.” (장이)

“나 오늘 잠도 안 오는데 그 책 읽으려고요. 나는요. 영국에 가기 전까지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너무 뚜렷했어요. 무대미술. 그거 하나면 다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인생이 꼬이고 꼬여서 더 바라고 싶었던 것도 없었고요. 근데 이젠 인생이 꼬이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또 풀리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 달라지고 있어요. 무대미술. 이 한 마디가 더 이상 날 다 채워줄 수 없어졌어요. 미래가 더 불투명하게 됐지만 슬픈 게 아니라 오히려 기쁘고 다행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커서 뭐할까요 라는 질문이 예전엔 필요가 없었지만 이젠 필요하게 됐어요. 우리 커서 뭐 할래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린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너무 많잖아요;;; 그러니깐 하고 싶은걸 하다 보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무언가를 향해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이거 너무 무성의한 대답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정말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서 겨우 도달한 결론 같은 거예요. 그리고 이런 글은 결론이 수학처럼 딱 나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갈라)

“나는 잘 모르겠어요. 단지, 꿈이 사라지거나, 쪼그라드는 게 아니라, 조금씩 늘어나고, 조금씩 변형이 된다는 건 알겠어요. 하하, 요즘 내가 꾸는 꿈이 뭔지 알아요? 하하, 난 그것조차 말 할 수 없어요. 삶에 대한 충만함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어요. 우리 매일매일 자라는 거 맞죠? 그러면 계속계속 크는 거죠? 그대 말처럼, 분명 모든 게 더 불투명해져 버렸지만. 근데, 더 살맛이 나잖아!” (장이)

P.S) 이틀간의 밤샘 인터뷰를 마치며.
갈라 님의 말: 니 얘길 읽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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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한 2006/01/15 [23:51] 수정 | 삭제
  • 장이님, 보고 싶어요....
    장이님 그림들도 보고싶어요.. 저 그림 기억난단 말이예요. 뭐에 대해 그렸는지..
    이거 블로그로 너무 퍼고가고 싶은데 또라이들이 또 설칠까봐..ㅠ_ㅠ
    저에게도 노벰버가 필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ㅡ.,ㅡ.....
    얼른 돌아와요ㅠ_ㅠ!!
  • 고독의 우물 2006/01/07 [23:51] 수정 | 삭제
  • 부깽님 정말 감사합니다.

    잘 볼께요~,
  • joyce 2006/01/06 [16:25] 수정 | 삭제
  • 그런 친구 한 사람 있으면.. 그리구 그 관계 오래도록 유지해나간다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는.. 그런 얘기도 있죠..
    친구란 참.. 좋은 존재.. 갈수록 소중한 것 같아요.
  • 2006/01/04 [19:25] 수정 | 삭제
  • 음악과 영화의 힘이 크군요. ^^
  • 최현숙 2006/01/03 [22:45] 수정 | 삭제
  • 본인들은 많이 힘든 시간들이었겠지만
    글 읽으며....참 좋네요^^
    앞으로도 쉽지야 않겠지만...따복따복 자기 길을 잘 걸어가리라 믿어져요^^

    저도 노벰버 보구싶은데...누구든 방법을 꼬옥 가르쳐주세요~~~
  • 고독의 우물 2006/01/03 [17:19] 수정 | 삭제
  • 아래 분과 같은 내용인데요~~
    노벰버 어떻게 보셨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너무 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일년반이 넘게 사진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혹 전주 영화제 폐막작에서 보셨는지요...그렇다면 다른 경로로
    볼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인지요~~~
  • mojo 2006/01/03 [15:44] 수정 | 삭제
  • 기사 인상적으로 봤어요

    두분이 방황하던 시절 얘기가 요즘 제 처지랑도 많이 다르지 않아 공감이 가네요.
    기사에서 언급된 <노벰버> 라는 영화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영화가 맞나요? 저도 꼭 보고싶은 영환데 구하기 힘드네요..
    혹시 루트(?)를 알고 계시거나 소장하고 있는분 계시면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2006/01/03 [02:11] 수정 | 삭제
  • 새해를 맞아 여성들 간의 끈끈한 우정으로?!!!
    인생을 나누는 친구를 만난 것을 축하해요.
    설엔 친구에게 동보메시지 대신 편지를 써서 보냅시다.
    친구들과 변함없는 우정을 확인해야죠. ^^
    재밌어요. 두 분 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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