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을 다시 보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에 대하여

은영 | 기사입력 2006/03/20 [21:54]

나의 몸을 다시 보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에 대하여

은영 | 입력 : 2006/03/20 [21:54]
나는 지금까지 공중목욕탕에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에 어머니 손을 잡고 들어갔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내가 혼자 목욕탕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친구들이 간혹 산행을 끝내거나 여름에 땀을 흘렸을 때 함께 목욕탕에 가자고 한 적이 있지만 그 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빠져 나왔다.

목욕탕에 가기를 꺼린 것은 나의 벗은 몸을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살이 찐 몸이 내가 보기에도 미웠고, 창피하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몸에 큰 상처도 있고, 피부도 좋지 못해서 한 마디로 외모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여름에 피서를 가서도 배 부위가 노출되는 일 없이 조심을 했고, 옷으로 몸을 다 감싸고 있을 때에서야 안심을 했다. 얼굴과 손 정도만 노출이 되고 겉옷이 비집고 나온 살을 가려준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졌다.

간혹 가다가 나보다 살이 더 찐 여자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거나 여름에 수영복 차림으로 있는 걸 보게 되면 그런 당당함이 부럽다거나, 담담하게 지나치기보다는 내가 다 민망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별로 좋게 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몸매에 대한 얘기나 특히 피부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짜증이 나고, 기분이 우울해지곤 했다.

그러다 최근에 누군가가 나를 확 바꾸어버리는 계기를 제공해줬다. 얼마 전 알게 된 친구였는데 내 친한 친구의 학창시절 친구였고, 콘서트에 같이 갔다가 나와도 친해지게 됐다.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해서 몇 번 만나 같이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볼 기회가 생겼다. 그 친구는 꽤 예쁘고 늘씬하게 생겼지만 아마 나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은 좀 안타깝다고 생각할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목 부위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화상을 입은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친구가 목을 가리지 않고 다니는 것이 놀랍기도 했고,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속으론 몸의 어느 부위까지 화상을 입은 것일까 궁금했다. 부위가 크지 않다면 몰라도, 만약에 배 주위를 다 덮은 거라면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그 친구가 연애는 어떻게 할까, 섹스를 할 수는 있을까, 상대방에게 미리 이야기를 하게 될까,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걱정과는 달리 그 친구는 정말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고, 나와는 달리 연애도 잘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주말에 친구들이 만나게 됐을 때 그 친구는 회사 끝나고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워서 사우나 갔다 왔다고 하면서 약속 장소에 나왔다. 남이 내 몸을 보고 흉 볼까 두려워서 공중목욕탕에도 한 번 가지 못하는 나에 비해서, 그 친구는 정말 자신의 몸에 있는 상처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고 자신감 있고 부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친구 앞에서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나는 왜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고 이렇게 꽁꽁 감추려고만 했을까.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내가 어떻게 생겼든 남이 상관할 일이 아닌데, 왜 다른 사람들 시선에 그렇게 신경을 썼을까. 당당하고 쾌활한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내 몸에 대해서 완전히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내 몸에 대해서 창피해하기보다는 신경을 끄는 편이 낫고, 신경을 끄는 것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봐주는 것이 낫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나니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들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나씩 바뀌어가는 것 같다. 아직도 신체가 노출되는 일이 낯설기는 하지만 말이다. 조만간 아무렇지 않게 나도 공중목욕탕에 가게 될 날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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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뜬구름 2006/08/22 [01:37] 수정 | 삭제
  • 엠티 같은 데 샤워시설이 부족해서 줄 쫙 서있잖아요.
    한번에 3,4은 후딱 씻고 나와야 하는 그런 상황이요.
    다들 민망해하면서 쭈삣쭈삣할 때 제가 훌렁훌렁 옷을 벗으면 다들 안심(?)하고 옷을 벗더라구요.

    아, 쟤도 안 불편해하는데 괜찮겠지 뭐. 이런 느낌;

    처음이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여전히 실내수영장 같은 곳은 멀리하고 있지만;;
    뱃살은 배짱이 두둑한 거라고 되뇌어봅니다;)
  • zzang 2006/03/28 [00:36] 수정 | 삭제
  • 외모로 성격도 판단해버리고 사람을 딱 규정지어 버리는 거 문제인 것 같아요.
    뚱뚱한 여자에 대해서도 안 좋은 편견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살을 빼게끔 만들어버리죠.
    비만이라면 몸에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많이 찐 것도 아닌데 날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는 문제인 것 같아요.
  • 미경 2006/03/23 [15:59] 수정 | 삭제
  • 자기 몸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겁니다.
    물론 자기 몸에 대해서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몸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필요하다는 것이죠.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나 연애나 성생활에 있어서나 몸에 대한 불만이나 불안같은 건 장애가 됩니다.
    예쁘고 날씬한 사람들만 권리가 있는 게 아닌데, 그렇게 만드는 개개인들이 의식을 좀 바꿔야할 것 같습니다.
  • 보메 2006/03/23 [00:58] 수정 | 삭제
  • 자신의 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몸을 가지고 싶어하고 어떤 몸은 싫은지, 그런 생각은 결국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날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날씬하지 않으면 좋게 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그래서 자기 몸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은 결국은 다른 사람들의 몸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눈을 바꾼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화상을 입은 친구의 몸이 안타까워 보이다가 친구가 개의치 않는 모습에 아름다워보이고,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어가면 결국 다른 사람들의 몸에 대해서도 예쁘게 볼 수 있게 되겠죠.
  • yeoja 2006/03/22 [22:38] 수정 | 삭제
  •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처지가 낫다고 생각될 때 마음의 여유와 행복감을 느끼고, 반대로 자신의 처지가 다른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자신감을 잃고 창피해 합니다, 기사처럼 스스로 '나는 당당하다 누구와 비교해도 한점 부끄럼없이 자신있다'라고 생각하며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 행복감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렇게 자신보다 못한처지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 처지가 그렇게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위안을 갖는 것은 좋지만 이런 얘기를 공론화 할 때는 비교 상대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기분도 헤아려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무엇때문에 자신이 없고 우울해 하고 있었는데 나보다 못한 A같은 처지의 사람들도 당당하고 밝게 사는 것을 보고 희망이 생겼다'라는 식으로 공론화해서 얘기할 때는 A같은 처지의 사람들의 기분도 생각해서 가능한 특정한 핸디캡이나 대상을 지정해서 쓰기보다는 그냥 나보다 못한 처지라든가 라는 식으로 대상을 지정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면서 위안을 삼지만, 정작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며 비교하면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사내용에는 공감하지만 좀더 배려하는 표현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입니다)
  • guest 2006/03/22 [17:21] 수정 | 삭제
  • 몸매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서 연애도 안 하고, 성적인 것에서도 자신 없어하고, 그런 경우가 많죠. 성형을 해서라도 외모를 꾸며서 자신감을 얻어보려고도 하고, 생각보다 심각한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나 사회가 차별하는 것이 사실이지만요, 제가 생각했을 땐 자기 스스로 너무 과도하게 생각하면 결국 자신만 손해를 보는 것 같은데, 그렇게 너무 자신이 없어 하는 사람들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 HJ 2006/03/22 [09:29] 수정 | 삭제
  • 들어가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어디 아프다는 핑계로. 그러나 남들은 다 알았을지도 몰라요. 저한테 너는 괜히 그러더라 하고 얘기를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요.

    사실 몸에 대해서 건강관리만 하면 되지, 몸매나 생김새까지 신경써야한다는 게 피곤해요.

    남 신경 안쓰고 자기 좋으면 그만일텐데도 그러지 못하고 자꾸만 신경을 쓰게되는 자신이 미워질 때도 있고요.

    나이 들수록 조금씩 무뎌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물론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타고난 몸매를 고칠 재간은 없으니까요.
  • 아델 2006/03/21 [17:36] 수정 | 삭제
  • 나의 몸을 다시 보게되네요. ^^
  • 은혜 2006/03/21 [16:28] 수정 | 삭제
  • 공감 100%에요.
    꼭 살이 쪄서가 아니더라도, 몸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기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 2006/03/21 [13:31] 수정 | 삭제
  • 솔직한 이야기가 저의 이야기인 것처럼 와 닿았습니다.

    좋은 친구를 둔 덕분에 소중한 걸 깨달으셨군요.

    외모 자체보다는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닐까요.
  • waru 2006/03/21 [12:01] 수정 | 삭제
  • 의도에 너무나도 동의하고 또 공감하지만,
    살이 쪘다. 와 같은 것들은 사실 사회에서 화상입은 것과는 다르게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고 봐요. 살이 찐다는 것은 곧 게으름과 같은 자기관리 부족으로 인식하고
    있고, 그래서 살찐 것에 대한 컴플렉스는 점점 더 심화되고 스스로가
    게으르고 자기관리가 부족한 사람으로 느끼게 되죠.
    화상을 입은 것은 사회의 시선으로 그 개인의 잘못이 아닌 '당하게 된' 것을오 보게 되지만.. 사실 '몸'에 대한 권리는 개인에게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을 사회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평가하고 그 사람의 인격까지 재단하는 현실(특히 여성에게) 정말 싸워나가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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