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방황의 끝

김밥 마는 수진언니

석은지 | 기사입력 2006/08/29 [17:48]

모든 방황의 끝

김밥 마는 수진언니

석은지 | 입력 : 2006/08/29 [17:48]
“초등학교 때, 다른 엄마들은 담임선생님을 챙기는데 우리 엄마는 다른 친구들을 챙겼어.” 이런 엄마를 보면서 수진언니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김밥을 말 때 집에 있는 재료가 많아서 재료만큼 쌌더니 김밥이 많은 거야. 그럼 나누어 먹는 게 당연한 거잖아.”라는 말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영국에 갈 때와 한국에 올 때의 변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에 다녔는데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고 사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휴학을 하고 영국으로 언어연수를 갔다. ‘한국에서 다른 이의 시선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는지’ 깨달았다. 그 때 생전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란 것도 했다.

2년을 그 곳에 있으니 영국에서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에선 휴학 기간 연장이 안 되어 자퇴해버렸다. 그녀의 표현을 따르자면 이렇다. “너 안 돼? 그럼 나도 안 돼.”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영국에 올 때와 한국으로 돌아갈 때 나이가 바뀌어 버렸어. 내가 갖고 있는 (나이라는) 숫자와 현재 내 모습이 한국에서는 매치가 안 되는 거야, 한국은 나이와 그 모습이 정해져 있잖아. 그게 너무 무서웠었어.”

그런데 영국에서 살기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러 한국에 잠깐 들어간 사이에 교통사고가 났다. “그 순간 덜컥 겁이 났어. 영국에서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도 아무도 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도저히 못 가겠는 거야. 짐도 아직 영국에 있었는데.”

“나중에 크면 장애 아이를 입양하자”

어렸을 적부터 친한 친구가 초등 6학년 때에 입양된 사실을 알고 힘들어했었다. 이 친구와 이웃집에 뇌성마비 장애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를 보며, “나중에 크면 우리 꼭 장애 아이를 입양하자.”고 약속했다. 이때가 중2때였다. “나도 왜 그런 약속을 했는지 모르겠어. 모든 게 그냥 너무 자연스러웠어.”

영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입양되어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호주에 있는 샛별학교에 관한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입양아뿐만 아니라 입양가족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주말학교다. 부모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한국인을 3명 입양한 외국인도 보았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노르웨이 이야기였는데 한국 교민은 300명인데 한국입양아가 4000명이란다.

“노르웨이에 샛별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꿈을 꾸었어.”

잠깐 한국에 들어온 사이 사고로 뜻하지 않게 쭉 머물게 되면서 그녀는 자연스레 한국입양 홍보회에 찾아갔다. 이곳에서 ‘0세부터 50세까지 모든 이들과 상호작용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타고난 적극성으로 많은 활동을 하며 정말 수많은 사연과 가족을 만났다. 특히 연장아 입양으로 힘들어 하는 아이와 부모를 볼 때와 갓난아이 때 입양해 몇 년이 지나 장애가 발견되었지만 파양하지 않고 키우는 가족들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입양을 하고 시간이 지나자 표정을 짓는 것 외에는 달리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자신의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키우고 있는 부부가 있었다.

“입양가족캠프에 갔었어. 이 아이를 6개월 만에 만났는데, 아이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표정으로 나를 반기는 거야. 그 때, 정말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여기에서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이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어.”

그렇게 그녀는 특수교육과에 오게 되었다.

그녀가 특별한 이유

2006년 5월. 교육실습 첫 날 교생들에겐 학교 행사를 위해 강당을 꾸며야 하는 특명이 주어졌다. 교생들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빈 교실에 둘러 앉자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두 한껏 힘을 준 정장차림 사이에서 자유로운 복장 때문에 눈에 띄었다.

그녀 차례가 되었다. “모든 방황의 끝인 특수교육과에 와서...”로 시작하는 자기소개를 했는데, 나를 포함한 몇 몇은 웃음이 터졌다. 우린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순간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웃고 있는 당신 또한 돌고 돌아 이곳까지 오셨군요 라는.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그 후 옷차림과 표정과 신발과 화장을 포함한 많은 부분에서 지적을 받으며 우리 모두는 점점 비슷한 모습이 되어 갔지만, 그녀에겐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그녀가 배정받은 반은 1학년이었는데 기숙사에 사는 한 아이가 아빠로부터 방치되고 있었다. 학교 규정에 의해 주말마다 기숙사에서 나가야하는데 아이에게 무심했던 아빠는 일주일 내내 기숙사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학교에 전학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아이는 ‘시설에 들어가더라도 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마음 아파했을 뿐이었지만, 그녀는 이 아이를 그냥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발로 뛰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매일 밤 11시가 넘어 교문을 나서고 때때로 교실에서 밤을 꼴딱 새기도 하는 빡빡한 실습 중에, 주말엔 이 아이를 집에 데려가기도 하고, 그녀가 오랜 기간 자원 활동하고 있는 입양홍보회에서 여러 방법을 물색하고, 급기야 그녀에게 감동받은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돌봐주시기도 하는 등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사실 난 내가 해야 하는 일만으로도 힘들었고, 연구수업 날짜가 다가올수록 스트레스가 극에 치달아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대단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이젠 알 것도 같다. 그녀에게 그건 일상이고 아무것도 아닌 일임을. 재료가 많아 김밥을 많이 말았으니 나눠주는 게 당연하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우리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화제를 돌렸다. 한국에선 일정한 모양새를 갖춰놓아야 하는 이십대 후반이라는 나이와 1년 후의 졸업이 부담되지는 않느냐고 물었더니,

“내 마음 어느 부분에서 울림이 있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내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는 거 같아. 나에겐 그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해. 엄마는 나보고 그래. ‘지 혼자 지 나이를 잊고 산다’ 고. 나는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어서 좋아.”

그녀는 졸업 후 보행훈련전문가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가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지금은 시각장애에 관심이 꽂혔기 때문이라고.

처음 만난 날. 자기 소개처럼 그녀가 모든 방황을 끝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 속의 울림을 들을 줄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데, 그녀는 아마도 삶이 다하는 날까지 가장 어려운 그 일을 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여전히 많은 재료로 김밥을 말아 함께 나눠먹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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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netz 2006/09/05 [18:30] 수정 | 삭제
  • 한국은 나이와 그 모습이 정해져 있잖아.
    -> "..........."
  • 돌깡패 2006/09/05 [16:23] 수정 | 삭제
  • 수진 언니!
    여기서 보니 너무 반갑네요.
    주말마다 기숙사에서 나가야만 했던 그 아이가 누군지 짐작이 가서 놀랐어요.
    혼자서 "아하! 걔가 걔였구나!" 하고 있지요.
    다행이네요.
    반가웠어요.
  • 레일라 2006/08/31 [12:45] 수정 | 삭제
  •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도록.. 자기만의 시간 감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죠.
    저처럼 그 부분에서 비슷하게 생각하는 분을 만나 반가워요.
  • with 2006/08/30 [06:28] 수정 | 삭제
  • 김밥 말며 살아가고 싶네요. ^^
  • 리리 2006/08/29 [21:15] 수정 | 삭제
  • 마음이 풍요로우면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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