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0일,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하고 복지부 예산이 “2008년 대비 14%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예산편성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폭등하고 있는 물가로 고통 받고 있는 저소득층의 현실”을 감안해 복지 재정을 추가로 확충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신설된 아동.청소년 그룹홈 73개소에 한 푼도 지원안해
‘그룹홈’은 보호자가 없이 생활하는 아이들과 사회복지사가 함께 대안가정을 구성해 아동의 일상생활과 교육을 지도하는 형태의 아동보호시스템이다. 아이들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그룹홈 형태로 가정에서 생활하는 것이 훨씬 더 성장에 좋은 환경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복지부 예산안에서는 아동.청소년그룹홈에 대한 예산배정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설위주의 복지정책의 폐해가 알려지면서, 그룹홈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높아져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한해 동안 70~80여 개의 그룹홈이 새로 생겨났지만, 정부는 이들에 대한 지원예산을 아예 책정하지 않았다. 신설된 그룹홈에는 한 푼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는 아동복지를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2008년 6월말에 신고되어 있는 그룹홈 321개소에는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은 복지부 예산안 발표에 부쳐, 그룹홈의 현실과 한국의 아동인권과 복지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전라북도 진안군에 위치한 사랑샘터 그룹홈에서 일하는 심해연님이 기고했다. 심해연님은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상임이사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그룹홈, 우리 가정의 이야기 그룹홈인 우리 가정의 저녁식사 시간은 시끌시끌하다. 오늘 지낸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엄마 아빠의 대답을 기다린다. 일일이 대답을 해주다 보면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식사가 끝나고, 같이 숙제도 하고 게임도 하다 보면 벌써 잠잘 시간이다.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나면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 아침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순례를 했다. 치과에 가서 치료도 받고, 감기가 들어 콜록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내과에도 다녀왔다. 기초생활보장이 되어 일반병원비는 들지 않지만, 치과 등 보험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의료비 부담도 만만치가 않다.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드는 사교육비도 장난이 아니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학원을 몇 군데씩은 보내지 못하지만 필요한 교육은 시켜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학대나 방임, 유기 등을 경험한 아이들이다. 알게 모르게 자신들이 버림받았다는 상처와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아이들이 우리 집에 들어오고 나서 표정이 달라지고 눈빛이 달라진다. 엄마 아빠의 손길을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서로서로 엄마, 아빠 부르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형제자매들과 싸우며 울기도 하지만 언제 울었냐는 듯 웃으며 놀기도 한다. 큰아이들은 동생들을 보살피고, 동생들은 큰아이들에게 매달리며 아이들은 애정을 배워간다. 하루24시간 일주일에 7일 근무. 두 명의 종사자가 5~7명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곳이 우리 그룹홈이다,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자원봉사자도 함부로 들일 수 없다. 온갖 가사일과 아이들 양육에 대한 모든 것을 두 사람이 맡아서 처리한다. 또한 마음에 심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라, 한 아이 한 아이 세심하게 보살피고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거기에다 아이들의 친부모와 친지들과의 관계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상담하고, 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상처 입고 자존감이 낮아진 아이들에게 있어서, 친부모와 친지들의 지지는 마음의 회복에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두 명의 종사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업무이지만,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정과 같은 환경을 제공하고 부모의 사랑과 형제의 사랑 속에서 변화되고 치유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간다. 정부는 정말 그룹홈을 양성화할 의지 있나
어느 곳을 가든지 그룹홈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반응은 너무나 좋다. “정말 좋은 일을 한다”, “아이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등의 반응이지만, 현실은 냉정하기만 하다. 아동에 대한 모든 후원이나 지원에서 그룹홈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대형시설이 우선이고, 이용자가 많은 기관이 우선이다. 일례로,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움직이려면 최소한 9인승 이상 차량이 필요한데, 몇 년 동안 지원신청을 했지만 항상 결과는 씁쓸하기만 했다. 그룹홈은 법인이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그룹홈을 하고 싶은 사람이 집도 준비하고, 가재도구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해서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후원자를 만들어내는 일이 어렵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하고 살아가기도 힘든데 후원자까지 유치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요보호 아동.청소년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내 입양이나, 가정위탁,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의 아동보호 인원수를 늘리고 국외 입양이나, 소년소녀 가정, 아동복지시설 보호인원 수는 점차 줄여간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현재 ‘요보호 아동’은 대규모 양육시설에 우선 배치하고, 그 다음에 그룹홈에 배치한다. 항의를 하는 우리에게 공무원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양육시설이 비어 있는데 그룹홈에 아이들을 입소시킬 수가 없다”고. 심지어 어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그 지역에 그룹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룹홈의 역사는 20년이 넘어가지만, 2004년에서야 비로소 한국사회의 제도권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정부에서 인정받아 지원받는 시설이 된 것이다. 2008년 6월, 현재 전국에 있는 그룹홈은 321개소다. 이중 248개소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인건비(사회복지생활시설 취사원 급여), 20여 만원의 운영비가 그것이다. 그나마 금년에는 예산이 동결되어 248개소를 제외한 나머지 73개소는 정부지원 없이 지금처럼 자부담으로 운영을 해야 될 처지다. 정부지원을 받아도 힘든데,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룹홈을 운영하지 말라는 압력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정말 그룹홈을 양성화할 의지가 있다면, 지원을 현실화시켜야 마땅하다. 두 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업무로 인해 종사자들이 소진되기 쉽다.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는 인적 지원이 필요하고, 생활시설 취사원 급여수준을 최소한 사회복지생활시설 사회복지사 1호봉 급여로라도 현실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소진된 종사자의 이탈을 막을 수 있고 유능한 사회복지사를 영입할 수 있으며, 그룹홈을 확산시킬 여건이 될 수 있다. 또 대규모 양육시설에 우선적으로 아이들을 배치하는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그룹홈에 아이들을 우선 배치시켜야 한다. 나아가 대규모 양육시설을 그룹홈으로 전환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사실 그룹홈을 운영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고달프다. 하지만 꾸지람을 듣고 훌쩍이다가도 엄마를 부르며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들, 방긋 웃는 아이들의 표정에 육신의 피곤과 고단함은 저만치 날아가고 가슴 뿌듯하게 행복이 차오른다. ※ 아동청소년 그룹홈이란? 최근 우리사회는 부모(가정)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죽음, 이혼, 가출, 경제적 문제, 사회성 결여, 학대 등 여러 가지 원인들로 인해 좋은 가정환경에서 양육될 수 없어 부모로부터 방임되거나 유기되는 등 양육을 거부당하는 아동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아동청소년그룹홈은 이처럼 사회적 보호와 양육이 필요한 아동들이 원가정으로 복귀하거나 자립생활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가정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동친화적 복지지원체계이다. 그룹홈(Group home)이 가진 의미처럼, 아이들에게 가정과 같은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방임과 학대, 유기 등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아이들에게 정서적, 신체적으로 안전하고 믿음을 주는 안식처와 성장기반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태어나고 양육되며, 가정은 아동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가장 중요한 환경이 된다는 것이 아동복지의 기본원리다.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은 현재 우리사회에서 매우 필요한 아동복지보호 및 지원체계다. ※ 이 기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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