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렸을 적에 읽었던 석수장이 이야기를 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돌을 깨던 석수장이가 태양이 되고 싶어 하느님께 기도해 태양이 됐다가, 구름이 태양을 가리니, 구름이 되고 싶다고 했다가, 다음엔 바람이 되었다가, 결국은 다시 석수장이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동화의 원형이 가지는 지배이데올로기가 있잖아요. 평생 한 우물을 파고, 꿋꿋이 외길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그는 어렸을 적에 선생님이 석수장이 이야기를 통해 학생들에게 교훈을 들려줄 때도 “아니, 어떻게 평생 돌만 쪼아? 그 사람은 얼마나 답답할까? 석수장이가 저 사람의 천직일까? 사람이 진짜 석수장이가 되고 싶어했는지 어떻게 알아?” 하며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이 “이것저것 집적거렸다”고 할 때가 제일 억울하고, 수긍할 수 없다. 그는 스스로 한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매순간 가장 절실한 것을 따라서” 말이다. 그렇게 항변하긴 하지만 ‘누군가의 외길 인생 30년, 40년’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 가던 길을 주춤하며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자꾸만 되돌아보게 된다. 석수장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얘기를 줄곧 들으면서, 어쩌면 그는 꼭 석수장이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때그때 가장 강렬하고 지배적인 것을 좇아 세상 만물이 다 되어보지만 결국은 자신의 옛날 모습인 석수장이로 돌아온 것처럼 그도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구경 다 해보고 돌을 깨는 석수장이가 여한이 없는 게 아닌가?” 그의 말처럼 태양도 됐다가, 구름이 됐다가, 바람도 되어보고, 석수장이로 다시 길을 걷는 것이 어쩌면 굉장히 생산적인 삶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처럼 아직도 그는 혼자 의문을 품으며, 다른 삶에 대한 동경과 도약을 멈추지 않고 살아왔다. 지난 세월동안 그는 출판사 편집자로, 교육운동을 하는 교사로, 학교를 그만두고 소설가로, 뮤지컬 극본을 쓰는작가로, 대안학교 교사로도 일했다. 지금은 신촌에 위치한 카페에서 케이크과 파이를 만든다. 매순간 자신에게 부여된 일에서 그 누구보다도 능력과 열정을 발휘하는 그이지만 편집자, 교사,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요리사 같은 직업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왜일까? 현재 하는 일은 카페에서 “커피에 어울리는 케이크와 파이, 초콜릿 등을 만드는 일”이다. 어떤 요리사보다 더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비법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는 그를 만나, 그가 만드는 케이크에 감탄을 연발하지만 ‘요리사’라는 직함을 붙이는 것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끊임없이 안주해있기를 거부하는 그의 파장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끊임없이 조금 더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고, 열정을 쏟아붓고는 다시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 어김없이 떠나는 그이지만 현재 이 일이 주는 매력과 새로운 가치는 계속 발견 중이다. “처음에는 15시간씩 서서 일하고, 쓰러져서 자고”한 시간이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다. 결코 “예쁜 카페, 우아한 케이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쪽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값싸고 나쁜 재료” 이용해 돈을 버는 법칙을 여실히 목격했다. 그러나 그는 “집에서는 아깝다고 먹을지언정 카페에선 신선한 재료가 아니면 다 버릴 정도로 철저하다.” 그래서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이용해 맛있고 먹음직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 앞에 내놓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 얼마나 큰 수고를 필요로 하는지 철저히 깨달았다. “우리가 먹어보고 최고가 아닐 때는 내놓지 않겠다는 등의 원칙들이 있는데, 이 일에서 재료나 마음을 지키는 것, 그것이 사람들에게 바로 전달이 된다는 것이 너무 새롭다”고 한다. 가령 책을 만들거나, 아이들을 가르칠 때나, 글을 쓸 때는 “자기가 좀더 전문적이고 정보획득력이 있다는 이유로 꾀를 피우고 기만하기 쉬운데, 손과 몸을 움직여 하는 이 일은 무진장 정직하고 자신이 한만큼 그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세월동안 열정을 부어 매진하면서도 끊임없이 “진짜냐? 가짜냐?”라고 물으며 자신을 밀어붙이곤 했다.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시간이 온통 “극복하고, 싸우고, 투쟁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간조차도 온전히 이상을 추구했다고 말하기 힘든 거에요.” 그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이 가진 구린 구석”이라고 표현했다. “항상 저 높은 곳을 항해라고하지만, 너 정말 그랬니? 라고 물으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안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분열이 오고, 자기 모멸감으로 이어지면서 우울이 한번씩 찾아온다. 이런 식으로 지난 16년 동안 한번씩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만큼 힘든 시기가 닥쳐오기도 했다. 이제는 그 모든 게 “나답게 산 것이 아닌가”라고 자신을 다독이곤 한다. 요즘은 “숙제를 마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든 적도 있다. 자신을 극복하려고 투쟁하던 시기와 방기해버렸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보다 나를 수용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지금도 묻는다. “너 앞으로 어떻게 살 거니?”라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언제나 찾아서 걸어왔던 것처럼, 그리고 다시 그 자신으로 되돌아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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