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사라지는 제3세계 국가들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⑦

이진우 | 기사입력 2008/07/17 [13:25]

기후변화로 사라지는 제3세계 국가들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⑦

이진우 | 입력 : 2008/07/17 [13:25]

에너지정치센터(blog.naver.com/good_energy)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이진우님은 환경정의에서 초록사회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보고서가 쏟아지면서 새삼 기후변화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에 전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느 국제협약과 다름없이 법적 구속력도 없고 국가간 일반적 원칙에 불과한 기후변화협약에 왜 과중한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기후변화가 각국의 에너지 사용, 즉 경제발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막으면서도 경제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각국 정부로서는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기후변화협약은 의정서 등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구체적 지침을 확보하는데, 선진국들의 의무감축을 규정해놓은 교토의정서와는 달리, 2013년부터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본의 아니게 환경보전과 경제성장의 갈림길에 서 있는 기후변화협약 회의는 언제나 경제적 이권이 걸린 이전투구의 장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러한 이권다툼에는 언제나 피해자가 생기기 나름이다.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
 
얼마 전 일본에서 열린 G8 회담은 선진국들의 후안무치 행보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금번 G8 회담에서 전 세계는 주요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에 관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합의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믿지는 않았겠지만 그렇게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특히 기후변화에 있어 가장 큰 책임을 가진 미국은 ‘개발도상국들 역시 온실가스 의무감축에 동참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회의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결국 선진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금 ‘당장’의 일인 제3세계의 피해는 또 다시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투발루’라는 국가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자 급기야 2001년 국토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이 21세기 안에 투발루는 물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농토가 부족해져 깡통에 흙을 담아 나무에 매달아놓고 농사를 짓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은 비단 ‘투발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투발루’ 옆에 있는 ‘키리바시 공화국’의 경우는 이미 섬 2개가 바다에 가라앉았고, 휴양지로 유명한 인도양의 ‘몰디브’ 역시 금세기 안에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란 진단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국가들은 ‘군서도서국가연맹(AOSIS)'를 결성해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국가들이 기후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제3세계 국가들의 요구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선진국들은 여전히 자국의 경제보호에만 관심이 있고 자신들의 역사적, 환경적 책임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책임과 피해, 국가간 불평등 확대돼 

▲ (위) 오일, 가스소비 지도  (아래) 자연재해에 의한 사망, 부상, 주거유실 피해지도  © 자료 : Maplecroft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이하 'IPCC')은 2007년 4차 보고서를 통해 현재 기후변화의 책임은 90% 이상이 인간의 책임이 확실하다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각국의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성은 어느 정도일까?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중 OECD로 대표되는 선진국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한다. 중국, 인도 등이 근년 들어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배출량이 급증하긴 했지만, 1인당 배출량은 여전히 크게는 10배 가량 차이가 나고 있다. 지금의 기후변화는 선진국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피해’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는 지정학적으로 자연재해에 취약한 곳에 위치해 있다. 지구온난화는 열파, 한파, 폭우 등 극단적 기후변화 현상을 증가시키는 경향을 보이는데, 온실가스 배출에 거의 책임이 없는 제3세계 국가들 중 대부분이 자연재해가 빈번한 곳에 있다.
 
이에 따라 해마다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사고는 물론이고 큰 재산 피해를 입고 있다. MapleCroft라는 정보회사가 전 세계 각종 보고서의 데이터를 취합해서 재구성한 세계지도(그림 1)를 보면, 기후변화에 관한 책임과 피해 간 모순이 여실히 드러난다.
 
자연재해를 겪었을 때 대처하는 능력이나 복원하는 능력 역시 차이가 난다. 똑같이 재해를 겪더라도 제3세계 국가들이 선진국에 비해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역량을 투여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기후변화의 피해가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제3세계 국가들에게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종국에 기후변화는 해당 국가들의 경제성장의 가능성을 봉쇄하게 된다. 즉, 기후변화에 의한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교토의정서에 따른 온실가스의 거래 또한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국가 별로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의무와 허용량을 정하고, 목표량만큼 감축하지 못하는 국가는 할당량을 달성한 국가로부터 배출권을 사들이도록 했다. 한국은 2013년부터 국제 배출권 거래시장에 진입하게 된다)이라는, 봉이 김선달 식으로 자연을 자본화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 배출권이 각국에 공평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불평등 메커니즘이 될 수밖에 없다.
 
자본의 속성상 소자본은 거대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이미 자본과 자연에 대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선진국들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할 것이 때문이다.
 
바이오 디젤 사용량 증가가 낳는 또 다른 문제들
 
선진국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미명 하에 여러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책 중 일부는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착취가 전제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이오 에너지이다.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바이오 에너지는 생산효율성이 낮기 때문에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광활한 토지가 필요하다. 현재 유럽에서 쓰고 있는 바이오디젤의 대부분은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생산하고 있다.
 
야자나무 등에서 추출해 생산하는 바이오 디젤이 기존 디젤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기 때문에, 유럽국가들은 앞다퉈 사용량을 늘이고 있다. 이 때문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바이오 디젤을 국가 주력 수출상품으로 선정할 정도로,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 디젤은 경작지가 많이 필요하고 생산성이 높은 작물을 단일 경작하기 때문에, 생산국가의 ‘생물 종 다양성’을 파괴하는 또 다른 환경문제를 낳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열대 우림에 기반해 살고 있는 주민들은 생활기반이 위협을 받게 되고, 일부 주민들은 값싼 임금을 받는 노동자 신분이 된다.
 
바이오 디젤이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줄지는 모르겠지만, 제3세계 주민들은 선진국 사람들의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삶의 터전을 잃고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제3세계에서 생산한 바이오 에너지 중 자국에서 쓰이는 양은 매우 미미하다. 결국 제3세계의 모든 자원과 역량이 선진국을 위해 쓰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일부 바이오 에너지 작물의 경우는 제3세계 주민들의 주식과 경쟁관계를 형성해 국제 곡물가를 폭등시켜 놓기도 했다. 세계식량기구는 선진국의 바이오 에너지 사용 증가가 국제 곡물가 상승의 주범이라고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선진국들은 국제 곡물가 상승이 우려된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바이오 연료 사용을 줄이거나 긴급 구호식량을 내놓는 데에는 매우 인색하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주민의 기아율은 더욱 늘어났고, 일부 국가에서는 식량지급을 요구하며 소요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는 안정적인 곡물 수급을 위해 경작지 보호에 들어갔고, ‘식량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오염자 부담의 원칙’ 지켜져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앞으로는 더욱 심각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3세계 국가들은 선진국에게 기후변화에 관한 책임을 요구하고, 피해경감을 위해 각종 청정기술과 함께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여전히 기후변화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란 주장만 되풀이 하며 우선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나 에너지 사용에 대한 책임은 선진국과 제3세계 모두에게 있다. 하지만 다 똑 같은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문제의 제1원칙이 ‘오염자 부담의 원칙’인 것처럼, 선진국은 자신들이 누린 물질적 풍요만큼 형평성 있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것은 의무이자 정의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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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폭포 2008/07/22 [16:53] 수정 | 삭제
  • somewhere over the rainbow 라는 제목으로 검색하여 보심이....
    에너지에 관련된 모든 글을 담아갑니다.
  • 이수인 2008/07/21 [16:58] 수정 | 삭제
  • 섬나라로서 평균 해발고도가 3m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 그보다 훨씬 높음은 물론이지요. 가령, 우리나라에서 가장 해발고도가 높은 시는 태백시로 평균 해발고도가 650m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나 일본 역시도 조금씩 잠기고 있다고 봄이 옳을 듯 싶습니다.^^;;
  • 3585 2008/07/17 [13:54] 수정 | 삭제
  • 지구가 둥글고 물이 많아져서 땅이 사라진다면 왜 그 쪽 나라들만 그렇게 될까요? 왜 우리나라나 일본쪽은 그냥 그대로 인가요? 혹시나 땅이 가라앉는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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