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옆으로 난 도로 부근에 있는 작은 국수집은 스치는 창문 너머 걸려있는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그때마다 왠지 모를 정겨움과 함께 따뜻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워낙 작은 공간이고 간판도 수수해서, 큰 간판에 익숙해진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지나치고 나서야 ‘아 저기에 국수집이 있었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은 한번 들러보리라 마음을 먹고 “福 국수”라고 적힌 작은 간판 밑에 멈춰 섰다. 늦은 시각에 출출한 배를 채울 요량으로 혼자 들어가서 앉아 있는데, 어색함보다는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다. 주인 아주머니는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뿐이라고 설명했다. 비빔국수를 주문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기다리자 이내 주문한 국수가 나왔다. 그 사이, 아주머니가 큰 찜통을 들어 멸치국물을 죄다 싱크대에 쏟아 부었다. 그리곤 마치 혼잣말을 하듯 “하루 종일 김치 담근다고 진을 뺐는데, 주문한 쪽에서는 신경 쓴다고 멸치를 가져다 준 모양인데 맛이 영 아니”라고 말했다. 진국을 위해선 “내일 직접 시장에 가서 사야겠다” 한다. 그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아무렴, 국수집인데 멸치국물로 승부를 걸겠구나’ 싶었다. 소박한 공간, 소박한 국수의 맛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아요. 국물 다 마시면 또 줄 테니 먹어요. 소화가 잘 되게.” 요즘은 속이 더부룩한 것이 뭘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아주머니의 권유처럼 그 국물을 마시고 나면 왠지 소화가 잘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몇 숟갈 떴다. “아휴, 잘난 사람들은 잘난 사람끼리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사람끼리 살았으면 좋겄어. 잘난 사람들이 잘나게 살면 되지 왜 못난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래? 한평생 사는 것은 똑같은데.” 텔레비전 뉴스에서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것 같은데, 아주머니가 그걸 보고 혀를 차면서 얘기했다. 아주머니의 혼잣말 비슷한 논평을 듣는 게 정겨웠다. 다 먹을 무렵 “국수가 진짜 맛있네요” 했더니, 나이 쉰은 훌쩍 넘겼을 것 같은 아주머니의 얼굴이 활짝 갠다. “국수에만 신경을 쓰니까…. 먹어본 사람들이 다들 그런 얘기를 하네요.” “국수에만 신경을 쓰니까” 라며 겸손한 이유로 토를 달며 말했다. 요리한 주인의 대답도 공간만큼이나 소박한 맛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값을 치르면서 ‘주인 마음씨가 좋아서 배가 고프면 자주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부러 그런 것처럼 지갑을 식당에다 두고 그냥 나왔다. “가게만 들어오면 너무 좋아요.” 이틀 후에서야 지갑을 찾아가기 위해 국수집을 다시 찾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조금 더 친근하게 얘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젊어서부터 떡볶이 장사부터, 호떡 장사, 여러 가지 장사를 다 해봤지만 성공해본 적이 없어요. 장사한 거 따지면 열 가지도 넘어요. 파출부 일도 해보고, 집에서 외손주도 보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국수집을 하고 싶었어요.” 가게를 시작한 지는 이제 막 40일을 지났다고 한다. 국수집을 그렇게 하고 싶어 입버릇처럼 동네아줌마들한테도 “국수집 한번 해봤으면” 하고 말하고, 자식들한테도 내내 그 얘기를 입에 달았다고 한다. “몰라요. 옛날에 호떡장사 하면서 리어카 댈 데도 없고 해서 설움이 있어서 그런지. 조그만 공간에서 국수집 해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러다가 벼룩시장에 나온 공고를 우연히 발견하고 여기를 찾아왔다. “내가 찾던 딱 그곳을 찾았다”는 생각에 이거 저거 볼 것 없이 그날 바로 계약해버렸다. 그때부터 아직까지는 ‘적자’라고 한다. 하루 4그릇 팔 때도 있고, 10그릇 넘어갈 때가 많지 않다고 하니 말이다. “여기가 너무 좋아요. 요즘도 가게만 들어오면 나가기가 싫고. 라디오 들으면서 혼자 있어도 좋고. 손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짜증나고 그러지 않아요. 한 사람이 와도 내가 해주는 걸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고. 그러다가 실수할까봐 무섭기도 해요. 내가 기분파인데도 있거든.”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가 처음에 들어와서 ‘맛있다’고 했을 때 얼굴에 함박꽃을 피우면서도 소리 없이 웃고, 혼잣말 하듯 조심스러워 했다. 두 개 메뉴, 그러니까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다 먹어본 결과, 역시 맛이 있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나는 음식을 못해요” 라고 말한다. 믿기 힘들었는데, ‘국수집을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해가 됐다. 국수집 하는 것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소원인 셈인데, 사람은 그렇게 원하고 바라는 일은 잘하게 되어 있는가 보다. 세상에 태어나 꼭 해보고 싶은 일 있어 그런데 왜 그렇게 국수집을 하고 싶었을까? “작은 공간에 서너 사람 앉아서 먹고 하는 게 정다운 것 같고. 옛날에 우리 어릴 때 먹었던 거 생각도 나고. 먹고 나가면, 또 들고, 하는 게 재미있잖아요?” 간판이 너무 작지 않냐고 물었더니, “나는 둔한가 봐요. 좀 천천히 벌자는 생각이 있어요. 손에 익어가면서 하고 싶은 거죠.”라고 답했다. 처음에 5명이 한꺼번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고 한다. 일이란 게 “손이 익어가면서 잘 되는 게 순리”일 것 같다고 한다. 올 12월을 넘기면서는 옛날식 손칼국수를 선보일 예정이라 했다. “봄 되면 날씨 따뜻해지면 꼭 많이 올 거에요. 내가 잘 하는 것만, 자신 있는 것만 맛있게 먹이고 싶어요. 옛날식으로. 나 생긴 대로.” 그러면서 “재밌잖아요? 더 달래면 더 주고” 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이제 국수집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수집을 하는 데는 더 큰 뜻이 있다고 했다. ‘국수집’이 작은 소망이었다면, 국수집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달라고 해도, 2년 후에 얘기할 거라며 입을 닫았다. “이 세상에 나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러나 내가 실천을 해야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아직 실천하지 않은 걸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또 내가 말을 해버리면 실천이 안 되더라구요.” 이 세상에 나서 꼭 해보고 싶은 게 무얼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떠오르지 않아서, 조금만 더 설명해달라고 하자 “이 다음에~ 내 손으로 벌어서”라며 대답을 미뤘다. 연륜이란 하나 하나 버리는 것 아주머니는 대화를 하다가 가끔씩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곤 했다. “세상이 내 맘 속에서 다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저 빈말이 아니라는 건,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된 삶의 연륜에서 나온 얘기라는 것을 말이다. 올해 쉰셋이라는 그는 “나이가 들면 그런 게 있다”고 한다. 하나 하나 버리고, “이건 내 것이 아닌데 하고 버리고” 하는 게 있단다.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들리던 국악방송 얘기가 나오자, “국악을 좋아한다”며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곤 하는 민요는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다”고 말한다. 요즘 “트로트 가요 가사들은 왜 그렇게 내용도 없고, 지루하냐”고 하길래, 맞장구를 쳤더니 너무 좋아하신다. 신이 나서 “가요 작사하는 사람들 나한테 와서 물어보라고 해라” 하며 목소리를 돋운다. “아니, 창부타령 같은 민요는 몇 십 절까지 있어요. 거기서 몇 자씩만 뽑아도 트로트 가요 가사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차라리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하는 랩은 오히려 가사들이 좋은 것 같아요.” 아주머니는 “사람들이 허공에 떠서 그렇다”며, 가요가 옛날 민요 같은 맛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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