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영이와 함께 공부한 지 올 2월로 꼭 3년째 된다. 2학년 초부터 공부하기 시작해 곧 5학년이 되는데, 지금은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하고 한번씩은 놀랄만한 의견으로 나를 감동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초창기 다른 아이들과 그룹으로 해오던 걸 접고, 혼자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은 내가 먼저였다.
당시 준영이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의 경계에 해당하는 증상들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애정에 집착적인 태도까지 갖고 있어, 수업 중 교사가 자기가 아닌 다른 학생들에게 관심을 보이면 견딜 수 없어해, 야단을 맞아가면서 조차 교사의 관심을 자신에게 잡아두려 했다. 결국 그룹수업을 진행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준영이의 어머니를 뵙고 현재 그의 상황을 내가 파악한 수준에서 말씀 드렸다. 학교공부와 관련된 학원에서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어 전혀 발전이 없다고 어머니께서도 덧붙이셨다. 나는 내 수업은 개인수업으로 받길 권했고, 다른 학과공부와 관련된 것도 학원이 아닌, 개인과외를 권했다. 준영이 어머니는 선선히 내 제안에 따라 주셨다. 그렇게 수업을 개인교습형태로 바꾸고 나니, 그룹수업에서 보였던 문제들이 상당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 나갔다. 도서관에서 돌아올 때는 7~9권 가량의 책을 준영이의 손에 쥐어주며 다음 주까지 읽어오게 했는데, 그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따라 주었다. 그래서 실제로 1년 반 정도 지났을 때는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 어린이가 되었고, 혼자서도 도서관에 잘 다니고 있다. 지금은 스스로 책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아이가 되었다. 의미 있는 삶의 고민에 첫발을 내디딘 아이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집중력도 높아지고 이해력과 어휘력이 상당히 발전했으며, 무엇보다 세상의 의미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만족스럽다. 그는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사람들이 행한 일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중요한 일이었는지, 아주 오랫동안 심취해 그 감동을 내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부자가 되어 갖고 싶은 것을 다 갖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준영이는, 며칠 전 수업에서는 “선생님, 꼭 부자라고 해서 행복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져 나를 놀라게 했다. 물론, 부자가 되는 것 말고 다른 소원은 없다고 늘 말하던 그가 단번에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사람이 그렇게 바뀐다고 믿지도 않지만, 준영이가 의미 있는 삶의 고민에 첫발을 내디딘 것 같아, 앞으로 더 많이 생각해 볼 훌륭한 고민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이 독서에 흥미를 갖길 바라는 건, 그들이 당장 책 속에서 삶의 깨달음을 발견하길 원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의미 있는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깊이도, 경험도, 나이도 필요한 것 같다는 걸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히는 건, 세상에는 돈이나 개인적인 안락보다 훌륭하고 중요한 일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길 바래서이다. 좀더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책들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길 바란다. 그래서 한 권, 한 권 배울 점은 무엇인지, 또 잘못된 점은 무엇인지, 그들 스스로 비판적으로 검토할 줄 알길 바래서이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아무도 지혜로운 삶의 길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책 속에서 지혜로운 삶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길 가장 바란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책을 좋아할게 될까요?”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많은 어머니들 중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될까요?”라고 질문하는 분이 참 많다. 나는 그 분들께 부모님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을 꼭 드린다. 실제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 가운데, 부모님이 책을 좋아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책 읽어라, 어쩌라 말하지도 말고, 그저 부모 자신을 위해 읽으라고, 그러면 아이들도 살아가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독서를 받아들이게 될 거라고 말씀 드린다. 그리고도 여력이 된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꼭 검토를 거친 좋은 책들을 꾸준히 읽히라고 말씀 드린다. 물론, 두 번째 제안과 관련해 돌아가서 실천하시는 분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요즘은 준영이 지도를 끝내고 지현이를 도서관에 데리고 다닌다. 지현이는 준영이와 조금 다른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다. 준영이가 너무 잘 따라 주어 발전한 것에 고무된 나머지, 도서관에서 책 읽히는 걸 만병통치약인 양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회의를 지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하고 있다. 누구나 준영이처럼 책을 읽히면 상당히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지현이를 통해 접게 되었다. 여전히 모든 아이가 당면한 상황들은 저마다 특수하며,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도 요즘 내가 깨닫게 된 중요한 점이다. 책을 읽히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 나아가 내 교육이 모든 아이에게 효과적이지는 않다는 것, 이런 것들을 냉정하게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은 지현이 어머니께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드려야겠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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