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교육적 ‘시스템’이 문제다

교사 학생 학부모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

박희정 | 기사입력 2006/05/24 [03:17]

반(反)교육적 ‘시스템’이 문제다

교사 학생 학부모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

박희정 | 입력 : 2006/05/24 [03:17]
지난 18일 청주 모 초등학교의 한 여교사가(33)가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해당 여교사는 15분간 주어진 급식시간에 장난을 치다 시간을 지키지 못한 2학년 여학생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였고, 이에 화가 난 학부모는 17일 선생님의 집을 찾은 데 이어 18일 학교로 찾아와 해당 교사의 징계를 요구한 것이다.

해당 학부모 측은 “15분간의 급식 시간 동안 빨리 밥을 먹도록 강요해 아이들이 체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때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벌을 준 점”에 대한 불만을 밝혔으며, 해당 여교사는 “문제가 확대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무릎을 꿇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알려지자 전교조와 한국교총은 각각 규탄 성명을 발표해 이 사건을 “학부모의 과격하고 무분별한 요구” 가 불러온 “교권침해”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다수의 언론들도 교권침해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도했고, 비판 여론이 집중되자 19일 학부모들은 “정당한 절차와 방법으로 문제제기 하지 못한 점”에 대한 사과문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해당 학부모들을 고소 고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교총은 23일 충북교총의 이름으로 학부모 2명을 청주지검에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이와 별도로 청주시교육청도 해당 학부모들을 고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학부모들 스스로가 사과문에서 밝힌 것처럼 집으로 찾아가 사표 요구를 하고 기자를 대동한 채 학생들과 동료교사가 보는 앞에서 실력행사에 가까운 항의를 한 것은 분명히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상대가 “젊은 여교사”라는 점에서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무조건적인 “교권침해”로만 규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직접적인 사건의 발단은 급식체계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15분만의 식사시간을 허락하는 급식체계의 문제는 누가 봐도 심각한 수준이다. 바람직한 급식 지도의 문제는 둘째치고 신체적, 심리적 건강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학부모들의 입장에선 아이들이 체하고 구토를 일으키는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불만이 학교측에 전달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될 학생들의 목소리는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최근 학생 인권문제와 관련해 ‘학생회 법제화’가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을 정도로, 현재 학교 안에서는 교사-학생-학부모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체계가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통로를 잃은 불만은 안으로 쌓일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국 폭력적인 방식으로 터져나올 수 밖에 없다. 교권을 침해하는 것은 결국 학교의 시스템인 셈이다.

전교조 측은 성명을 통해 “협소한 급식시설과 부족한 급식 시간”을 탓하며 교사의 잘못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급식체계가 잘못되었다면 개선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선생님의 역할이다. 학생들의 복지문제를 신경써야 하는 선생님으로서 급식제도가 시작된 이후 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점에 대해서 “어쩔 수 없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교권침해를 내세우는 교사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교육부는 교권침해 행위에 대한 고소, 고발 및 교사에 대한 법률 지원 강화 등 ‘교권 수호’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단지 ‘권위’만을 내세우는 “교권” 강조는 이미 학생, 학부모, 교사가 서로 싸울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갈등요소를 안고 있고, 또 시스템의 결함 문제를 묻어버릴 우려가 있다. 불만 표출과 교권침해 논란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교권” 논란을 떠나, 교육자들의 보다 근본적인 고민과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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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uri 2006/05/25 [06:27] 수정 | 삭제
  • 잘 짚어주셨네요.
    그 동영상보고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차분히 생각을 해보면 학부모들이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고,
    이번 사건이 생겨난 원인을 봐야하기 때문에,
    교권문제로만 교사한테 그럴 수 있냐고 할 문제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막되먹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거든요.
    그 학부모만의 문제로 끝내서도 안 되죠,
    아이들이 마음 놓고 식사를 하지도 못하는 상황인데도
    왜 학생들 생각은 안할까 답답했습니다.
    문제의 근본원인까지 생각해야 대책이 나오지,
    단순히 그 학부모들만 고발하고 교권 얘기만 한다고 뭐가 될까,
    실제로 학교에서 뭐가 달라질까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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