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한 방송국의 주말 오락프로그램에서 ‘천재소녀골퍼’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미쉘 위를 초청해 진행자들과 골프 대결을 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게스트까지 포함한 9명의 인원 중에서 미쉘 위와 대결할 7명을 뽑기 위해 간단한 게임이 이어졌고, 게임에서 탈락한 2명은 일종의 ‘벌칙’으로 ‘캐디’의 복장을 하게 되었다.
화면에서는 골프 경기보조원을 “클럽을 나르거나 공을 줍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자막이 지나갔다. ‘캐디’ 복장의 한 개그맨은 “사장님! 나이스 샤~앗!”이라며 코맹맹이 소리로 몸을 꼬는 모습을 보여줬다. 해당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는 ‘캐디’의 모습을 희화화 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캐디들은 단순히 클럽을 전달하고 볼을 줍는 일만 하는 게 아니며 골퍼 응대하는 법, 진행하는 법, 골프장의 구조, 골프의 전반적인 것 (클럽, 스윙, 용어) 등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않으면 캐디로서의 일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캐디는 골프장의 특성과 관련해 골퍼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도 있어야 하며, 매일 최소 6~7km를 걷는 강행군에 가까운 육체적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체력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직종이다. 그러나 방송 등에서는 골프 경기보조원의 노동을 ‘별 것 아닌 일’로 취급하고, “사장님! 나이스 샤~앗!”이라며 코맹맹이 소리로 아양을 떠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묘사는 해당 직업을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직업으로 본다기보다는 애초에 ‘직업인’의 모습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캐디’라는 직업군에 대해 이러한 묘사가 방송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것은 여성들이 다수인 직종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여성들이 다수인 직업은 특히 ‘서비스직’이나 ‘가사’와 관련된, 소위 ‘여성적’인 일들에 해당할 경우 전문성과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되곤 하기 때문이다. 가사도우미들도 대표적 예다. 가사도우미 역시 숙련된 전문적 기술을 요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방송, 특히 드라마 등에서 묘사되는 이미지는 여전히 차별적인 틀에 갇혀 있다. “주제 넘게” 안방마님 행세를 하며 문제를 일으키거나, 집에서 “부리는” 사람으로 묘사되면서 주인이 하대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표현된다. 가사도우미가 “직업인”이라는 인식이 없는 탓이다. 인터넷의 한 지식검색 사이트에 “캐디가 되고 싶은데 꼭 치마를 입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올라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캐디들은 치마를 입지 않는다.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이 올라온 것은 골프를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성 서비스 직”에 대한 기존 이미지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캐디가 되려면 예뻐야 하나요?”라고 묻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또한 “사장님~”과 같은 “기분 맞추기”나 스튜어디스를 떠올리면 항상 첫 머리에 오는 상냥한 미소 등 여성들이 주로 담당하는 서비스직은 육체적 노동에 앞서 감정적 노동이 항상 당연한 것처럼 요구된다. 가사서비스 종사자들도 화풀이나 대화상대의 역할을 강요 받는 등 필요이상의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것을 큰 고충으로 꼽는다. 하지만 그 노동을 “노동”으로 보거나 고충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KTX 여승무원들이 안전한 열차 운행을 위해 수행하는 전문적 역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사회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여성서비스직”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과 그 궤를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등 방송매체의 영향력이 막강한 사회 속에서, 차별적인 인식들이 공공연히 전파를 탄다는 것은 단지 ‘씁쓸한 일’에 그치지 않는다. 직업인들의 자부심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차별적인 노동조건을 유지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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