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몇 년 동안은 일년에 한두 번 꼴로 만난 것 같다. 그래도 그와 아주 가끔씩 만날 만큼의 연이 닿아있는가 보다. 이상도 하지. 자주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면서, 만나자고 전화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걸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근황을 물어보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서는 내 편에서만 이런저런 얘기를 잔뜩 늘어놓고는 헤어지곤 했다. 어쩌면 이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 외엔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인터뷰할 요량으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물어보는 것에 대해 답변을 하면 된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런 건 못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말이 없는 사람인데, 한번씩 던지는 웃음과 재치 있는 말로써 상황을 유연하게 넘기는 유머감각이 신선하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예전에,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 “정신보건 사회복지. 아직은 아니고, 수련을 받고 있지.”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가 ‘상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범위를 넘어서 “다른 쪽으로 할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른 쪽’이라 함은 ‘정신보건 사회복지’ 쪽이라고 한다. 굳이 명칭을 달자면 말이다. 상담을 하다 보니까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거기서 더 들어가면 정신분열을 겪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다 보니 차츰 정신질환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게 되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현재까지 오게 됐다. “언제나 그랬던 것 같아. 어떤 분야에서 한계가 보이면, 이 일을 처음에 하려고 했던 동기도 흔들리게 되고, 그래서 계속 머물지 못하고 이것도 하게 되고, 저것도 보게 되고. 솔직히 그것도 좀 고민이 된다.” 고민이 된다고는 말하지만 이어서 “하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라며 말을 맺는 걸 보니, ‘길이 보이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아직은 머물기보다는 “길을 찾는 중”이고, 그런 과정을 충실히 밟고 있는 모양이다. 크게 흔들리는 경험 그는 목소리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한계’를 느끼고 있지만 성실히 하고 있고,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그러니 흔들릴 이유가 없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길을 찾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정확히 어느 기간 동안 성과를 달성하고 성취해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낙엽처럼 보였다. 바람이라도 불면 모든 것을 놓고 떠내려가버릴 것 같이, 어느 공간에도 몸을 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고 부유하고 있었다. 내가 그때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웃었더니, “상투적인 말 같겠지만, 뼈저리게 느낀 경험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 통에 순간 숙연해졌다. 생각해보면, 그때 그가 안고 있는 문제는 그를 참으로 어렵게 만들곤 했었다. “지금은 그런 힘이 생긴 것 같아. 누군가를 만나고 떠나 보낼 수 있겠지. 이젠 백 퍼센트 막막하지 않을 것 같아. 올해 어느 책에서 ‘만남도 인연이지만, 헤어짐도 인연이다’라는 글귀를 봤는데 가슴이….” 몇 고비를 넘겼음에 틀림없다. 어떤 누구의 말도, 어떤 누구의 손도 도움이 될 수 없었던 시간은 지나가고, 이제는 책에서 만난 글귀마저도 그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게 치유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이제는 사그라들고, 사그라들었지만 그래도 흔적들은 남는 것 같다”고. 그러면서 아픈 경험들에 대해 이젠 고마워하고 있었다. 세상을 살면서 그런 경험은 해봐야 될 것 같다면서. 사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겠냐고. 필요한 경험이었다고. 모든 사람을 껴안으려 하지는 않아 어려운 경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사람에 대한 관심’에 기울이는 그에게는 귀중한 경험이 되었던가 보다. “알면 알수록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점점 신비하게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그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의 끈들을 여전히 놓지 않았고, 결국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듣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 몇 개월 전에는 병원수련을 받으면서, 폐쇄병동에도 처음으로 가봤다. 이중 문으로 폐쇄된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정신병과 관련한 병원시스템을 관찰했던 시간들은 그에게 무척 낯설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내 선은 여기까지, 라고 얘기해줘야 할 때가 제일 안타깝지. 그러나 내가 모든 사람의 구세주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내가 돌봐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중요하고, 돌봐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껴안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 같다.”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심리적, 정신적 문제를 상담하고 돌아간다. “안타까운 일”들은 많지만, 아직은 “스스로 소진되어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한다.” 또다시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공부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여길 경황이 없다”고 한다.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몇 년간 만나도 그에 대한 변치 않는 편견(?)이 있다면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말했더니 “말을 하는 것보단 차라리 글로” 쓴단다. 글로 쓰는 게 편하다고 하니, 이 사람은 참 다르다. 친한 친구들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데, 그를 두고 “독특하다”고들 한다는데. “우연히 길을 가다가 혹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가 교차하면서 다른 버스에 탄 어떤 사람의 옆모습을 보게 되기도 하잖아. 그러면 저 사람은 나와 무관한 사람이지만,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라는 막연한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따라가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첫눈에 반한다는 게 절대 없다”는 그가 한번은 버스에서 만난 사람이 눈에 확 들어와서, “목적지에서 내리지 않고, 그 사람과 같은 곳에서 내린 적이 한번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뭔가 이끌리듯 따라가긴 했지만, 그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 자신이 내려야 하는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처음 그를 만나는 사람의 태반은 “차갑다”고 한다지만 그를 조금 알고 나면 이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그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조용히, 깊이 담고 있다는 것을, 그를 알면 알수록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차츰 그의 숨겨져 있는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재미있게, 찬찬히,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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