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부하는 <창의성 연습> 가운데,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들 중 한두 가지는 각 단계마다 난이도를 높여가며 공부하고 있다. 그 하나가 <무작위적인 단어>라는 제목의 공부다. 이 공부는 무수히 많은 명사들을 잔뜩 보따리에 담아놓고 한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이 수업을 ‘보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 예쁜 이름이다.
4학년생인 수정이, 지아와 <무작위적인 단어>를 공부했다. 2년째 공부하고 있는 이들은 작년에도 해본 적이 있어, 방법을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무작위적인 단어>는 ‘단어 보따리’에서 뽑은 명사를 이용해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단어 자체를 이용해도 되지만, 그것의 특징을 이용해 풀어도 된다. 첫 번째 문제에서 나는 <생일을 맞아 친구들 10명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외에 초대하지 않은 친구들 10명이 더 왔습니다. 이 친구들은 같은 반 아이들이기는 하지만, 친한 친구들은 아닙니다. 게다가 음식도 10명분만 준비를 했는데,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했다. 지아는 ‘시계’를 뽑았고, 그것을 가지고 해결책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준다. 음식재료를 사서 시간을 정해 준 다음, 짝을 만들어 그 시간 동안 빨리 음식을 만든다. 먼저 다 만든 팀은 엄마가 만든 음식을 한입 먹는다. 참, 각 팀의 음식은 모두 달라야 한다.’ 수정이는 ‘세탁기’를 뽑았다. 제시한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세탁기는 무엇을 넣으면 섞인다. 그래서 밀가루와 물을 섞어서 오븐에 빵을 구워서 더 온 10명에게 빵을 하나씩 준다.’ 아이들 중에는 간혹 그들을 그냥 쫓아 보내겠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수정이, 지아 모두 너무 귀엽고 마음씨 착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제 두 번째 문제를 풀 차례다. <동생이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봅니다. 텔레비전 때문에 숙제를 못하거나 일기를 쓰지 못할 때도 많아 식구들이 모두 걱정입니다. 동생의 텔레비전 시청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수정이는 ‘전등’을 뽑았다. 그리고 ‘전등은 불이 켜지고 꺼진다. 동생이 텔레비전을 볼 때에는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1시간이 지나면 텔레비전이 저절로 커지는 장치를 만들어 단다’고 했다. 지아는 ‘접시’를 뽑았다. 생각한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접시는 음식을 나누어줄 때 쓴다. 동생이 텔레비전을 볼 때,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을 동생 빼고 다른 식구들한테 준다. 그리고 접시에다 그것을 담아 음식냄새가 나게끔 동생 옆에서 놓는다. 그러면 신경질이 나서 텔레비전을 조금 보게 될 것이다.’ 또 이어서, 이런 문제도 냈다. <여러분의 부모님은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면서, 매일 공부만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돌릴 방법은 없을까요?> 이에 대해 수정이는 ‘바다’를 뽑았고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생각했다. ‘바다에는 조개껍질이 많다. 조개껍질을 꿰어서 목걸이를 만들고 편지와 같이 화장대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엄마도 목걸이와 편지를 보고, 하고 싶을 것을 하게 해주실 것이다.’ 지아는 ‘햄버거’를 뽑았다. 그녀는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직접 만들어서, 엄마가 없을 때 작은 편지도 써서 엄마한테 드린다. 그러면 엄마가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 좀더 자유롭게 해 줄 것 같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둘 다 편지를 곁들인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이들은 자기의 진심이 잘 전달되면 자기의 바람대로 될 거라고 기대하는 듯했다. 이런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나, 말은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진심이 거부되는 일이 또한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면서 그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 짠했다. 이제,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우리나라는 농촌에 비해 도시인구가 훨씬 많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농촌의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는 더욱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농촌에는 거의 노인들만 남아 농사를 짓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 보세요.> 이번 문제는 지아와 수정이 모두 수정이가 뽑은 ‘버스’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보기로 했다. 지아가 수정이가 뽑은 버스가 마음에 든다며 자기도 그걸 가지고 생각해 보고 싶다고 사정을 했는데, 그게 뭐라고 안 된다 할까 싶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지아는 그런 만큼 충분히 재미있고 개성 있는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지아는 ‘농촌버스에 노약자석을 만들고 그 의자에 안마기를 단다. 자리에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시원할 것이다. 그럼, 도시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러워서 시골로 올 수 있다. 또 다른 버스는 젊은이들만 이용하는 버스로 만들어, 직장 때문에 (아침)밥을 못 먹은 사람을 위해 밥을 준다. 또 자면서 갈 수 있도록 의자를 눕혀 침대를 만든다. 그럼 농촌으로 젊은이들이 오려고 할 것’이라고 의견을 발표했다. 수정이는 ‘버스는 움직인다. 그리고 의자도 있다. 집에 있는 의자를 이용하고 그 의자에 컴퓨터가 달려 있다. 그리고 의자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회사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머리가 너무 아프면 농사일도 한다. 굳이 멀리 있는 회사에 가서 일을 안 해도 된다. 그러면 젊은이들도 농촌에 많아질 것이다’라고 의견을 발표했다. 아이들은 어떤 단어를 뽑아도 그걸 가지고 재미있는 해결책을 내온다. 우리 어른도 문제에 부딪쳤을 때, <무작위적인 단어>를 이용해 해결방법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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