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쉴 곳 없는 건물

평등한 공간활용을 하자

박희정 | 기사입력 2008/02/01 [05:30]

직원들이 쉴 곳 없는 건물

평등한 공간활용을 하자

박희정 | 입력 : 2008/02/01 [05:30]
서대문구에 위치한 A카페. 좋은 커피 맛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인테리어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점원들은 외부 테라스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한다. 커피향 그윽한 매장에서 음식냄새를 풍길 수 없기 때문에 매장 내에서 식사가 어렵고, 그렇다고 딱히 따로 식사를 할 만한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카페와 레스토랑, 실내장식은 예쁘지만…

요즘 어딜 가나 예쁘게 차려진 카페나 내부 인테리어가 잘 꾸며진 공간들이 인기다. 우리는 흔히 ‘공간을 잘 꾸민다’고 말할 때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내부장식을 하는 것’을 떠올린다. 때문에 공간에 대한 관심은 어떤 소품을 배치하고, 어떤 자재를 쓰고, 어떤 분위기로 꾸밀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곤 한다.

그러나 공간을 꾸민다는 것은 ‘실내장식’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물리적인 공간을 어떻게 분할하고, 누구를 위하여 어떤 용도로 배분할 것인가 하는 공간설계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공간설계가 얼마나 잘 되었는가는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 공간을 두고도 평가의 시선은 달라진다. 공간을 이용하고 있으면서도 공간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촬영- 정희선
고객에 대한 무한 서비스를 강조하는 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배윤하(21)씨는 “패밀리 레스토랑 일이 앉아 있을 틈이 없고 많이 지치는데 휴식공간은 좁은 라커룸이 전부”여서 힘들었다는 경험을 전했다. 라커룸이라고는 해도 두어 명의 인원이 옷만 갈아입을 수 있는 정도의 면적이었고, 의자도 없어서 실질적으로 편히 앉아 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백화점, 패밀리레스토랑 등 서비스 업종에서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고객 중심의 공간을 강조하지만 정작 직원들은 휴식공간 하나 배려 받지 못한다. 손님이나 주인 입장에서 보면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 아름다운 곳이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괴롭고 힘든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있는 휴식공간도 다른 시설로 대치되기도 한다. 이랜드 기업의 경우도,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잠시 쉬는 시간에 앉아있을 수 있는 수면실을 없애고, 기도실을 설치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정준애 법규차장은 “노동기본법을 보더라도 1시간의 휴게 시간을 둔다면, 동시에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에 배려 없이 공간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누구에게, 얼만큼의 공간을 할당할 것인가

장시간 서서 일하는 서비스업 노동자들에게 고객이나 상사의 눈치를 받지 않고 마음 편히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은, 기본적 건강권과 노동권 보장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을 없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구를 우선으로 고려할 것인가, 얼마만큼의 공간을 할당할 것인가의 문제는 권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다. 직장에서는 사장이나 상사 중심으로 큰 공간이 배정되고, 직급이 낮을수록 작은 공간을 준다. 아예 공간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생긴다.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휴식공간이 없어서 화장실 세면대에 서랍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책상처럼 쓰고 있는 사례들도 있다. 상가건물의 경우에도 휴게공간이 마땅히 마련되어 있지 않아, 직원들이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 쉬는 모습이 간혹 목격되기도 한다.

산업보건안전 전문
노무사 권동희씨는 “사실상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간이 따로 있는 곳도 있고, 비정규직에게는 아예 공간이 없는 곳도 있다”며 “특히 계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사람들은 근골격계질환, 하지정맥류 등의 건강상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휴게공간 마련은 필수라고 말했다.

권 노무사는 “사람은 창의력과 의욕이 있어야 일을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며 “적당한 휴식을 하고 재충전을 취하고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것”이 건강뿐 아니라 “일의 능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성원들이 소외되지 않는 ‘효율적 공간배치’

현실적으로 물리적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공간이 돈과 등치 되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정된 공간을 어떤 우선순위로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효율적 배분이 무엇인가는 다시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비장애인용 화장실을 두 개 만들 공간에 휠체어 장애인용 화장실을 하나 만든다고 공간낭비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공간에서 효율성의 문제는 결국 약자의 위치나, 소수자의 입장을 상상할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효율적 공간배치는 작은 공간 안에 최대한 많은 요소를 집어 넣는 것의 의미를 넘어, 한정된 공간에서 구성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평등한 공간활용을 하려는 노력으로 의미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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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락비 2008/02/09 [02:30] 수정 | 삭제
  • 이런것들 좀 챙기고 가자...
    일인당국민소득만 높다고 될 일 아님.
  • 회영 2008/02/07 [17:34] 수정 | 삭제
  • 참 무식한 근성이죠.
    한국인들이 좀 그런 경향이 많지 않나요?
    근면성실 강조하면서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 지키는 일에는 소홀한 거..
    과로사도 많고.. 일을 능률적으로 하는 법을 잘 모르구..
  • 버블버블 2008/02/04 [01:02] 수정 | 삭제
  • 건축학과 같은 데서 이런 것들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닐까.
  • pur 2008/02/03 [18:33] 수정 | 삭제
  • 직장에 쉬기 편한 공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큽니다.
    일의 능률도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지요.
    배려가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하네요.
  • 음. 2008/02/03 [13:44] 수정 | 삭제
  • 남성노동자는 좀더 많이 쓰나요? 용역노동자 하청노동자분들 휴게실은 다 저정도 아닌가 싶은데..음
  • jinjuan 2008/02/02 [11:20] 수정 | 삭제
  • 알바생들... 일하다가 잠시 나와서 추위에 떨며 제자리뛰기를 하고 들어가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얘기나누는 모습.. 볼 때.. 참.. 인생이 뭔가 싶다.

    직원들이 일하다가 쉴 수 있는 곳 챙겨주는 건 당연한 의무가 아닌지..
  • 동감 2008/02/02 [01:23] 수정 | 삭제
  • 잠시 쉬려면 화장실밖에 갈 곳이 없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화장실이 깨끗하기라도 하면 좋은데, 지저분하고 냄새 나는 곳이면 들어갈 엄두도 안 나죠. 심지어 화장실도 직원용이 없어서 가기 힘든 사람들도 있습니다. 화장실 가고 싶은 거 참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고 보면 놀거나 빈 공간들도 많은데, 직원들 배려하지 않는 문화가 정말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아람 2008/02/01 [17:07] 수정 | 삭제
  • 고객이 중요하다 뭐다 해도,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느냐만큼 중요할까요? 고객을 불러모으고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누군데요.

    직원들 휴식공간 마련해주는 거, 직원들의 일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인데, 기업들이 그런 걸 생각 못하는 거죠. 인식이 없어서요.
  • jb 2008/02/01 [16:17] 수정 | 삭제
  • 기사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 포푸리 2008/02/01 [13:38] 수정 | 삭제
  • 서비스업종에선 직원들이 가능하면 고객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쉬거나 먹거나 해야 하죠.
    그게 과연 고객우선이라는 걸까요..
    서비스직이든 용역이든 직원들도 사람인데, 없는 사람인척 하고 마음대로 쉬는 타임도 없다는 것이.. 비인간적인 현실인 것 같습니다.
  • somi 2008/02/01 [12:37] 수정 | 삭제
  • 청소하시는 여성분들이 청소도구함에 옷을 걸어놓거나, 화장실 변기에서 쉬시는 모습 저도 본 적 있습니다. 정말 소외된 모습.. 건물 공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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