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온 여자

인터넷 기술활동가 달군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6/11/08 [03:53]

자전거를 타고 온 여자

인터넷 기술활동가 달군

조이여울 | 입력 : 2006/11/08 [03:53]
낙엽이 쌓인 사무실 부근에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5월부터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평택평화대행진에도 자전거를 타고 참석했다가 첫날 경찰에 붙들렸는데 “자전거 지키려다” 연행됐다고 한다.

서울에서 모르는 길을 자전거 타고 찾아가긴 쉽지 않은 일 같은데, 아직 차선도 변경을 못한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자전거를 타긴 해도 “도로에 나서는 것은 자신이 없었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그녀가 자전거로 출퇴근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두 사람이 앞뒤로 붙어 달리면서, 말하자면 “도로연수”를 시켜준 것이다.

인터넷의 매력에 빠지다

내가 아는 그녀는 언제나 인터넷과 함께였다. 대학 2,3학년 때쯤 인터넷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오프라인에선 내가 목소리를 내거나 낄 자리가 없었는데, 온라인에선 그게 가능하고, 의견이 오가고, 그러다 보니 뭔가 이루어지기도 하더라”는 것이 그녀가 느낀 사이버 공간의 매력이다.

인터넷과 오랜 시간 함께였으니, 사이버 공간이 매력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온라인은 소모적인 경우가 많지만” 이라고 토를 몇 번이나 단다. 그러나 어쨌든 “뭔가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고, “인적 풀도 넓어졌다”는 것이다. 아직도 인터넷의 매력에 빠져있는 것 같다.

그녀의 최근 자취는 진보넷에서 기술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2년이 넘었다. 기술 담당이면 달리 하는 일도 많을 텐데, 주로 블로그 이야기를 했다. 블로그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정서적인 느낌들을 교류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사실, 인권단체 활동가와 같이 무거운 포스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개인 냄새’를 맡는 것은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단체 속 개인이 아닌, 개인 자체의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또, 어떤 주제에 대한 정돈된 글보다는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그 주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녀는 맡겨지는 일들, 외부에서 요청이 들어오는 일들도 하지만, 스스로 기획하는 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을 말하는 건가 보다. 그녀는 지금 알고 있는 사람들의 테두리를 벗어나 “보다 넓은 소통을 위해” 메타 블로그를 만들고 싶어한다.

새롭게 사귀게 된 친구, 엄마

그녀가 20대 중반 들어와서 새로 사귀게 된 친구가 있다면, 그건 너무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왔던 엄마다. “많이들 그러듯이” 그녀도 엄마와의 관계가 나이 들면서 가까워졌다.

“내가 아는 엄마는 음식 잘 만들고 재봉틀도 잘 다루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엄마가 너무나 익숙했는데, 지금은 엄마에게서 다른 사람을 보게 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결혼하고 10년간 다닌 직장 그만둔 것을 내심 후회하는 엄마라든지, 사진을 배워 작가가 되고 싶어했던 엄마라든지, 집을 나가고 싶어하는 엄마라든지.

10대 때는 몰랐던 엄마다. 그땐 잠 깨워 학교 보내는 엄마,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하는 엄마, 독립해서 살겠다며 반항하는 딸이 야속해 눈물 흘리는 엄마만 알았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울면 “왜 울어!”라고 소리 질렀다는 그녀. 그땐 엄마란 사람이 자신과 정서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나도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엄마에게도 친구가 필요하고 여행이 필요하고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엄마와 친하게 됐다. 친구가 없어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는 엄마를 위해, 그녀는 인터넷에서 엄마가 함께 여행을 즐길만한 사람들이 있는 동호회를 찾아봐주기로 했다.

채식, 여행, 그림

그녀의 엄마 얘길 듣다 보니 어느새 배가 고파왔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이 먼저 점심 식당으로 자리를 잡은 곳은 하필이면 삼겹살 집이었는데, 그녀는 1월부터 채식을 시작했다고 했다.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다행히 그녀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그래도 삼겹살 냄새 맡으며 도시락을 먹는 그녀에게 몹시 미안했다. 그녀는 원래 고기 류를 좋아하지 않아서 채식 실천이 편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채식주의자임을 매번 이야기해야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일 것이다.

채식에 대한 수다모임에 참석한 김에 채식을 시작하고, 자전거 행진을 준비하는 김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게 된 그녀, 얼마 안 가 담배도 끊었다고 말할 것 같다.

그녀는 자기 인생에서 큰 그림, 혹은 긴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오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좋다”고 했다. 뭐, 아주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년부터 올 초까지 이틀에 한 번 꼴로 야근을 했더니 좀 소진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여행 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는 그녀,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림 그리는 것” 정도가 떠오른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그림을 잘 그린다. 언젠가는 그녀 인생의 큰 그림, 긴 그림도 그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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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댄싱 2006/11/11 [00:11] 수정 | 삭제
  • 즉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들이 부럽네요.
  • 천국보다 2006/11/09 [12:26] 수정 | 삭제
  • 저도 나이 들어서야 엄마를 친구처럼 사귀게 된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는데..
    엄마와는 싸우면서 가까워지는 면도 있죠.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 닮아가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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