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상냥한 여성’이 해야…

서비스 개념에 문제가 있다

박희정 | 기사입력 2006/08/16 [05:45]

‘젊고 상냥한 여성’이 해야…

서비스 개념에 문제가 있다

박희정 | 입력 : 2006/08/16 [05:45]
대표적인 서비스 직종 중 하나로 꼽히는 항공기 승무원은 “젊고 상냥한 여성”의 전담 영역으로 당연시되고 있다. 스튜어드(남자승무원)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매우 소수고, ‘보안업무’ 등이 중심이 된다. 스튜어디스는 “외모”가 강조되는데 ‘여승무원에 맞는’ 외모와 복장에 대한 요구가 까다롭다.

여성의 젊음과 가꾸어진 외모가 필수

모 대학 스튜어디스 학과는 지원 자격으로 “키 162cm 이상, 표준 체중에서 5kg 이상, 이하인 자 탈락 가능, 스튜어디스로서 적합한 적성과 이미지를 갖춘 자, 눈에 띄는 부분에 상처가 없어야 함” 등을 명시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의 인원선발 기준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항공사에서는 키 별로 허용되는 승무원들의 ‘적정체중표’가 제시되고 있다. 여성승무원 키 165cm의 경우 적정체중은 53.5kg이다. 적정체중을 기준으로 +4kg, -4kg까지 허용된다. 기준을 넘길 경우 비행자격이 정지되기도 한다. 반면, 국외항공사의 경우 케세이퍼시픽 등 일부 항공사를 제외하고 승무원의 몸무게에 관한 특별한 규정은 없다고 한다.

에어캐나다 같은 외국항공사의 경우, 나이든 스튜어디스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루프트한자와 아랍에미레이트 같은 경우엔, 여승무원 채용 나이 제한을 만 30세까지로 두고 있기도 하다. 우리 나라 항공사의 경우, 객실근무를 하는 나이든 스튜어디스는 보기 힘들다.

기내 서비스업무 자체가 굳이 젊고 날씬한 여성만이 담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여승무원들만 기내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하늘의 꽃”으로 이들을 지칭하는 데서도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서비스의 범주에 “꽃”으로서의 역할이 포함되는 것이다.

철도청이 KTX 운행을 앞두고 고속철도의 ‘고품질 서비스’ 이미지 홍보를 위해 여승무원들을 앞세우고 “고속철도의 꽃”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도, 우리 사회가 ‘서비스’를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백화점이나 대형 건물 안내데스크의 곱게 차린 여성들, 각종 행사에 동원되는 젊은 여성 도우미 등에서도 보이듯이 “여성의 젊음과 가꾸어진 외모”를 서비스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의 효율성보다는 ‘화사해 보여야’

서울 시내 한 멀티플렉스 극장의 경우, 극장 내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남성직원이 1/3정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자사를 홍보하는 이미지 광고에는 활짝 웃고 있는 여성직원의 모습만 등장시키고 있다. ‘서비스’라고 했을 때 유니폼을 입고 도열한 젊고 날씬한 여성의 미소를 떠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텔레마케터나 ARS 등 ‘서비스 목소리’에도 여성=서비스의 등식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인식을 반영하듯 여성들의 업종은 서비스직에 치우쳐 있다. 200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들의 산업별 구성비율에서 판매, 서비스직 비율은 74.4%에 이르고 있다.

여성들의 서비스직 집중현상은 서비스직이 고객을 직간접 대면하면서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세심하게 챙겨주고 보조해주는 것이 “여성의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비스직=여성의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서비스직을 숙련된 기술이나 “육체적 노동”이 없는 ‘쉬운 일’로 평가절하하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서비스 직에서 요구하는 노동강도는 만만하지 않다. 먼저 서비스 직에는 복장규정이나 까다로운 행동규정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멀티플렉스 체인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치마(경우에 따라서는 바지제복)유니폼, 검은색 구두, 살색 혹은 커피 색 스타킹을 착용해야 한다. 머리는 앞머리를 깔끔하게 넘겨 망을 이용해 뒤로 정리해야 한다. 화장에서 붉은색 립스틱은 필수인데, 말하는 것에 손님이 집중하게 만들고 조명 아래에서 화사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러한 복장은 서비스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치마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멀티플렉스의 한 직원은 “낮은 서랍장이나 바닥 청소도 해야 하는데 치마 복장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많이 가는 한 유명한 카페 체인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이모씨(24)는 근무할 당시 손님이 아무도 없을 때도 다리와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부동자세로 서 있을 것을 요구 받았다고 한다. 언제나 서비스를 위해 준비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백화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다른 여성은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것보다 아르바이트생끼리 대화도 해선 안되고, 화장을 꼭 해야 하는 등 행동에 대한 제약조건이 많아서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평가받지 못하는 고단한 감정노동

서울시내 A 멀티플렉스에서 스탭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씨(21)는 “동료 중 한 명은 무표정하게 있었다는 이유로 한 남자 손님이 ‘이런 데서 일하는 사람이 왜 웃지 않고 있냐’고 항의를 받았다”고 전했다. 서비스직에게 미소와 친절은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B 멀티플렉스에서 4개월간 일한 한 여성(23)은 근무 후 건강에도 무리가 왔다고 한다. 육체적 일뿐만 아니라 감정적 스트레스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걸로 클레임(불만사항)이 들어오는데도 일방적으로 참아야 한다. 손님에게 맞서서 대꾸했다가는 바로 해고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낮은 편이다.

노무사 정형옥씨는 “감정노동은 노동으로 인정이 안되고 있어서 노동의 대가에 대해 임금도 반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성서비스직이 저평가와 저임금의 순환고리 속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다.

텔레마케터 직종을 연구한 정 노무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대부분인 텔레마케터의 경우도 엄청난 감정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할 것을 요구 받으며 이를 녹음해서 듣는 감시체계가 있고, 이를 통해 감정노동이 ‘평가’의 대상은 되는데 ‘노동’에 대한 인정은 안 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서비스직에게 요구되는 “친절함”은 ‘손님은 왕이다’ 식의 일방적 상하관계를 의미하고 있다.

제과점에서 일하고 있는 박모씨(30)는 “아저씨 손님들 경우 보자마자 반말부터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한 번은 술 취한 아저씨가 왔는데 도넛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길래 “집게를 사용해주세요” 라고 했더니, 기분 나빠 하면서 바게트를 썰어달라고 했단다. 바게트를 썰어줬더니 “너 같으면 이렇게 썰면 먹겠냐?”고 말해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박씨는 “빵을 사러 오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화가 많이 났는데 그걸 풀러 시비 붙이러 오는 것 같았다”며, “나도 원래는 친절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는데 손님들의 그런 대접 때문에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한탄했다. 외국은 서비스 한 것에 대해서 팁으로 지불해주는 문화가 있는데 “이제 그 문화를 이해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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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경 2007/03/03 [19:04] 수정 | 삭제
  • 여성이 많은 비율을 차지 하고 있는 서비스 노동에서 감정노동의 평가가 가치 절하되고 여성성이라는 규범하에 강요받는 친절한 미소, 공손한 태도, 아름다운 외모 (물론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중요한 자질이다.) 등은 여성을 인간이기 보다 박제화된 사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물론 서비스직이 일의 특성상타인에 대한 이해, 사려 깊은 마음으로 고객을 대해야 하는 직원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합니다만 이것을 이유로 직원의 주체성까지 빼앗아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별자리 2006/08/21 [20:27] 수정 | 삭제
  • 외모로 사람 계급을 나누는 짓 그만했으면 좋겠다.
  • amana 2006/08/19 [11:04] 수정 | 삭제
  • 승무원직은 한국여자들 신체 사이즈를 풀빵 찍어내려고 하는 것 같군요.
  • 선화 2006/08/18 [22:10] 수정 | 삭제
  • 갈수록 더 외모를 중심으로 가게 된다고 하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외모에 대한 통제나 외모지상주의는 사라져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런 식의 외모 기준, 복장 단속은 전근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 hope 2006/08/18 [18:32] 수정 | 삭제
  • 세상엔 별별 사람 다있다는 걸 알게된다.
    반말 쓰는 사람이 제일 기분 나쁘다.
  • 2006/08/17 [18:28] 수정 | 삭제
  • 친절한 것은 서비스직에서 필수고, 서비스직이 아니더라도 좋은 덕목이겠죠.
    그러나 친절함을 억지로 가장해야 할 정도로, 피곤하고 짜증이 나는 경우들이 많은 직장환경이라면, 그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개선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환경은 개선해주지 않고, 너무 피로하고 쉬지도 못하고 복장까지 단속하고 대우도 안 해주면서 친절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일이죠.
  • 뉴라 2006/08/16 [16:26] 수정 | 삭제
  • 저도 편의점이나 마트 알바하면서 계산할 때 남자손님들이 돈을 던져서 하루에 열두번도 더 기분을 잡쳤습니다 ㅡ,.ㅡ 담배 이름을 헤깔려하길래 제가 말해줬더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질 않나 자기 식대로 말해서 못알아들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질 않나
    짜증 지대;;
  • Null 2006/08/16 [16:05] 수정 | 삭제
  •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여성성!!

    그게 서비스로 요구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거였군요.

    남자는 서비스 받아야 하고 여자는 서비스 해야 하는 걸로
    사람들 생각 속에 개념이 서있는 것 같아요.
  • 경험 2006/08/16 [14:26] 수정 | 삭제
  • 노동이라기보다 사람 자체를 구속시키려 하는 것 같다.
  • carpediem 2006/08/16 [14:14] 수정 | 삭제
  • 도우미 같은 거 하면 짜증나게 만드는 손님들 엄청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다 참고 미소를 지어주어야 하니까 성질 다 버린다구..
  • 아카시아 2006/08/16 [07:12] 수정 | 삭제
  • 촌스러운 거 왜 바르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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