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복판에도 가을은 온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하는 여행

이경신 | 기사입력 2009/11/01 [23:57]

도시 한복판에도 가을은 온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하는 여행

이경신 | 입력 : 2009/11/01 [23:57]
집 앞을 나서면 길 위에 낙엽들이 수북하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고 걷다 보면, 바람이 없는 데도 머리 위에서 하늘하늘 낙엽이 춤추듯 떨어진다. 어느덧 녹색 잎이 색을 바꾸고 있었다. 나무의 겨울맞이가 시작된 것이다.
 
10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다, 지리산 단풍이 절정이다 하며, 단풍소식이 요란하더니 몇몇 사람들은 단풍놀이를 떠났다. 또 남은 사람들은 그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는 바로 이곳에서도 진행 중이다. 우리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일 따름이다.
 
가을빛, 향기 가득한 나무, 잎, 열매
 
▲ 산수유   © 이경신
길 위에 뒹구는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파리 몇 장을 주워들었다. 갈색 빛이 도는 노오란 벚나무잎, 아직 푸릇푸릇 노르스름한 감잎, 붉은 듯 노란 빛깔 사이로 갈색 점들이 박힌 튤립나무잎. 모두 책장 사이에 조심스레 끼워두었다. 한참 뒤 책을 펼치면, 잊혀진 이 가을도 함께 내보이리라.

 
올해는 유난히 단풍빛깔이 선명치 않다. 공원, 하천, 가로수길 지천에 있는 은행나무들을 아무리 둘러 보아도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찾을 수가 없다. 아직, 채 물들지 못해 푸르스름하거나, 아니면 희끄무레한 누런 빛을 띠거나, 칙칙한 갈색으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은행잎 줍기를 포기했다.
 
이번엔 중국단풍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아직도 녹색 잎이 무성하다. 평소에는 너덜너덜 초라한 수피로 외면당하다가도, 가을만 되면 핏빛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중국단풍이지만, 아직은 가로등 근처 나무들만 붉다. 오히려 느티나무, 벚나무, 플라타너스, 회화나무의 녹색, 노랑, 갈색이 뒤섞인 잎들과 그 사이로 잘게 부서지는 햇살이 더 마음을 끈다. 빛과 어우러진 색의 향연. 수채물감과 붓을 꺼내 들고 싶다.
 
빛 바랜 잎들만큼이나 열매, 과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고 보니, 공원, 아파트 화단에 주렁주렁 매달려 노오랗게 익어가던 모과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그 중 세 개는 우리 집 신발장 위에 놓여 지금도 달콤한 향내를 내뿜고 있다.
 
지난 해 여름, 벌레, 농약과 싸우다 지쳐버린 우리 동네 꽃사과나무는 올해 내내 잎도 제대로 달지 못했다. 그런데, 공원에서 몇 그루는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동그랗고 빠알간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가 참 신통스럽다. 잠시 꽃사과 열매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지나갔지만, 산수유 열매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평소답지 않게 열매 하나를 똑 따서 주머니에 잘 넣고 돌아왔다. 노란 모과 곁에 빨갛고 작은 열매 하나를 나란히 올려두고 보려 했으나, 또르르 굴러 어디론가로 숨어 버렸다.
 
태풍이 없는 편안한 여름을 난 덕분인지, 감나무에는 주황색 감이 가지가 휘도록 매달려 있었다. 까치조차 거들떠 보지 않는 걸까? 이제는 새들도 맹독성 농약의 정체를 간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열매는 가을의 풍성한 ‘맛’을 잃었다. 눈요기나 방향제 역할만 할 뿐이니, 아쉽다. 그래도 사람들은 은행알 줍기에는 여전히 맹렬하다. 은행알은 괜찮을까? 이제 은행나무도 높은 가지에 열매 몇 알, 겨우 달고 있다.
 
하천 가에도, 산 속에도 풍성한 가을
 
▲  한나 홈스 <풀 위의 생명들> 지호, 2008
발길을 돌려 하천 돌다리를 건너다 주변을 휙 둘러보는데, 썰렁한 느낌이다. 여름 내내 우리 곁을 지켜주던 백로와 왜가리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아서일 거다. 하지만, 얕아진 하천물 때문에 못 떠나서인지, 크고 작은 잉어들이 떼지어 몰려 있다.

 
하천 가에는 바람에 몸을 맡긴 물억새의 은백 이삭, 짙은 갈색의 수크령과 황금빛 강아지풀이 어우러져 있다. 사이사이, 흰색, 보라색, 분홍색… 갖가지 색깔의 코스모스들이 하늘거린다. ‘노랑 코스모스’-코스모스를 닮은 노란 꽃을 피우는 국화 과의 원예식물-도 야생화와 풀 틈에 끼어 무리를 이뤘다. 올 여름에 만발했던 여귀와 고마리는 아직 그 귀엽고 예쁜 꽃을 거두지 않아 반갑다.
 
저녁나절 하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풀숲 너머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꽥꽥’ 거리는 터오리 소리가 들리곤 한다. 텃새이니 철새가 떠난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나 보다. 여름 내내 귀에 쟁쟁하던 매미소리 대신, 지금은 귀뚜라미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그득하다. 귀뚜라미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다 보면, 비로소 ‘가을이 왔구나!’ 싶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아갔던 동네 산에서는 도토리를 물고 날던 어치를 만났었다. 지금쯤 다람쥐와 청설모는 겨우살이 준비, 도토리 저장을 끝냈을까? 다람쥐는 가끔 눈 앞에 나타났다 숨어버리곤 했지만, 그 많던 청설모는 자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삐죽삐죽 탐스런 꼬리를 흔들며 청설모가 날렵하게 오르내리던 참나무에는 딱따구리가 매달려, 숲이 울리도록 ‘딱딱딱’ 나무를 쪼아대고 있었다. 동네 산에서 딱따구리를 만난 것이 처음이라, 마냥 신기했다.
 
산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숲은 울긋불긋 가을이 완연하다. 이토록 화려한 잔치가 끝이 나면, 눈꽃이 피지 않는 한, 봄이 올 때까지 숲은 한동안 황량해 보일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단풍에, 가을꽃 치장이 한창이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길가에는 보랏빛 꽃향유가 만발해 있었다.
 
내 감각을 열어 놓고
 
올 가을은 평소보다 일거리가 많아졌다. 그래서 원거리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까운 산도 자주 찾을 짬이 없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거나 바깥 볼 일이 있을 때, 가로수 길을 천천히 걷거나 동네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다 벤치에서 한숨 돌리곤 한다. 또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어 밤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하천 가를 산책하기도 하고,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그 기회를 이용해 동네 산을 함께 오르기도 한다. 그조차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컴퓨터 앞에 앉은 채로 고개만 돌려 창 밖을 잠시 내다 본다.
 
이처럼 올 가을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여행 중이다. 바쁘고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지 않더라도 여행은 가능하다. 오히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원거리 이동으로 몸을 피로하게 할 염려도 없고, 특별히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경제적 부담도 없다. 그냥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 감각을 열어놓고, 내 감성을 깨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일하고 있는 곳에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낯선 이야기와 풍경은 넘쳐난다. 비록 회색 빛 가득한 도시 한복판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가을은 온다.
지금 당장 창을 열고 하늘빛부터 느껴보자.
 
*함께 읽자. 한나 홈스 <풀 위의 생명들> 지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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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2009/11/02 [11:25] 수정 | 삭제
  • 저도 어제 뒷산에 올라,
    내장산단풍 부럽지 않다며
    가을을 만끽했습니다.
    섬세하게 바라보면 온 세상에 가을이 왔더라고요..
    가끔 바라보는 하늘은 높아서 답답한 가슴 뚫리게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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