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껴요. 갑자기 외제차가 많아지고, 집들은 너무 많이 들어서는데 정작 그 중에 내가 구할 집은 없다는 것이.”
상류층 보며 박탈감, 빈곤층 보며 불안감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노정화(34)씨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남편은 개인사업자로 맞벌이를 해 6년간 6천만 원을 모았다. 결혼할 당시 4천만 원 전세자금을 가지고 살림을 꾸렸는데, 지금 1억이 된 것이다. 꽤 많은 돈을 모았지만, 여유롭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고 했다. 내 집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는 것보다 집값은 더 올라가니까” 전전긍긍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돈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소비문화를 보면 더욱 위화감을 느낀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고 여행도 제대로 못해 봤고 사치나 명품은 꿈도 못 꾸고 살아왔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살까 하는 박탈감이 들죠. 돈 걱정 안 하는 사람들은 부모 잘 만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상류층도 커지고 그만큼 빈곤층도 커지는 것 같아요.” 노정화씨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적금 월 10만원과 55세 만기인 건강보험뿐이다. 그는 노후를 위해선 “집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면서, 몇 년 내에 빚을 얻어서라도 내 집을 장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집 한 칸에 의지해서 65세 이후에 역모기지론(주택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길 기대한다면서. 집값 뛰고 양육부담 큰데 안전망은 없으니 과천에 사는 정경아(39)씨는 두 아이를 키우는 만화가로, 남편도 출판관련 업종에서 일하는 자영업자다. 몇 년 전에 대출을 받아 살 집을 지었고, 세를 내주어 대출금을 갚으며 생활하고 있다. 정씨는 자신에게 자산이라고는 “창작능력”밖에 없고, 국민연금을 낼 형편도 아니며, 적금 하나 없는 상황이라, 사교육이라든지 노후준비는 생각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책이라고 한다면 낙관적인 마음가짐뿐이라고. 그런데 최근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조금 불안감이 생겼다. 정경아씨는 다른 부모들과 만나게 될 때면 온통 “집값” 이야기와 교육에 대한 “투자” 이야기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어마어마한 사교육비 지출은 물론이고, 자식 결혼 시키려면 집 한 채는 마련해줘야 한다고들 얘기하는데, 모두가 다 그렇게 하니까 마치 상식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실상 집값이 너무 비싸다 보니, 자녀의 입장에선 부모가 목돈을 대주지 않으면 웬만한 월급으로는 전세자금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긴 하다.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일부 지역들이 엄청난데도, 천정부지로 뛰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사회가 된 것 같아요. 자산가치가 점점 올라가는 집을 갖는 것이 사람들에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거죠. 그런 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닌데.” “강부자” 정치는 안돼…집은 거주를 위한 것
영구임대주택 단지들이 들어서있는 군포에서 시의원을 지낸 김영숙(군포여성민우회 대표)씨는 여기에 대해 “한국사회의 부자문화는 다름 아닌 남의 것을 빼앗는 것 아닌가” 라고 비판한다. 여러 개의 부동산으로 돈을 증식해 온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살 공간을 차지하고서, 깨끗하지 못한 돈을 버는 것이라는 얘기다. 김영숙씨는 “사회에 환원할 자격도 없는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강부자” 내각을 비롯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부동산투기꾼들이니, “어떻게 그 사람들에게서 자신들이 취한 이익을 내놓는 정책이 나오랴” 라고 반문했다. 사회적으로 집값 거품을 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이명박 정부도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는 정책이 실시될지, 집값이 떨어지는 날이 곧 올 것인지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회의적이다. 전국적으로 불어 닥친 재개발 열풍과 지난 총선의 결과를 보았을 때, 위정자들만의 문제라고만 볼 수도 없는 현실이다. 만화가 정경아씨는 “책을 내는 일도 (돈이 목적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본질적인 목적이듯” 집도 자산증식이 아니라 사람이 거주를 할 목적이라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해도 가난한 중년여성들 ‘앞날 공포스러워’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중년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은 한층 더하다. 특히 연금은 물론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여성들, 그 중에서도 양육과 생계를 홀로 책임져 온 싱글맘을 비롯한 여성가장들은 노년 시기의 생계와 안전을 보장해 줄 “안전망이 없다.” 한부모운동을 하며 많은 싱글맘들과 만나온 한혜규(가족상담사)씨는 “50대 이상이 된 가난한 한부모 여성들의 삶은 가장 힘든 것 같다”고 말한다. “번 돈은 아이들 키우느라 다 썼고, 건강은 나빠진 상태에서 아직도 노동을 해야만 하죠. 심한 노동을 하기엔 기운도 없고, 음식점이나 파출부로도 선호하지 않아요. 나이 들수록 상황이 나빠져가기 때문에, 우울해하는 분이 많습니다.” 한혜규씨는 “노후에 어느 정도 수입이 있고, 연금이 나오고, 몸이 아플 때 보험이 되는, 그런 보장이 있다면 이 순간을 견디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노후엔 어떡하지 하는 공포가 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공포 때문에, 이혼한 부부가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재결합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는 부부가 많다는 이야기다. 한씨는 “최소한 한 개인이 하나의 연금(1인 1연금)을 받을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 라고 말하면서, “의료보험 혜택도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하고, 민영화되어선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금제도, 보편적인 사회보장책이 되어달라
“(정규직)직장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이 국민연금도 가입하고 보험도 들고,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없지. 자산도 많은 사람들이 보장도 많이 받잖아요. 연금제도가 다 잘사는 사람들만 좋으라고 있어요. (개인)연금 들고 싶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여유가 없어요. 한 달에 20만원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넣지. 이제 애들은 다 키웠고, 남편이랑 몸 닿는 대로 일해서 먹고 살아야죠.” 노후 소득보장제도로서 국민연금의 한계는 뚜렷하다. 석재은(한림대 사회학 교수)씨는 “노동시장이 유연화되고 비정규직이 많아졌기 때문에, 국민연금 수급자는 20~30년이 지나도 50%밖에 안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 시행되고 있는 것이 2007년 4월 통과된 기초노령연금제도다. 7월부터는 65세 이상 노인들 중 중하위 60%에게 평균소득의 5%(8만4천원)가 지급된다. 물론 수적으로 보았을 때 혜택 받는 층이 크게 확대됐지만, 액수 면에서 상당히 취약하고 자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많다는 지적이다. 석재은씨는 국민연금의 경우 자신이 낸 것에 비해 2배를 받아가는 구조인데도 “낸 만큼 받는 권리”로 인식되고 있는 반면, 기초노령연금에 대해선 “노인에게 돈을 퍼준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사회보장 수급권리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기초연금 성격으로 보편적인 제도를 만들고, 국민연금은 낸 만큼 받는 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다. 기초연금은 액수가 적기 때문에, 빈곤계층에 대해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밑에서 받쳐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석재은씨는 특히, “연금제도가 부부 단위로 되어 있어서” 여성노인의 빈곤을 방치한다고 비판하며, “시민권에 기반한” 개별연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신문발전위원회 2008년 소외계층 매체운영 지원사업의 보조를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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