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복 입기 부끄럽다고?

나의 수영장 출입기

최지승경 | 기사입력 2007/03/15 [23:28]

수영복 입기 부끄럽다고?

나의 수영장 출입기

최지승경 | 입력 : 2007/03/15 [23:28]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의 재활용밴드를 기억하시는가? 나는 그 만화에서 송송 회장(딸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아버지)이 보컬 황보래용을 처음 알게 되는 과정이 가장 또렷이 생각난다. 꼬마 황보래용이 해운대 바다에 빠졌을 때, 그 아이는 인간이 낼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를 질러서 구조대에 의해 발견될 수 있었다.

나 역시 초등학교 1,2학년 때인가 해운대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만화를 보면서 황보래용의 구조에 크게 안도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절실함.

그러나 막상 수영을 배우겠다고 이것저것 알아보니 수영장은 버스를 타고 가야 했으며, 돈과 시간이 꽤 들었고, 샤워도 꼬박꼬박 해야 하는 등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수영 배우기’는 올해 목표 리스트에 몇 해 동안 연속 등재되는 영광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나는 이사를 했고, 짚 바로 옆에 있는 구청 문화센터에 수영 강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소리쳤다. “지금이다! 이제 수년간 묵혀왔던 물에 대한 공포를 던져버리겠다!”

당장이라도 등록하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나를 망설이게 하는 무언가가 나의 발목을 단단히 감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수영복 입은 모습을 절대!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영복을 입는 것은 발가벗은 것과 다름없는 것이며, 내 복부 비만과 튼튼한 다리를 드러내 놓는 것은 목욕탕에서도 불편한 일이었다. 꼭 “눈 버렸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나는 치마를 거의 안 입지만, 용기를 내어 어쩌다 치마를 입은 어느 날이었다. 지나가는 전경들이 나의 종아리를 보고 “진짜 굵다! 박세리 다리다!”하면서 자기들끼리 엄지손가락을 세워가며 낄낄대던 기억도 새삼 떠올랐다. 다시 그런 시선을 받을 거라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나는 결국 헬스를 다니면서 살을 뺀 다음에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수영을 배우고 싶으나 몸매 때문에 좌절하는 나를 보고, 한 친구가 자기도 수영복 입기가 두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수영장에 가보니 아무도 서로의 몸에 대해 신경 쓰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주머니들이랑 할머니들은 가슴 캡도 안 하거든, 그래서 유두가 표시 나는데도 수영만 계속 하셔. 나만 신경 썼던 거지.” 라면서 물속에서 노는 즐거움을 역설했다.

친구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나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의 검색어는 수영장, 털, 뱃살, 수영복, 생리, 다이어트 등등이었다.

“샤워장에서 물에 들어가기 전까지 3초밖에 안 걸려요. 물속으로 후다닥 빨리 들어가셈.”
3초라니. 나를 움직인 결정적인 지식인 답변이었다.

수영복을 처음 입었을 때 훤히 드러나는 허벅지에 대한 당혹스러움, 수영복 입은 남자들과 여자들을 보고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던 내 눈알, 물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은 3초가 아니라 3분 이상 걸린다는 것, 한 라인에 따라 수영을 하다 보면 조그만 삼각 수영복을 입은 남자와 몸이 스치고 부딪히기도 한다는 것.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 남자 수영강사가 여성회원의 몸을 잡을 때 거의 손가락으로 잡으면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 배가 볼록 나온 아줌마, 아저씨들이 얼마나 자유롭게 수영장을 휘젓고 다니는지 등을 알아가면서 나는 이제 접영을 배우고 있다.

회원들끼리 친해지면서 몸무게와 뱃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저 같이 웃고 마는 주제다. 심지어 남자 회원과도 친해져서 수영복을 입고 풀 옆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기까지 한다. 4개월 전의 나에게는 CF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진 사람들만이 연출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나는 매일 하는 준비운동이지만 끝 동작인 숨쉬기 운동을 할 때 가슴과 배를 쑥 내미는 동작에서는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싶어서. 수영복을 입은 내가 거울에 비추어 질 때는 어색하고도 신비롭다. 이제 거울 속의 나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것을 가지고 헬스부터 할까 고민하고, 눈 벌겋게 인터넷 뒤지던 것이 억울하기 그지없다.

친구야, 수영복 입기가 부끄럽다고? 3초면 물속에 들어간다. 진짜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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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리 2007/05/09 [09:22] 수정 | 삭제
  • 저도.. 수영을 하고 싶다.. 찜질방에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금방 포기해요.
    여름에 반팔입는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그놈의 몸이 보여진다는게 뭐길래.ㅋ

    아침부터 웃음나는 기사예요.
    나도 나의 모냥새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가 오길 바랍니다...
    히힛~
  • 최지 2007/03/23 [09:54] 수정 | 삭제
  • 록시님, 앞으로 그런 말들 무시할수 있는 저안의 힘(심)을 기를라구용,
    free님, 저는 배영이 젤 좋아요. 둥둥 떠가는게 편하고 기분이 봉봉해요.
    딸기님, 추천하고 싶은 글이라니 감사합니다!!
    멋지삼님, 활력과 에너지와 유머를 고루 갖춘 분이라는 쵝오의 칭찬을 주셨네요!^^
    모두 감사합니다. 히히. 또 글쓰고 싶어용~
  • 록시 2007/03/17 [13:36] 수정 | 삭제
  • 전경들의 말은 짜증나네요.
    자기들은 "단지" 웃긴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발언들이 쉽게 허용되는 사회가 슬퍼집니다.
    무시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겠죠. 그런 따위.

    (님의 수영장 경험 얘기가 신나네요.)
  • free 2007/03/16 [23:37] 수정 | 삭제
  • 물 속에서 노는 즐거움이 크죠.
    수영장 물이 별로 피부나 머리카락에 안 좋다는 얘기도 있긴 하지만, 물로 잘 씼어내면 되구.. 물에 들어가서 노는 즐거움에 비할 바 안되는 것 같아요.
    저도 누군가 수영복이 민망하다고 말한다면, 민망한 만큼 자유로움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네요.
  • 딸기 2007/03/16 [12:41] 수정 | 삭제
  • 저도 쑥쓰럽다는 친구를 수영장에 끌고 가 본 적이 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
  • 멋지삼! 2007/03/16 [02:33] 수정 | 삭제
  • 활력과 에너지와 유머를 고루 갖추신 분이네요.
    너무 재밌게 보고, 솔직한 얘기에 힘 받았습니다.
    글 읽는 내내 배를 잡고 웃기도 하면서, 그리고 우리의 몸을 옭죄고 시시덕거리는 시선들에 분노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고 갑니다. 감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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