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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소중한 친구의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 앞 라이브클럽을 찾았다. 객석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마침 그녀는 무대에 올라가 있었다. 잠시 후, 노래를 시작하는데 첫 소절을 듣고 나서 심장이 쿵 하고 멈추는 기분이었다. 그 노래는 3년 전 우리가 어느 대학교 교정의 메타세콰이어 길을 거닐며 나눈 이야기와 그 때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은 노래였기에….
잊지 못할 공연 멀리 두고 온 사랑을 잊지 못해 힘겨워하던 나의 지난 날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며 가슴에 큰 파도가 일렁인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당황스러움에 손바닥으로 쓱 닦아내고 만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리허설이었다. 기분 같아선 노래를 끝까지 듣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으로 친구의 진짜 무대를 기다려야 했다. 하필이면 그 날 친구의 무대는 제일 마지막으로 정해졌다. 공연 중간에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아까 그 노래 ‘메타세콰이어’ 듣는데 나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다. 그저 웃으며 “그랬어?”하던 친구. 그냥 흘려 듣는 줄 알았다.오랜 시간 끝에 친구의 공연이 드디어 시작됐다. 친구가 정성 들여 만든 한 곡, 한 곡의 노래가 그날따라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느낌. 나와의 추억을 담은 ‘메타세콰이어’가 이어졌다. 또다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진다. 참지 않기로, 그저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싶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그녀도 울고 있다. 노래를 잇지 못하고 기타만 치고 있다. 우리가 나눈 지난 시간이 각자에게 다른 의미로 남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이 ‘공감’할 수 있다는 건 노래가 우리에게 선물한 최고의 축복이었다. 노래로 이어진 만남, 만남들 어릴 적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서 ‘노래 잘 한다’는 칭찬에 으쓱해지던 평범한 아이였던 그녀. 중학교 1학년 때 반 아이들 앞에서 한참 유행하던 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기억을 최초의 데뷔라고 여긴단다.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며 그 미묘한 떨림과 충만한 기쁨을 처음으로 경험한 순간이라면서. 이후에도 각종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합창대회, 중창대회에서 독창을 맡아 단상 위에 오르기도 했고, 고교시절 장기자랑 시간에 빠지지 않는 ‘가수’가 되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의 특별한 추억도 알게 됐다.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 나와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친구에게 조용히 노래 불러주던 순간을 회상하며 입가에 오래도록 미소가 머물렀다. 시간은 흘렀지만 추억은 여전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보다. 이후 그녀는 지방에서 그럭저럭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의 손꼽히는 대학에 입학했으나 주변의 똑똑하고 부유한 친구들에게 왠지 주눅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감을 잃어가던 그 즈음 운동권 성향이면서 예술과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점에 매료되어 노래패에 들게 됐다. 화염병을 던지기보다 노래를 부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며 대학시절의 열정을 그 곳에 쏟아 부었다. 그러면서 노래로 얽힌 인연들이 하나 둘 늘어가던 중요한 시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졸업 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사실상 노래 부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가끔씩 아르바이트로 휴대전화 다운로드 서비스에 사용될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으나 몇 년간 노래를 하지 않아서 조금 힘에 부쳤다. 그러다 한 선배의 권유로 모 이동통신사가 매월 주최하는 공개 오디션을 찾아갔다. 자신의 노래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심사 평을 듣고 장점과 한계를 발견하게 되었으나, 대부분의 지원자가 연예인 매니지먼트회사에서 키우고 있는 십대들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이십 대 후반에 들어서는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게 느껴지고 ‘가수’가 되는 길이 멀게만 느껴져서 좌절을 느꼈다. 그 날 밤, 친구는 나의 집에서 ‘나윤선’이라는 가수를 알게 된다. 스물여섯인가 일곱에 프랑스 유학을 떠나 재즈를 공부하고 유럽에서 실력을 인정 받는 가수가 되었다는 이야기에 새롭게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랬었니? 난 정말 몰랐어.” 그저 쑥스럽게 웃고 말았다. 변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아가는 것임을 이미 터득한 그녀. 밴드 ‘Like A Dream’ 그리고 홀로서기 한국말로 풀어 쓰면 “꿈만 같아”. 노래하던 그 시절은 꿈처럼 자유롭고 행복했을까. 역시 노래패에서 알게 된 어느 후배의 소개로 ‘얼터너티브 록’ 밴드 ‘Like A Dream’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비록 자신이 부르고 싶던 장르의 노래가 아니었어도 노래와 무대에 목마르던 그녀는 선뜻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 흥얼거리던 멜로디와 불현듯 영감을 얻은 가사를 엮어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만들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다른 멤버가 이해하고 표현할 때 느끼는 짜릿한 기쁨이 그 시간을 살아있게 만들었다. 홍대와 이태원 등지의 클럽에서 일년 반 동안 활동을 이어갔다. 즐겨 찾던 홍대 앞 라이브클럽에서 어느 날 문득 ‘나도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에 달떠 그 자리에서 바로 “저도 여기서 노래하고 싶어요!”라고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는 당돌한 친구. 세 번의 오디션을 거쳐 2월 중순부터 ‘시와’라는 이름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돌아왔다. 첫 번째 오디션의 느낌은 시와에게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다. 다른 연주자의 기타를 빌려 무대에 섰는데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자신이 드디어 ‘가슴 뛰는 일’을 찾은 것 같았다고 한다.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그 떨림과 흥분이 교차된다고. ‘시와’는 좋아하던 술집의 이름인데 오래 전에 문을 닫아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이집트에 있는 사막의 이름이기도 한 그 곳. 작고 아늑하여 언젠가 좋아하는 이들을 초대해 콘서트 겸 파티를 열어보고 싶었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단다. 진실하고 조용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 시와는 ‘자기 고백적 가수’가 되고 싶다 한다. 하루는 무대 위에서 특별한 멘트를 하지 않고 자신의 일기를 조용히 읽어 내려가다 노래를 들려주었는데 기분이 꽤 괜찮았다고 한다. 자신만의 세계에 너무 갇히는 게 아닐까 두려웠지만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를 노래로 표현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지점에 가 닿는 것이 시와가 걷고 싶은 길이라고 한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가수를 꼽으라면 이상은을 든다고. 생의 비밀을 깨친 듯한 이가 들려주는 진실하고 조용한 노래를 좋아하고 자신도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시와가 만든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길상사에서’라는 노래다. “이렇게 앉아있는 이 오후에도/ 나무 사이로 보인 하늘, 아름다운 것들을/ 가만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무언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들/ 흘러가는 저 물소리도/ 어쩌나 두고 떠나기는 아쉬워/ 한걸음, 입 맞추고 돌아서네요.” 길상사라는 절에 들렀을 때 따뜻한 돌계단과 토담에 기대어 행복하고 충만한 느낌을 단숨에 표현한 곡이라고 설명한다. 정말 그 곳에 들르면 무한한 희열과 영감을 얻고 돌아오는 것일까. 때마침 오늘도 인터뷰를 하기 전에 길상사를 들렀다는데 그곳에서 ‘길상사에서’ 2탄을 만들었단다. 빨리 그 노래를 청해 듣고 싶다. *시와는 라이브클럼 빵(cafe.daum.net/cafebbang)에서 한 달에 2~3회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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