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되기’와 독립하기

권리도 책임도 맡겨주지 않는 사회

손지은 | 기사입력 2007/10/16 [03:59]

‘효녀 되기’와 독립하기

권리도 책임도 맡겨주지 않는 사회

손지은 | 입력 : 2007/10/16 [03:59]

“주말에 시간 좀 내라. 너에게 할 말이 있다.”
무선주전자를 선물로 보냈다면서, 아버지는 조만간 만나자는 말씀을 잊지 않고 덧붙이신다.

‘해줄 이야기가 있으니 시간 내서 만나자’. 벌써 수십 번째 들은 얘기다. 정작 만나면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해줄 이야기가 있다며 집에 들르라고 하시는 건, 딸의 얼굴을 자주 보고 싶다는 의미일 게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 되지 않는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부모로부터 ‘보고 싶다’는 얘기를 몇 번 듣고서야 얼굴을 내밀곤 하는 딸자식이니, 나는 ‘효녀’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효녀가 되고 싶었거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8년간의 세상살이를 통한 성장

내가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은 점쟁이로부터 “둘째가 아들 노릇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 얘기를 넌지시 내게 전해주셨던 것은 나에 대한 모종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련만, 나는 스물다섯 살 즈음 취직이 되자마자 혼자 살겠다며 집을 나와버렸다.

나와서 잘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 이후에 생활력 문제며 건강 문제며 부모님 걱정을 많이 끼쳐드렸고 간병을 받거나 손을 내밀 때도 있었다.

하지만 홀로 서기를 하겠다며 아늑한 집을 나와 좁고 초라한 공간에 등 붙이고서, 그 곳에서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겠노라 바둥바둥 거리며 살아온 지난 8년여 세월을 후회하지 않는다. 적은 월급으로는 보증금과 생활비 마련하기에 벅차 통장에 쌓아둔 돈이라곤 없지만,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전보다 든든한 마음이 생긴다.

독립해 살면서도 부모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아왔지만, 나 역시 부모를 위해 시간과 노동력, 그리고 돈을 보탤 때도 있으니 의존적인 관계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이제야 비로소 성인과 성인의 관계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런 관계는 단지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뢰감을 주고 받으며 내 삶에 대한 정체성을 갖게 된 것도, 지난 8년 간 많은 일들을 겪고 배우면서 터득한 것이다.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배움이고, 사람이 여유가 없어질 때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도 알게 된 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인생은 매번 나를 시험하고 강하게 단련시켰다.

월급봉투 가져오는 착한 딸?

그런데 나에게는 소중한 이 모든 과정들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효녀 되기’와는 거의 정반대의 삶이 아닌가 싶다. 자아를 찾고, 내 인생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 여자들에겐 당당하다기보다 부모 마음 헤아리지 못하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고, 심지어 삼십 대 접어들도록 시집을 안 가고 손주를 안겨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구실 못한다는 평을 듣기도 하니까 말이다.

최근에 잘 알고 지내는 음식점에서 주인 아주머니와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서 다시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그 음식점에는 늦은 시각에 아주머니와 딸 두 사람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손님으로 들어와 앉아 있는 사람들은 지역 경찰관들이었는데, 아주머니에게 ‘딸이 와서 일을 돕느냐’고 물으며 ‘착한 딸이네’ 라고 말을 붙였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우리 딸은 요즘 애들 같지 않다”, “내 자식들은 다 효자 효녀다” 하며 자식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을 돕는 자녀를 장하게 생각하는 마음이겠거니 하고 기분 좋게 들으려 했지만, 아주머니가 “효자 효녀”의 근거로 “우리 애들은 월급봉투 받으면 다 나에게 가져온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만 마음이 답답해졌다.

아주머니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기적이라고 말하면서, 돈을 벌면 부모에게 맡겨야지 자기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함부로 쓰게 된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끼어들 마음은 없었으므로 입 밖으로 내 생각을 꺼내놓지는 않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혼잣말을 하듯 아주머니의 말을 곱씹으며 반론을 중얼거렸다.

이십 대 초반의 나처럼 살림을 꾸려본 적이 없는 젊은이들이 돈을 벌면 함부로 쓰게 된다는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그런 과정도 스스로 거쳐보아야 돈 쓰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 아니겠냐고. 권리도, 책임도 본인에게 맡겨주고 어느 정도는 믿어주어야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권리의식도 갖게 되지 않겠느냐고.

우리 사회가 부모들로 하여금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자기 품 안에서 감싸고 지탱해주고 보호하면서 대신 결정해주고 대신 책임져주도록 권하는 한, 자식들이 다 커서도 부모의 재산과 노동력에 기대어 살며 부모의 뜻대로 선택하고 삶을 결정하는 것을 ‘효도’라고 일컫는 한, 여성이 독립적으로 사는 것과 효녀가 되는 것은 평행선을 달리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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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냥 2010/04/22 [12:20] 수정 | 삭제
  • 님의 기사에 공감합니다.
    요즘 여러모로 갈등을 하고 있는데 이 기사보고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합니다.
    위안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 k 2007/11/18 [14:17] 수정 | 삭제
  • 효녀 혹은 효자의 개념정의도 각각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야하지 않을까요
    획일적으로 개념정의 내리고, 그 틀에 맞춰 생각하고, 생각되어지고, 행동하고
    수동적으로 주어진 개념과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나는 없어지고 괴리 속에서 고민, 짜증만이 늘어가는 것 같아요

    저도 요즘 이런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글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 , 다시하게 되네요

    부모과 자식.
    그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많아 졌으면 해요~
    저도 독립하여 산지 6년이 되어갑니다
    이번주 주말엔 엄마를 뵈러가요
    오랜만에 만나는지라 떨리기도 해요~
    ^^ 그냥 괜히~
  • 공기 2007/10/22 [11:57] 수정 | 삭제
  • 효녀 되기와 독립 하기가 평행선 같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저는 누구를 잘 만나서 호강한다는 식의 말들이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 잘 만나서 호강한다, 남편(아내) 잘 만나 호강한다, 자식 덕분에 호강한다, 이런 거...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지, 남을 위해서 희생한다거나, 그 희생을 대가로 나중에 호강하기를 바란다면, 뭔가 잘못된 일 같아요.
  • psy 2007/10/20 [23:10] 수정 | 삭제
  • 깊이 공감합니다.

    다른 분들도 이런 역할(?) 갈등으로 힘들어하신다는 것이 제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손지은님 힘 내세요!

    저는 길거리에서 제 앞에서 초라하게 걸어가는 아주머니나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그 아주머니와 저의 엄마의 모습이 겹쳐지거든요. 효도를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인 것 같아요. 이 더러운 기분 어쩌면 좋죠...
  • 시월 2007/10/17 [15:30] 수정 | 삭제
  • 20대의 독립을 고민하는 여성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게되는 것 같아요.
    여건은 다 달라도, 부모님과 가족간의 관계에서 힘든 경우들이 많아서, 그걸 떨치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경제적인 문제랑 같이 항상 따라오는 건, 가족들과 관계 부분.. 불효자식이 되고, 부모님 마음에 상처 남기는 일이 되어버릴까봐 갈등하는 부분이요.
  • 금우정 2007/10/16 [14:35] 수정 | 삭제
  • 딸의 독립을 격려해주는 부모와,
    딸이 집 나갔다고 탄식하는 부모는 천지 차이인 것 같아요.

    문제는 부모의 생각을 돌려놓기가 마음대로 안 된다는 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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