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인신매매되어 성산업으로 유입되고 있는 현실을 보도하고, 이같은 문제가 발생되는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기획연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필자 사카모토 치즈코님은 현재 연세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도와줘요. 친구가 팔렸어요.” 지난 7월 12일 일요일 밤 11시 5분.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바롯(Barot) 언니한테 갑작스런 메일이 왔다. “problem(문제)”이라는 제목이다. 나는 전에 1년 반 동안 마닐라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바롯 언니와 아주 친하게 지내왔다. 메일 제목을 보고,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 중에 누군가 또 돌아가셨구나 생각하고 허무한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치즈코, 내 친구가 거기 한국에서 팔렸어. 도와줘, 그를 구출해줘. 네 집은 평택에서 가깝니?” 짧은 메시지에 평택시 주소도 같이 적혀있었다. 나는 바로 메신저에 접속해 그녀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롯 언니의 설명은 이랬다. ‘친구가 한국에 갔는데 인신매매 당한 것 같다. 그 친구는 노트북을 가지고 한국에 갔는데 컴퓨터를 켜보니 다행히 무선랜이 떴다. 그래서 친구는 필리핀에 있는 바롯 언니에게 메신저를 통해 구출요청을 전해왔다. 바롯 언니는 한국에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메일을 보내, 이 사태를 알리려 했다. 하지만 그 날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답신이 온 곳도 없었고, 구출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바롯 언니도 더 이상 정보가 없어서, 우리는 걱정만 하고 있다가 마침 당사자인 친구가 인터넷에 접속되어 세 명이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루신다는 가수가 될 줄 알고 한국에 왔다고 했다. 취로비자(working visa)를 가지고 왔는데 현재 여권을 뺏긴 상태이며, 춤을 추라는 말도 듣고, 클럽분위기를 봐도 가수로 일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클럽주인을 ‘다디(Daddy)’라고 부르라고 해서, 주인이름도 잘 모른다. 다디 말에 따르면 평일 오후 5시부터 새벽 12시까지, 주말은 오후 5시부터 새벽 3시까지 근무해야 한다고 했다. 도착한 날 하루 근무했지만 도저히 못할 것 같아 울기만 했고, 하루빨리 밖으로 도망가고 싶지만, 전혀 모르는 곳이라 그러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제발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루신다는 에이전트에게 돈은 안 냈지만, 규칙을 위반했을 경우에 대한 조항들이 적힌 계약서가 있다고도 했다. 나와 각별한 사이인 바롯 언니의 친구에게, 내가 사는 서울에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평택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기가 막히게 놀라운 일이 내게 생긴 것이다. 아침이 오면 곧바로 한국에 있는 시민단체에 연락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루신다에게 질문을 해봤지만, 그녀는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내가 하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일단 내가 얻은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메신저를 끊었을 때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구출된 두 여성 13일 아침, 필리핀에서 한국의 성 산업으로 팔려온 인신매매 피해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두레방’에 연락을 했다. 두레방은 의정부에서 오래 활동해온 단체였지만, 7월부터 새롭게 평택에서 필리핀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위한 쉼터 ‘두레방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 지원시설’(My Sister's Home, 이하 쉼터)’을 개소한 상태였다. 박수미 소장님과 통화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바롯 언니도 국제회의를 통해 박 소장님과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일요일에 도움을 청하는 메일을 이미 보내놓은 터였다. 박수미 소장님은 바로 메일을 확인하고, 바롯 언니와 직접 인터넷전화 스카이프(skype)로 통화하기도 했다. 오후에 쉼터 선생님이 경찰을 동행하고 클럽에 갔고, 루신다는 무사히 구출돼 쉼터로 옮기게 되었다.
루신다가 구출된 다음날인 14일, 쉼터의 지원활동 중 또 하나인 ‘아웃리치’(outreach,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들과 자연스럽게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유용한 정보 혹은 생활 필수용품을 제공하는 활동)에 루신다도 같이 가게 되었다. 이날 아웃리치의 방문지역은 루신다가 구출된 송탄지역이 아니라, 성매매 클럽이 난립하는 또 다른 지역, 안정리(安亭里)였다. 거기서 루신다는 함께 한국에 온 말리싸와 우연히 재회하게 됐다. 루신다 보다 하루 늦게 구출된 말리싸는 벌써 속옷 비슷한 옷을 입고 기둥에 자기 고간을 문지르며 추는 야한 춤도 추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국경 넘어 거래되는 여성들, 세계화 시대의 인신매매 루신다가 끌려갔던 송탄(松炭)도, 말리싸가 성 접대를 강요 받았던 안정리(安亭里)도 미군 기지촌이다. 거기서 그들은 미군전용 클럽에 감금된 것이었다. 다시 설명하면 평택이라는 한국 땅에서, 미군에게,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 에이전트에 의해, 한국클럽으로 팔려간 것이다. 필리핀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한 외국여성을 모집한 사람들은 현지인이었다 하더라도, 여성들을 한국에 입국시키고 관리하는 것은 한국 에이전트다. 한국 에이전트는 여성들을 모집하는 역할을 맡은 현지인과 끌려온 피해여성 모두를 관리한다. 여성들은 한국 에이전트와 계약한다. 여성들은 클럽 경영자나 ‘손님’인 미군과는 계약하지는 않고, 돈도 받지 않는다. 즉, 에이전트와 여성들, 에이전트와 클럽 경영자 간 따로 계약을 한다. 따라서 에이전트와 클럽 경영자 간의 계약이 끝나도, 에이전트와 여성들의 계약이 남아 있으면 여성들은 또 다른 클럽으로 팔려가게 되는 시스템이다.
이번 사건에서 루신다와 말리싸가 성 산업으로 투입되었지만, 실제로 성교행위가 일어나는 성매매가 일어나기 전에 구출될 수 있었다. 그 배경에는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 그리고 국경/국적을 넘어 활동하는 여성들이 큰 역할을 했다. 루신다가 노트북을 가지고 한국에 왔던 것, 한국이 무선랜이 편하게 잡힐 수 있을 만큼 IT가 발달한 국가라는 것, 구조된 여성이 바롯 언니가 있는 필리핀 시민단체의 지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만큼 살아남으려는 힘과 용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평택에 있던 루신다가 메신저를 통해 마닐라에 있는 바롯 언니에게 구조요청을 한 것, 바롯 언니가 서울에 있는 나와 평택에 있는 단체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 의정부와 평택에 있는 여성단체가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해 적절하게 대처해주었던 것. 우리는 정보와 기술을 가지고, 인신매매 피해 자체는 막지 못했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런 조건들이 갖춰있지 않은 많은 인신매매 피해여성들이 한국에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다. 루신다와 말리싸 사건 이후 두 달 반 사이에 벌써 12명의 필리핀 여성이 쉼터에서 보호를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인신매매 이주여성 문제 한국에서는 태평양전쟁 때 끌려갔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이 여전히 이웃으로 살아가고 계신다. 1970년대 이후에는 미군을 상대하는 기지촌 여성들 문제가 알려졌고, 1980년대에는 일본남성이 한국여성을 찾는 소위 ‘기생관광’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한국여성의 성매매 피해에 대해서 충분히 알려져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성매매 피해 한국여성들은 때로는 더러운 매춘부로, 정조를 지키지 못한 창피한 여성으로, 반일 및 반미감정을 대변하며 정당화시키기에 이용당하는 ‘민족의 딸’이나 ‘어머니’로 표상되어 왔다. 이처럼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 결과, 피해여성들을 줄이기는커녕 이제 한국여성뿐 아니라 시대와 국경을 넘어 그 피해는 확대되고 있다. 인신매매의 구조도 국제적으로 확대되며, 복잡해지고 있다. 왜 조선여성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는가. 왜 미군기지 주변에 기지촌 성매매 클럽이 생겼으며, 또 왜 이주여성들이 거기서 일하게 되는가. 지금도 바로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신매매 현실을 볼 때, 그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왔는지 묻게 된다. ‘위안부’라는 말만 나오면 식상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가 자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먼 곳의 이야기, 혹은 지금 시대에는 일어나지 않는 옛날이야기, 전쟁만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 나라가 약해서 당한 이야기 같은 식으로 이해하고 만다.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비껴선 자리에, 아직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현재 한국의 미군기지 정책은 흩어져 있는 기지들을 평택으로 모으려 하고 있다. 미군기지 축소는커녕 대추리 상황과 같이 주민들을 추방시켜 미군기지를 확장하고 있다. 지금의 미군기지는 원래 일본군 기지였다가 일본 패전과 동시에 미군이 그대로 사용하게 된 곳이다. 만약 일본군이 기지를 만들지 않았다면, 제대로 정리하고 현장복귀를 하고 떠났더라면, 오늘 평택의 고통과 필리핀 여성들의 위기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평택문제에 관심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한국에서조차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평택 주변사람들 외엔 서서히 관심이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 눈에 보였던 문제들이 쉽게 보이지 않는 문제로 변해가고 있고, 그만큼 피해자들은 고립되어가고 있다. 루신다와 말리싸 사건도 서울에서 떨어진 평택에서, 필리핀 피해여성들과 미군 성 구매자 사이에 일어난 문제로 치부될 우려가 있다. 우리가 언제든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문제인데도, 사회권력구조는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문제를 이전시켜버린다. 그러면서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피해를 줄이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 한 지역, 어떤 개인이 노력하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 연대하고,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정보를 널리 유통시키고 대책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동떨어진 문제라고 볼 것이 아니라, 이 문제에 나를 접속시키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 접점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움직이는 것이 우리에게 시급하다. 오늘 이 순간에도 인신매매 피해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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