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에 간발의 차이로 먼저 도착해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생각해봤지만 도통 감이 오질 않는다. 이미 두 사람은 지척의 거리에 서 있었는데도 알아보질 못했다. 상대방이 전화를 했다. 전화기를 꺼내 들고 대답하자 1,2미터 떨어져 있던 사람이 깜짝 놀라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녀도 보자마자 물었다. 얼마만이냐고. “십 년 된 거 아녀요?” 십 년이라는 말에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걸어가면서 셈을 해봤더니 근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한 십 년째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어느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어디로 자리를 옮겼다는 둥의 공적인 직함이 달라지는 것 정도로, 몇 년에 한번씩 전해 듣는 소식이었다. 평소에 붐비는 카페는 다소 헐렁했다. 카페 문을 열면서 사람들이 붐비면 나가려고 했는데, 두 사람이 마주 앉고 보니 아늑한 감이 돌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예전 그대로다. 서로는 ‘예전 그대로인 것 같은데, 세월만 훌쩍 지난 것 같다’는 감회에 취해 있었다. 그러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왠지 화가 나지 않더라구요” “결혼한다면서요? 그것도 이번 주에?”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어요? 하긴 하는데, 이번 주는 아니고 이번 달 안에는 해요.” 우연한 기회에 들은 그녀의 결혼 소식을 꺼냈다. “이상해요. 연애 시작하면서 이 사람과는 살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가졌어요.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던 거지.”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할까. 그녀는 그 전까지 ‘결혼은 노’라고 확실하게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결혼 소식에 친구들이 “부르투스, 너마저도!”라며 놀린다고 했다. “나는 동거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결혼이라는 게 묶이는 게 많잖아?” 결혼이라는 제도적인 속박이 가장 큰 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남자를 만나고 나선 왠지 살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느꼈다고. “(그 사람은) 나와의 미래를 결혼이라는 것 안으로 끌어들여서 생각하는 거에요. 예전 같았으면 화가 났을 텐데, 왠지 화가 나지 않더라구요.” 그녀는 “내가 혼자 사는 것에 지쳤나, 내가 외로워서 (결혼을) 하나?”라는 의문으로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봤다. 답은 “때가 딱 맞았던 것 같다” 이다. 연애를 하고는 있었지만 부모님에겐 아직 얘기하지 않은 때, 어느 늦은 밤 아버지가 술을 자시고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대뜸 “내 죽고 나면 누가 니 걱정 해주꼬?” 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막내딸 두고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셨던 모양이다. 그녀는 막내다. 위로 있는 언니, 오빠 4명이나 모두 결혼을 했기 때문에 평소에 “네 명이나 갔으니까 한 사람은 다르게 살아도 된다”며 버텼다. 그녀는 그때도 화를 냈다. “나를 혼자로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버지 책임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에요. 부모님으로선 당연하겠지만 나는 그게 이해가 안돼서 화를 냈지. 왜 죽는다는 얘기를 하냐. 이제 환갑 지난 지가 얼마 안됐는데 왜 그러시냐. 또 왜 나를 그렇게 의존적인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냐”며 아버지와 언쟁했다. '소박하게, 나답게 '
그녀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랑과 전쟁’ 같은 일이 많더라구요” 라며 우리 결혼식문화가 틀에 박힌 듯하다는 얘기를 했다. 허례허식이 많다는 얘기다. 어렸을 적에는 그런 어른들의 문화가 정말 이해가 안됐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다. “우리 결혼반지는 이걸로 하기로 했어. 우리 커플링.” 그녀의 손엔 무늬 없는 금반지 하나가 끼여있다. “(결혼식은) 최소한으로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래도 그녀는 양쪽 집안 사람들의 의견은 최대한 존중하대 자신들의 의견을 거의 관철한 듯 하다. “제 친구 중에 한 명은 결혼식을 펜션을 빌려다가 아주 친한 사람들만 불러서 1박 2일 동안 고기 구워먹고, 자고 하면서 얘기하고. 양쪽 집안 사람들이 서먹서먹했겠죠. 합의만 되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녀는 친했던 친구와 친지들에게만 알려 조촐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준비는 주변 사람들이 각자의 능력으로 참여해 도움을 주고, 친구들이 한 명씩 나와서 신랑과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할 계획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그녀는 우리가 얼마나 틀에 얽매이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말하는 사이에 카페 안 음악소리는 조금 더 커졌다. 사람들이 많아져 비어있던 의자는 거의 다 찼고, 서빙을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술 먹는 스타일이 달라서… 그녀는 쾌활하고, 거침이 없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교적이다. 결혼할 남편은 그녀와 성격이나 생활습관이 많이 다른 편이다. 그러나 그와 결혼하겠다고 결정할 건 서로가 그리는 미래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다. “달라요. 많이 달라요. 그래도 내가 ‘이렇게 살자, 저렇게 살자’ 얘기하면 호응을 잘 해주고, 노력하겠다고 하고. 물론 결혼하기 전의 얘기의 70%가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신뢰는 있어요. 우리가 그리는 미래가 최소한 판이하게 다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같이 만들어 가는 것, 나 혼자는 할 수 없는데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요.” 처음 만나서 서로가 다른 점 때문에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술 마시는 습관이었다고. 지금 서로가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찾았다. “술 먹는 스타일도 얼마나 달랐냐면, 저는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으면서 일단 배를 불리고, 그 다음에 배를 꺼뜨리기 위해서 2차로 가서 수다를 떨다가, 3차쯤 가서 다시 한번 달리는 스타일이었는데, 이 사람은 주로 소주 완샷. 완샷으로 막 두 시간 달리고 집에 가.” 사귀기 전 술 마시는 습관이 너무 달라서 힘들었다고 해, 많이 웃었다. 처음 만나서 그와 술 마시는 게 너무도 달라서 그녀는 몇 번 완전 페이스를 잃어버리곤 했다. 잔만 받으면 완샷하는 그를 따라 받으면 먹고, 받으면 먹고 하다가 말이다. “내가 2차 안 가나요, 하니까 간 거야. 그런데 또 그렇게 달려야 되는 거야. 죽는 거지. 그러다가 조금씩, 거기가 조금 느려지고, 내가 좀 빨라지고.” 가족계획: 임신 때문에 서로를 괴롭히지는 말자
습관, 성격 등에서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이 이 정도 선에서 서로 합의하고 있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싸울 수도 없는 법. 그럴 때를 대비해서도 그녀는 이미 해놓은 말이 있다. “내가 말했어. 우리가 혹시 부부싸움을 하잖아요. 근데 만약에 내가 집을 나가야 할만큼의 극단적인 상황이 온다, 그러면 내가 어디에 가있겠다는 얘기는 했어요. 데리러 오라고. 잠깐 그 순간은 서로가 안 좋을 수 있으니까. 만약에 싸움이 격해져서 서로가 하지 않아도 될 소리를 할 수도 있잖아요. 같이 살고 편해지면. 만약 그럴 정도로 내가 격해지면 내가 나가겠다, 나가서 일단 어디 가 있을 테니까 날 안 데리러 오면 끝이다. 그렇게 얘기했지.” 그러면서 “갈등이라는 건 알고도 겪는 거고, 모르고도 겪는 거니까. 그러나 지혜롭게 풀어야죠” 라고 덧붙인다. 앞으로 혹시 두 사람 앞에 고난이 닥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꼭 필요하고 세상의 그 모든 것이 되고 싶은 때이다. “동지이고, 반려자고, 그러면서 친구이고, 막. 그런 모든 게 응축된 존재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예전처럼, 지금처럼, 쾌활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 눈에 선하다. 그녀의 바람처럼 “지혜롭게” 삶을 잘 엮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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