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것도 겁내는 학생들

부조리에 맞추도록 길들이는 학교

이윤영 | 기사입력 2006/06/13 [22:25]

질문하는 것도 겁내는 학생들

부조리에 맞추도록 길들이는 학교

이윤영 | 입력 : 2006/06/13 [22:25]
<필자 이윤영님은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편집자 주>
 
얼마 전, 00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시험날짜를 변경한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원래 21(수)일부터 시작해 23(금)일에 끝나기로 되어 있었던 시험일정을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한 마디의 상의 없이 26(월)일까지 연장했기 때문이다.

13일 월드컵 토고 전과 19일 프랑스 전을 마음 편히 볼 수 없지만, 24일 스위스 전을 볼 것에 들떠있던 학생들은 시험날짜 변경의 이유를 묻는 이 글에 동의했지만, 무엇이 두려운지 그 누구도 동의의 글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그 글을 올린 학생에게 직접 “용감하다”는 말을 할 뿐, 그 이상 연관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유조차 듣지 못한 채, 변경된 그 날짜 그대로 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여기서 내가 발견한 한국 교육의 문제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권위주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 권위주의에 대하여 자기의 목소리를 낼 줄 모르는 학생들의 태도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에 대해 건의하는 일에 겁을 내고, 심지어 동의하는 일조차 꺼려하는 모습은 다만 이 학교 안에서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런 학생들이 자라서 과연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겠는가? 타당치 않은 문제를 시정하려 하지 않고, 옳지 않은 것에 적당히 자신을 맞춰 가면서 만족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렇듯 학생들이 겁쟁이가 된 것은 ‘일등’이 아니면 ‘나쁜 아이’로 취급하는 우리 교육 덕분일 것이다. ‘일등’이 아닌 학생의 불평은 “공부도 못하는 놈”이라며 한 대 쥐어 박히는 것으로 끝나는 사회에서 학생들은 입을 다무는 법을 배울 뿐이다. 또, 그렇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즉 ‘일등’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몸을 담글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치열한 경쟁 끝에 살아남는 ‘일등’은 극히 소수다. ‘일등’이 아닌 학생들은 영원히 ‘일등’이라는 영웅 아래에서, 그들에게 끌려 다니면서도 찍소리 하지 못하는 열등감에 눌린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 문제가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을 때에도 열심히 공부만 하고 있었던 한국의 학생들. 생존경쟁에서 이긴, 공부밖에 모르는 ‘일등’이 이끌어 가는 세상에서 ‘순위 밖’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채,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그것에 자신을 맞추기에 급급한 사회는 잠잠해 보일 지는 몰라도, 결코 행복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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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마종이 2006/06/29 [00:17] 수정 | 삭제
  • 그런 말 하는거 힘들죠
    뭔가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린다거나하면
    바로 불려가는 상황인지라 다들 그랬던거 같아요
    대답은 못해줄망정 불러서 혼내는 선생들이란 -_-
    그 친구 교무실에 안 불려갔으면 글 확인이 안 될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전 교칙 좀 보여달라고 했다가 혼난 적도 있거든요 (무슨 상황이냐..)
  • ? 2006/06/20 [15:59] 수정 | 삭제
  • 동감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도 수동적인 학생이었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왜 나는 반항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후회가...;;-

    하지만 학생들 탓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껏 보고 배운게 그것밖에
    없거든요. 선생들도 다 똑같습니다. 어찌보면 그들도 불쌍한 인간들이지요.
    학생들에게 쓸데없이 우월감을 갖고 있는...기존의 권위주의에 물든...
    저는 더이상 그들을 선생님으로 여기기를 거부하고 싶습니다.
    제도권은 지들에게 말 잘듣는 인간을 키워낼 뿐... 성찰은 어림없지요.
    반박도 어림없습니다. 문제는 이게 자꾸 악순환된다는...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순응해야 되잖아요?

    학교라는 제도권 바깥에서의 목소리가 계속 투입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깨우친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고 저는 믿을래요.~
  • 이윤수 2006/06/18 [22:00] 수정 | 삭제
  • 우리나라를 좀먹고 있는 군대문화의 정체입니다.

    찌질한 놈들이 전역하고도 안 좋은 것만 배워와서는 그대로 하니까 안 없어지는거죠.

    전 중3때까지 수동적이다가 고 1,2 때 능동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으로 바뀌면서 겪은 그 엄청난 사춘기와 같은 상황 때문에 성적 엉망이 되어서 약간은 더 수동적인 상황으로 지속 되었으면 대학을 더 잘가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긴한데...

    대학교 간 후에 고등학교 때랑 많이 바꼈다고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다시 만났을때 그러시더군요.

    그나저나 월요일까지 연장한건 시험 더 잘 치라고 시간을 더 준거 같은데 -_-

    나 학교 다닐 때도 일부러 주말을 끼워넣어서 공부할 시간을 더 줘서 시험 점수 더 잘나오게 배려해줬었는데...

    스위스전이고 뭐고 난 저게 학생들을 배려하는거 같은데 그런 생각 가진 사람 아무도 없나?

    스위스전을 보더라도 공부할 시간이 24시간은 더 늘어나는거 같은데?
  • .. 2006/06/16 [02:30] 수정 | 삭제
  • 학교시스템과 그것에 길들여지는 학생들의 태도도 함께 봐야할 문제죠.
  • 네.. 2006/06/14 [18:20] 수정 | 삭제
  • 정말 적절히 지적해주셨네요.
    학교사회의 권위주의가 가장 큰 문제지만, 그에 따른 가장 큰 폐해는 학생들이 너무도 수동적으로 길들여졌다는 것인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eric 2006/06/14 [17:56]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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