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노트북 대화

조각가 김명아

혁은 | 기사입력 2006/09/12 [20:45]

그녀와의 노트북 대화

조각가 김명아

혁은 | 입력 : 2006/09/12 [20:45]
작년 겨울, 그녀의 졸업작품 전시회에 갔다. 그녀는 조소를 전공하는 미대생이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아는 사람의 작품이라 그런지, 그녀의 작품 두 세 점은 금방 눈에 들어왔다. 인상 깊었지만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작품들에 꽃 한 송이만 놔둔 채 8개월이 흘렀다.

그녀와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났다. 그제야 그녀의 작품에 대해 물어봤다. 제목은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유독 사람의 전신상에서 머리 부분이 뻥 뚫려있고 그 안에 손가락들이 뻗어 나와 서로 스칠락 말락 했던 첫 번째 작품이 기억나서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이야기들

“그 작품의 제목은 <의사소통의 부재>에요. 그건 내 청각장애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거예요. 예전에 내가 적은 일기를 보면,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가 않는 수많은 정보들, 그리고 이야기들……. 나도 알고 싶다. 왜 나일까?’ 이런 글이 있거든요. 그래서 머리를 통으로 만들고, 머리 속에 손가락을 넣어서 기약 없이 흘러가는 소리들, 정보들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머리 속에 손을 넣었던 거였어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자신의 작업들이 주로 장애와 관련한 경험들을 소재로 하여 만든 것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작품인 <소리굽쇠>도 그래요. 소리굽쇠가 내는 소리가 있는데, 원래는 다른 믹스된 음악도 같이 해서 들리게 하려는 거였거든요. 음악이 잘 안 나와서 제대로 안되긴 했지만. 내가 듣는 소리가 과연 이 소리일까? 소리라는 것은 어쩌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던 거였어요.”

지금 이야기하기엔 타이밍이 늦은 거라고 독자들은 생각할까. 그녀는 청각장애학생이다. 나는 작년에 그녀의 수업 대필도우미를 하면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를 인터뷰하기로 했을 때 사실 많이 고민했다. 그녀와 ‘장애’는 어떤 관계일까. 나는 ‘그녀’를 이야기할 때 ‘장애’에 대해 얼마만큼 써야 할까. 그녀는 자신의 ‘장애’가 자기에게 얼마만큼의 비중을 가진다고 느낄까.

마음 한 켠에 이런 고민을 가지고 학교 안의 어지러운 커피숍에서 오랜만에 그녀와 노트북으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곧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냥 그녀의 삶 속에 녹아나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 되는 거였다.

다양한 영역을 다루는 ‘조소’에 매력

“한마디로 말하면 우유부단하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행동도 느릿한 편이고. 여러 가지 새로운 걸 해보는 걸 좋아하고,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해요. 그리고 세상에 대해 여러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해야 하나? (웃음) 정확히는 비판하려고 하기보다는 아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런 편이에요. 왜 자꾸 결점만 말하는 것 같지? (웃음)”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말에, 자기도 자기 자신을 100% 모른다면서 이렇게 늘어놓는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녀는 자유롭고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인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예고를 갔어요. 예고에서 동양화, 서양화, 조소, 디자인 4개과를 1학년 때 해보고 2학년 때 선택하는데, 전 입시미술을 매우 싫어했어요. 매일 똑같은 거. 그리고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해야 하고. 그래서 서양화와 소묘가 너무 하기 싫었거든요. 근데 미술전시회 하는 걸 보니까 조소과가 제일 다양한 영역을 다루는 것 같아서 매력을 느꼈어요. 그리는 것보다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했고요. 조소과를 선택하게 되었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술을 했다는 그녀에게 미술 작업은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았다. 그녀는 금속공예와 부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들에 대해 쉴새 없이 이야기했다.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녀는 지난 학기,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휴학을 했다. “지난 학기에는 휴학하고 대학원시험을 위한 영어공부를 했고, 지금은 10월에 있을 대학원 시험을 보려고 준비 중이에요. 되게 걱정 되요.” 앞으로도 쭉 미술 쪽에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싶어하는 그녀는 요새 부쩍 현실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아무래도 졸업할 때가 가까워오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미대가 졸업하고 나서 진로가 명확하지 않아요. 미대 나와서 취직하려면 디자인 쪽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진 직업을 가지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작가활동 하면서 투 잡을 뛰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일명 ‘전환의 순간’이라는 졸업에 직면해 있는 그녀의 고민은 졸업과, 현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장애’가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살아오면서 하나 알게 된 게 있는데, 세상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거에요. 어떤 분야에서 내가 원하는 성과를 거두려면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장애라는 것과 그것이 떨어질 수 없는 거에요. 노력을 해도 남의 2배 정도는 더 노력해야 하잖아요.”

어제 오늘 문화관 앞에서 취업채용 박람회를 하기에 가봤더니, 장애인을 채용하는 곳은 삼성 에버랜드, 삼성화재 딱 두 군데 밖에 없었다고 한다. “거기 CJ나 SK, 워커힐, 대한항공, 구글, 현대, 동부 등등 대기업들 많이 왔었는데… 좀 그랬어요.”

학내에서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이라는 장애학생인권단체 활동도 하고 있는 그녀는 활동을 통해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더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애인권에 대해서 많이 공부한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여행을 떠나듯이

졸업을 앞둔 그녀는 현실에 대한 불안과 자신의 의지와 그리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졸업할 때가 되니까 취업, 결혼, 미래, 내 40~50대의 모습을 많이 그려보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게 보통 사람들, 혹은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네요. 선배 장애인들이 많이 닦아 놓지 못한 그 길을 우리가 닦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도 많이 들고요. 그렇다고 우리도 무책임하게 그냥 우리들의 위안만 생각하면서 살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번 겨울에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친구랑 배낭여행을 떠나려 한다는 그녀. 기회가 닿는다면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이집트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아프리카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거대한 피라미드와 미이라, 특히 벽화의 그림들이 제일 멋진 것 같다면서.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는 ‘전환의 순간’에 맞닥뜨린 불안함과 두려움을 많이 드러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기 좋아하는 그녀가 여전히 잘 해낼 것이라는 것을.

“사실 걱정이 많이 되지만, 그래도 미래의 내 모습이 남들 부끄럽지 않게 당당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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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자 2006/09/15 [02:39] 수정 | 삭제
  • 전시회 하게 되면 알려주삼. ^^
  • 라인 2006/09/13 [03:49] 수정 | 삭제
  • 대필도우미를 하면서 만난 인연이군요.
    다를 바 없지만, 또한 분명히 다른, 여성들과 만나는 기쁨이 작지만 소중합니다.
    소리굽쇠에 대한 얘기는 저 또한 공감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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