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을 중시하는 한국사회도 점차 입양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어서, 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이나 부모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에게 국내입양의 기회가 제공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의 권리를 가로막는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친권’이다.
친권자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입양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현행 제도가 시설에 맡겨진 많은 아이들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다. 친권자 동의없어 입양대상에서 제외된 아이들 “세 번째로 입양을 한 아이는 생부가 입양동의를 하지 않고 잠적해서, 시설(생활보육기관)로 옮겨가는 시점(36개월~40개월)에서 입양진행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시설에 간 아이들이 입양이 안되어서 가기보다는 입양대상 아동에서 제외된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양육을 다시 할 가능성은 희박하죠. 저는 향후 (친권자가) 입양동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입양을) 취소하거나 이의 제기할 때, 그에 맞서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입양을 했어요.”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이사는 극히 이례적으로 친권자의 동의가 없는 가운데 아이를 입양했다. 생활보육시설(고아원)에는 이처럼 친권자의 동의를 구하지 못해 새로운 가정을 맞이할 수 없는 아이들이 많다. 친부모가 아이를 맡겨놓고서 연락이 두절되거나, 자녀를 시설에 맡긴 채 양육하지 않으면서도 입양에 동의해주지 않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입양을 보내는데 적극적인 시설의 장조차도 직접 나서주지를 못해요. 친부모가 연락두절이 된 경우에 뒷감당을 못하는 거죠. 나중에 찾으러 온다고 말 한마디 해놓으면, 아이를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 나중에 친권자가 와서 소송했을 때 위협을 느끼는 거죠. 입양부모라면 몰라도, (시설의 장이) 모든 걸 다 내놓아야 할 정도로 감수할 수는 없으니까요.” 대안가정운동본부 김명희 사무국장도 친권자의 동의가 없다는 이유로 입양대상에서 아예 제외되어버린 아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말했다. 대다수 부모들은 친권을 둘러싼 복잡한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고 나중의 상황이 두렵기 때문에, 애초에 입양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설의 장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만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한연희씨가 추후에 친권자가 나타나 친권을 행사한다고 했을 때 이를 수용하겠다는 각서까지 쓰고서 입양을 한 아이는 당시 생후 4개월이었고, 지금 9살이 되었다. 한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만약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나타나 (입양에) 동의한 적 없으니 취하해서 데려가겠다고 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몇 번이나 던졌다고 한다. 의무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 놓지 않겠다는 부모들 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이 친권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에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로서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도 ‘내 자식’에 대한 권리는 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로 인해, 아이들의 권리가 침해 당하고 있다. 한연희씨는 입양으로 얻은 자녀뿐 아니라 장기위탁을 하는 고등학생 형제가 있다. 한씨는 “원래 위탁이란 원 가정과 재결합 가능성이 있을 때 단기적으로 하는 것이지, 돌아갈 가능성이 없는데 장기적으로 불안정한 가족형태에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9년 간이나 두 아이를 자신의 자녀처럼 키워오면서 입양을 원했지만, 부모가 동의해주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 “10여 년 간 양육비를 받은 적도 없고,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적도 없습니다. 과연 (친부모를) 이 아이들의 친권자로 놔두는 것이 아이들 복리에 최우선인가요? 친권자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입양을 할 수가 없어요.” 실제로는 한씨의 가족이나 다름 없지만 법적으론 “아무 관계도 아닌” 까닭에, 아이들이 겪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통장개설, 보험가입, 여권발행에도 제동이 걸린다. “스스로를 추스를 수 없이 생활하는 부모가 가끔가다 자기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하고 그러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이 안 되요. 아이들이 저금통장을 가지고 있으면 부모가 다 써도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장기적인 계획을 위해 보험 가입할 수도 없고. 우리에게 사고가 있을 때 그 애들은 보상도 못 받아요.” 일정기간 자녀 방치하면 국가가 ‘친권’ 개입해야 한연희씨는 현행 친권제도가 부모로서의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권리는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지적한다. 위탁중인 아이들은 친권자로부터 성장에 필요한 어떤 도움이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부양의무를 질 수도 있다. 한씨는 “심려를 기울여 아이들을 키웠는데 만약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아버지를 부양하는 책임을 진다든지 하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삶도 힘들었는데 앞으로도 장애물이 될 거라 생각되어서 갑갑하고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입양기관이나 위탁가정의 부모들은 친부모가 장기적으로 양육의지를 보이지 않거나 양육을 하지 않는 경우엔 국가가 ‘친권’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육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친권자로 인해, 아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명희 대안가정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아이들은 나이 들수록 입양되기 어려워진다”면서, 친부모가 아이를 입양기관이나 시설, 혹은 위탁부모에게 맡긴 채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찾지 않거나 방치하거나 연락이 끊기면, “국가가 개입해 일괄적으로 친권상실의 소를 제기해 아이들을 구제해주는 방안” 등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 이 기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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