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이유원님은 <일다>의 독자위원으로, 언론 모니터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 장자연 씨가 아까운 목숨을 끊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성매매특별법 위반 혐의와 강요죄 등으로 고소된 피의자들은 경찰에 소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대신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연일 ‘물타기 보도’를 내보내는 상황이다. 그 선봉장은 단연 사주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조선일보>가 될 것이다. 이는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리를 고발했을 당시 고발 내용은 외면하고 그 계기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중앙일보>의 태도와 닮았다. 경찰은 지난 9일 유씨를 불구속 입건했지만 유씨가 문건 작성에 개입한 목적과 경위, 주변의 배후 인물 등 어느 하나 분명하게 밝히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근거 없는 '장자연 리스트'만 확대 재생산돼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중략) 이런 정황을 보면 유씨가 기획사를 차리고 운영하는 과정에 재력을 갖춘 '제3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이런 의혹을 밝히고 유씨나 유씨 주변 인물이 '장자연 문건'의 작성과 유출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혀야 한다. -<조선일보> 2009년 4월 14일 “‘장자연 문건’ 유장호(전(前) 매니저)씨 배후 수사 왜 안하나” 중 <조선일보>는 유장호씨가 자본과 경험이 일천한데, 기획사를 차려 김성훈에 맞설 수가 없다며 막후설을 제기한다. 자신들의 사주가 피의자로 고소된 상황이다 보니 ‘문건 유출과 작성 경위’ 혹은 ‘소속사 간 분쟁’ 등에 자꾸 초점을 맞추며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다. 유씨 뒤에 제3자가 있건 없건, 김씨와 유씨 간 분쟁 때문에 문건이 작성됐건 아니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된 <조선일보> 사주가 피의자 선상에 오른 수사 대상이라는 것은 이미 강희락 경찰청장이 국회에서 시인했듯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물론 <조선일보>는 강희락 청장의 발언조차 보도하지 않았다. ‘사주 보호’와 ‘특종 경쟁’ 등 사익 위해 문제의 본질 흐려 핵심을 벗어난 보도에 집착하는 것은 MBC와 SBS, 각종 연예지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향은 KBS가 ‘장자연 리스트 입수’라는 단독 기사를 내보내며 심화됐다. 그 배경에는 매체 간 과도한 특종 경쟁의 폐해가 자리하고 있다. 연예지들은 스스로를 ‘터줏대감’으로 여겼던 연예계에서 출입처 접근성이 떨어지는 방송사가 특종을 잡은 데 대해, 그리고 MBC와 SBS는 경쟁사에 밀려난 데 분개했다. 이들은 KBS의 보도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낙종의 분’을 삭히려 했다. 예컨대 KBS가 입수한 문건이 거짓 문건이라거나, 취재윤리에 어긋나게 입수됐다는 식의 의혹 보도를 쏟아내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억측들은 모두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셋째, 탐정 개입설이다. 불법이지만 방송사 보도국에서 흥신소 직원을 활용해 문건을 입수했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한 변호사는 "방송사 보도국의 경우 간혹 정보기관 출신의 사설 탐정을 고용해 취재할 때가 있다. 이번 문건도 그렇게 입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간 스포츠> 2009년 3월 18일 "고 장자연 문건, 유출 가능성 3가지" 중 유 씨의 행적 또한 의심스럽습니다. 문건이 유출됐던 지난 13일, CCTV 분석 결과 오후 5시쯤 사무실에 들어간 유 씨는 KBS 기자들이 사무실 건물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 50분 후에야 사무실을 빠져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유 씨가 문건을 사무실 앞 쓰레기봉투에 버린 뒤 KBS 기자들이 문건을 가져갈 동안 사무실 안에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MBC 2009년 3월 26일 “故 장자연 前 매니저, 장 씨 문자 모두 삭제‥수상한 행적” 고인의 의도와 달리 문건이 사전 유출된 것이 죽음의 원인이 됐다면 이 부분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그러나 문건의 필적이 고인의 것과 일치한다고 밝혀진 이상, 그 자체에 대한 진위 여부나 타사의 문건 입수 과정 등 소모적인 공방은 자제했어야 옳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수사가 진척되는 상황에서 언론들이 힘을 합쳐 수사를 독촉해도 부족한 상황인 데다, 그 에너지를 좀 더 생산적인 취재를 하는데 쏟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보다는 ‘사주의 보호’, ‘속보 경쟁’ 등에 매몰되며 언론으로서의 공익적 책무를 저버렸다. 사익을 추구하는 이익단체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장자연 사건, 여성노동자에 대한 인권착취 문제 이밖에 사건을 바라보는 주류 언론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연예계의 불공정 계약에 대한 문제 제기, 둘째는 대한민국 권력집단(특히 리스트에 오른 언론)의 비리 사건이라는 관점이다. 자살한 탤런트 장자연씨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연예인들의 성상납과 기획사에 의한 소속 연예인 착취 등의 문제를 기록한 문건을 남겼다. -<한겨레> 사설 “연예계 악취의 근원, 발본색원해야” 중 왜 상층부 자본-권력계는 연예인을 탐할까? 그것은 우월적 힘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독특한 방식 중의 하나다. 방송사 프로듀서, 대기업 광고주, 유력 정치인들이 여성 연예인과 놀아보고 싶어하는 것은 성적인 관심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높은 지위의 능력을 검증받고 싶은 지배 욕구에서 비롯된다. -<경향신문> 시론 “성상납 스캔들은 ‘도미노 게임’” 중 문제는 사건에 대한 인식이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여성과 인권, 노동의 문제로 봐야 보다 그 본질에 근접할 수 있다. 역대 연예계의 불공정 계약에 따른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그들을 착취하는 매니저나 기획사는 남성이었다는 점, 또 접대를 받는 상류층 역시 남성권력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노동자, 즉 신인 여자연예인이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남성들로부터 어떻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했는지가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언론 <일다>와 <프레시안>의 관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사건을 연예계 먹이사슬 문제나 권력형 비리로 보는 대신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 문제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다>는 여성주의 저널답게 주류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쓰이는 ‘성 상납’이라는 용어가 다분히 남성중심주의적인 언어임을 환기시킨다. ‘상납’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자발성을 지적하고, 이번 사건은 권력을 쥔 남성 가해자와 노예계약으로 항거불능 상태에 빠진 여성 피해자가 뚜렷이 분리되는 성 범죄라는 점을 밝힌다. <프레시안> 역시 ‘성 상납’이나 ‘성 접대’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한 표 던진다. 불공정한 계약관계 속에 묶여 있는 연예인들의 위치를 고려한다면, 성상납이 아니라 성적 착취이며, 인신매매라는 용어가 더 적절합니다. 이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성적인 폭력의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사회적으로 피해를 입은 쪽이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기 일쑤입니다.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상납이라는 개념과 심지어 '공생관계'라는 인식 속에서 연예인들의 지위와 이미지는 더욱 하락하게 되고 그만큼 성적인 폭력에 취약해지게 됩니다 .-<일다> 2009년 3월 18일 "성상납 아니라 인신매매다" 중 사실 성 상납이나 성 접대는 결코 없다. 성폭력이나 성매매가 있을 뿐이다. 성공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섹스에 응했다면 성매매일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명백히 성폭력일 것이다. 모두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큰 죄이다. -<프레시안> 2009년 3월 31일 "장자연을 위해서 '지도층'을 말하지 말자" 중 특히 <일다>의 “다시 보는 이슈- 성매매와 접대문화”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큰 의미를 가진다. 이 기획물은 유독 ‘여자가 따라주는 술’을 좋아하는 한국식 유흥문화에 대한 뼈아픈 성찰과 “여성 존중하는 남성은 성구매를 안한다”는 설문조사 등을 비중 있게 다루며 의식의 각성을 촉구한다. 무수한 언론 보도가 쏟아졌지만, 이번 사건의 또 하나 핵심인 남성중심의 접대문화에 대한 지적이 없어 안타까웠다. 만약 한국의 모든 남성이 “성 매매나 술 접대 강요는 파렴치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제2의 장자연’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보도가 꾸준히 기획되고 널리 읽히는 게 절실한 이유이다. ‘제2의 장자연’ 막기 위해 발전적 대안 제시 필요해 장자연 사건이 터진 후 <중앙일보>와 KBS <추적 60분> 등 각종 매체에서는 여자연예인들의 고충과 고민을 담은 보도와 다큐 등을 앞 다투어 내보냈다. 마무리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부당한 요구를 떨치고 정도를 걷는 연예인 지망생에 대한 미담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런 후속 보도들은 현상을 나열하는 데 그칠 뿐 아니라, 심하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청률이나 구독률 장사에서 ‘한몫’ 챙겨보자는 속셈으로밖에 안 보인다. 또, “유혹을 거부하고 진정한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신인” 운운하는 클로징 멘트는 자칫 이 문제를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게 할 위험성마저 있다. ‘제2의 장자연’을 막기 위해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는 후속 보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역할을 <일다>와 같은 대안언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 신인연예인을 둘러싼 인권 착취는 주로 남성이 아닌 여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지, 연예인 집단에서 여성 연예인은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여성 연예인은 연예인 노조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등. 주류 언론이 외면한 문제를 풀어 가야 할 것이다. 발전적 대안 제시를 통해 북핵 사태와 ‘박연차 리스트’ 등에 밀려 점점 주변부 뉴스로 전락하고 있는 장자연 사건에 대한 관심을 오히려 증폭시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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