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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을 제정, 개정하거나 정책을 세울 때 저출산 고령화 정책에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해서 평가하도록 하는 ‘저출산·고령화 영향평가제’가 도입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법과 제도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 받게 되는 것이지요.
‘성차별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는 요구가 오랜 기간 지속된 후에야 ‘성별 영향평가제’가 이제 막 도입된 것에 비하면,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걱정하는 여론이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여성고용차별 문제를 비롯해 성매매 등 심각한 여성인권 사안과 관련해선 정부 각 부처가 의지를 모아 해결에 나서는 모습을 보기 무척이나 어려웠는데, 저출산 고령화 정책은 보건복지부와 노동부, 기획예산처, 심지어 여성가족부까지 적극적으로 손발을 맞춰 펴나가겠다고 합니다. ‘평등권’ 무시하는 출산장려책 정부가 어떤 정책을 세우고 실행해나갈 때, 다른 법 제도들도 함께 방향을 맞출 수 있도록 살피고 조정해나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저출산·고령화 영향평가제’가 도입된다는 것은 정책이 일관성 있게 시행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저출산 고령화 정책의 방향 자체가 잘못 설정됐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응책으로, 정부와 지자체는 앞다투어 출산장려 정책들을 내놓았습니다. 아이 셋을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국회의원들의 발상부터 시작해서, 주택공급에 출산 인센티브 정책을 도입하겠다는 건설교통부의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과, 맞벌이 부부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온 바 있는 재경부의 ‘소수 공제자 추가공제’ 폐지(다자녀 가구 추가공제로 전환)안 등이 그것이죠. 교육부도 나서서 교과서에 인구 감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가정을 표현한 삽화에서 1자녀 가정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걸 막겠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저출산 대책으로 부처 내 미혼남녀에게 데이트 서비스를 지원하겠다고 해 비웃음을 샀던 보건복지부는, 불임시술이 여성의 몸과 아이의 몸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도 파악하지 않은 채 불임부부에게 불임시술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각 지자체들의 출산장려책은 한술 더 뜨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다복왕 선발대회를 한다거나, 세 자녀 이상 가정에 ‘가족사랑카드’를 발급해 할인혜택을 준다거나, 역시 세 자녀 이상 가정에 임대아파트 우선입주권을 준다거나, 두 자녀 이상 교원에게 인사에 반영되는 가산점을 준다거나 하는 방식입니다.이 모든 출산장려책이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평등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평등을 위해서는 아이를 낳았건 낳지 않았건,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삶의 조건을 면밀히 살펴 예산을 책정하고 공정하게 분배해야 합니다. 빈부 격차를 비롯해 각 사람들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이유로 혜택을 준다면, 결국 사회양극화와 빈곤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입니다. 일과 가정 양립? 여성노동권 관심 밖 한편으로 정부는 저출산 문제의 해법이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이라며 여성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양 선전하고 있습니다. 몇몇 여성단체를 비롯한 여성운동가 또는 학자들도 이에 솔깃해서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일조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과연 정부가 여성의 노동권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국가기구에서 ‘성차별’이라고 판정까지 내린 KTX여승무원 외주화 문제에 대해 노동부가 ‘불법이 아니’라고 결정한 것을 보면, 정부는 여성의 노동권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급격히 비정규직화, 간접고용화 되어가고 있는 여성노동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여성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낳게 만들까 고민하는 정부가 무슨 수로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하겠습니까. 오히려 결혼 장려와 출산 장려를 통해, 결혼과 가족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는 한국사회 구성원들을 다시금 보수적인 가족 가치관 속에 밀어 넣고, 여성의 몸을 ‘아이를 낳는 도구’로 바라보는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방향과는 정반대되는 곳을 향해 가고 있는 저출산 대책에, 여성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행정기구인 현재의 여성가족부마저 합세했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출산과 관련한 정책은, 사회 구성원들이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만 제시하면 됩니다. 그런데 과연 정부와 지자체가 내놓은 각종 저출산 정책들이 이에 합당한지, 점검하고 판단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산에 대한 선택권은 출산을 하고자 선택하는 것뿐 아니라, 하지 않고자 선택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지요. 고령화 문제를 출산정책으로 풀어선 안돼 문제는 저출산이 아닙니다. 인구 감소를 가져올 저출산 현상이 ‘위기’로 작용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입니다. 만약 ‘위기’가 아닌 ‘기회’로 인식한다면 국가 발전 방향과 관련해 다른 방식과 모델을 상정해볼 수도 있고, 실제로 다른 국가 예를 통해서도 ‘인구 수’와 ‘국가경쟁력’이 반드시 비례한다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생태적이고, 미래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러합니다. 자원은 제한되어 있는 반면 사람들의 소비는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가 누릴 수 있는 몫은 그만큼 줄고, 우리 사회의 미래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인구가 줄면 생산이 줄 것이라고 염려하지만, 소비도 그만큼 줄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가 지금보다 낮은 수준에서 적정선을 이루도록 하면 됩니다. 또 많은 이들이 노동력이 부족할까 걱정하는데, 왜 수년간 심화되고 있는 심각한 실업난을 해소하고 완전 고용으로 나아가는 기회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요. 물론, 고령화의 속도 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세대별 불균형을 초래하기 때문이지요. 관건은 지금의 시기에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인과 여성과 십대들에게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고령화 정책이 나아간다면, 세대별 불균형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사회양극화와 성차별을 해소하는 길이 될 수 있지요. 그런데 현재 정부와 지자체의 고령화 사회 대응책은 실제로는 대응이라기보단 출산율을 높이는 쪽에 보다 중심을 두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정부가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을 늘려 인구감소를 막고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속도를 늦추거나 정지시키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몹시 우려됩니다. ‘저출산·고령화 영향평가제’ 역시 온 나라의 법과 제도들을 출산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정비하는데 쓰여선 결코 안 될 일입니다. 저출산 고령화 정책을 비롯해 ‘저출산·고령화 영향평가제’ 실시에 있어, 한 가지 보다 구체적인 제안을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각 지자체들은 ‘시도별 지역혁신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이 계획들이 고령화 사회와 시도별 인구감소를 고려한 발전계획인지, 아니면 지금보다 시도별 인구규모가 더 커질 것을 예상한 ‘개발’위주 계획인지 평가하여 이대로 가도 좋은지 판단해야 합니다. 인구감소는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인구감소와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지 않은 채 여전히 정부와 지자체가 규모위주, 개발위주의 정책을 펴나가게 되면, 앞으로는 진정 ‘위기’ 상황이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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