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여, 생각을 바꿔 아이 낳아라?

일방적이고 무의미한 ‘출산장려 공익광고’ 캠페인

이신혜 | 기사입력 2009/12/10 [17:12]

여자들이여, 생각을 바꿔 아이 낳아라?

일방적이고 무의미한 ‘출산장려 공익광고’ 캠페인

이신혜 | 입력 : 2009/12/10 [17:12]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광고 하나.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출산장려 캠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좋았던 공익광고의 크리에이티브는 오간 데 없고, 일방적이고 무의미한 메시지만 난무하더군요.
 
▲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제작한 출산장려 캠페인 CF의 한 장면
“아이보다는 생활의 안정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사교육비가 힘들어 동생 없는 외로움을 더해주었습니다.
동생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이는 당신과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대책이 없다는 말 외엔 할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출산이 장려될까요? 광고를 보고서 당장 작업(?)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요컨대 이번 출산장려 캠페인 광고는, “생활의 안정”이나 “사교육비”라는 현실적 문제는 제시하면서, 그에 따른 해답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광고를 본 순간, 수년 전 개인적인 출산경험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당시 모 대행사에 근무하고 있던 저는 아이를 낳고 출근하자마자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가 취급하는 아이템이 갑자기 비중 없고 보잘 것 없는 아이템으로 바뀌어버렸다는 겁니다. 게다가 제가 총괄하던 업무는, 제 아래서 일하던 남자대리가 꿰차고 있었습니다. 기혼여성들이 출산 후 겪게 된다는, 말로만 듣던 황당한 사건이 제게도 일어났던 거였지요.
 
대행사의 성격상, 비중 없는 아이템이란 ‘매출’과 직결되는 일이고, 이는 ‘실적 저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지요. 결과는 뻔한 것이었습니다. 한동안의 맘 고생과 그보다 더한 좌절의 쓴맛을 보며, 시련의 세월을 모질게 견뎌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악몽을 극복하고 이렇게 어엿하게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때의 참담했던 기억은 아마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짐작조차 못할 겁니다.
 
이 사회에서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또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험하게 생존하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을 감내하고 또 강요 받고 있는지요.
 
그런데 이번 출산장려 공익광고 캠페인을 보면, 마치 요즘 출산율 저조현상이 오로지 여성 본인의 사고방식과 선택의 문제라는 듯이 보여집니다. “이기적인(?)” 여성들을 향해 ‘어서 생각을 바꾸어서 아이를 낳으라’고 캠페인을 하는 것인데, 어디 현실이 그런가요? 


출산율 저조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기혼여성들의 출산기피 현상과, 높아가는 남녀의 평균 결혼연령 때문입니다.
 
가정과 일을 양립하기엔,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처절하다는 것을 이미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들. 현실이 이러할 진데 누군들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할 것이며, 또 결혼한들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흔쾌히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임신하는 순간부터 회사에 눈치가 보이고, 또 얼굴에 철판 까는 심정으로 아이를 낳은들 누가 맡아 키워주며, 어렵게 누군가에게 양육을 맡긴들 그 비용 또한 어찌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이래도 출산과 양육이 개인적인, 특히 여성들이 생각을 바꿔야 할 문제로 치부되어야 할까요?
 
언젠가 신문기사에서 출산과 관련한 프랑스의 정책이 소개되었는데, 요점인즉슨 “출산과 육아는 나라가 책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공익광고 캠페인의 메시지처럼, 아이가 ‘나라의 미래고 국력’이라면, 출산과 육아에 대한 본격적인 정책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 낳고 셋째 나으면, 수당 주고 보육비 보조해 주는 수준이 아닌, 여성인력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보육과 양육을 책임져 줄 현실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개인, 혹은 가정의 ‘이기주의’ 발로인 것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수년 전 직장에서 받았던 불이익으로 인해, 맘이 또 울컥했나 봅니다. 적어도 공익광고라면, 캠페인의 주요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번 졸작광고를 대폭 수정하던가, 그만 내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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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린 2018/05/05 [14:13] 수정 | 삭제
  • 여자들보고 남자무서워하지말고 맘놓고 사귀고즐기라는 광고인데 뭐잘못
  • 학이 2017/12/19 [12:23] 수정 | 삭제
  • 전율스런 광고군요...개인을 수단적 존재로 여기는 전체주의 국가관이 보입니다.
  • 2011/09/19 [17:33] 수정 | 삭제
  • 출산과 양육은 '엄마의 몫'이라는걸, 무려 공익광고에서 저렇게 노골적으로 얘기하다뇨
  • 깔루아 2010/08/19 [22:42] 수정 | 삭제
  • 공익광고가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일회성의 감동으로 갑자기 출산율이 높아질까요?양육을 한다는 것은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제일 먼저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책을 바꾸고 남자들도 양육을 꼭 함께 해나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리라 봅니다.
  • 테레지아 2010/07/20 [10:53] 수정 | 삭제
  • 정부의 출산장려에 동참한 3형제 키우는 장애엄마입니다.초,중,고생의 현재의 우리가정은휘청거리고 허우적거리며 살구 있습니다. 혹시라도 우리자녀들에게 도움되는 정책지원이 없나 귀를 쫑끗해보지만,현실은 참 냉혹합니다.내 몸은 망가져 있지만 우리아이는 망가지지 않게 도와주세요~
  • - 2010/06/26 [00:27] 수정 | 삭제
  • 저는 이 광고를 듣는 순간 광고 쓰일돈을 보육원 하나 만드는데 쓰이는게 출산율을 훨씬 높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_-
  • 육아는 전적으로 2010/02/07 [03:09] 수정 | 삭제
  • 엄마와 아빠의 몫이라는 정부의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프랑스처럼 정부의 몫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있어야 해요. 왜 이렇게 미국처럼 복지를 싱겁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세금도 절대 안 올리려고 하고. 부자들이 잉여가치 이런 것들을 통해서 가난한 자들로부터 합법적으로 훔쳐가는데 가난한 자가 부자들로부터 합법적으로 훔쳐오려면 복제와 세금이 빵빵해야하는 거거든요.
  • 맞습니다 2009/12/28 [10:21] 수정 | 삭제
  • 올리브님,정말 시원한 지적 하셨네요^^ 그리고 육아는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남성들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겠지요^^
  • 올리브 2009/12/24 [21:23] 수정 | 삭제
  • 무상의료 무상교육에 직장탁아소 의무설치 정도는 되어야 아이낳지 않을까요?
  • 게다가 2009/12/24 [02:17] 수정 | 삭제
  • 이 광고를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전적으로 여자의 책임이라는 듯이 보여지더군요.
    아이는 여자 혼자 낳고 여자 혼자 기르나요?
    정말 이해 안되는 광고 입니다.
  • 행복 2009/12/22 [15:59] 수정 | 삭제
  • 무뇌아집단이 만든 광고인가?????? 뻔히 사교육과 생활고를 거론하면서도 아이를 낳겠다는 말도 안돼는 엉터리 광고 아~~ 열불난다. 영어 사교육비라 없애라. 우리말도 아닌 영어에 뭔 돈을 그리 쳐박는지....
  • 일하다가 2009/12/22 [14:07] 수정 | 삭제
  •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듣다가 여기저리 하 도배를 해대는 통에 오히려 반감만 늘어납니다. 이젠 라디오에서마저 들리는군요. 대책도 없이 엄마가 되고 싶고 동생을 선물(?) 해주고 싶다고 끝나다니. 아~ 열폭해서 원. 이 광고에 대한 생각을 좀 알고싶어 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글 보니 반갑네요.
  • 코흘리개 2009/12/15 [15:23] 수정 | 삭제
  • 아! 이 광고에 대한 이야기가 이곳에 있었네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광고입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생활의 안정, 사교육비.. 그래서 어찌 하겠다는 대책도 없이 무조건 낳으라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렇게나 생각이 없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 지나가다 2009/12/15 [08:18] 수정 | 삭제
  • 확실히 차세대 트랜드엔 여성이 중심에 있습니다. 여성 경력이 단절되지 않을수 있는 법적,정치적,사회적 제도의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느낀답니다.
  • 그래요 2009/12/14 [17:45] 수정 | 삭제
  • 출산후 복귀하고 나서 직장에서 느낀 그 불이익...저도 그러한 불이익을 겪었답니다. 정말 아이가 내 아킬레스건이란 생각을 들게 하는 직장생활....각종 법제도 뿐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걸 개인의 몫으로만 인식하는 사회 전반의 인식전환이 함께 가야 할 듯 해요~~
  • 트윈수머 2009/12/13 [21:55] 수정 | 삭제
  • 감사합니다. 근데 이 광고 보는 여성들의 생각은 모두 같은데, 남성들은 또 그렇지만도 않은것 같더라구요.. 역시 입장의 차이, 남녀의 차이, 아무리 부부라도 존재 하는 것 같네요..
  • 오투 2009/12/13 [21:35] 수정 | 삭제
  • 저도 이광고 정말... 보고 화났습니다. 정말.. 많이요.. 이글 보고 참 반갑네요
  • 2009/12/11 [16:08] 수정 | 삭제
  • 살아있는 여자의 삶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들이 애를 낳을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여자에게는 그득한 관심을 가지는 걸 보면, 이들에게 여자는 씨받이밖에 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 삽살고양이 2009/12/11 [01:07] 수정 | 삭제
  • 이 정부가 그런 것 같습니다. 지하철역, 철도역 마다 4대강 살리기 홍보부스는 또 어떻구요? 지하철 칸칸마다 있는 한나라당 광고, 정부정책 광고는 어떻구요. 미디어를 이용한답시고 그러는 것 같은데.. 모르는 사람은 넘어갈지 몰라도 조금만 관심있는 사람들은 코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공허한 정책, 공허한 슬로건. 대책이 없네요.
  • 트윈수머 2009/12/10 [18:59] 수정 | 삭제
  • 4대 매체에 거의 도배하고 계신듯.. 광고 보신 분들의 생각이 많이 비슷한데.. 광고 효과 조사는 안 하고 계신듯 하네요..
  • 수면 2009/12/10 [18:45] 수정 | 삭제
  • 저도 이 광고 보고서 처음 든 생각은 공익성 캠페인인데도 진짜 무의미하다는 거였어요. 쓸모없는 광고를 왜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임신이나 출산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짜증나게 만드는 광고일 것이 뻔하구요.
    근데 이 광고가 요즘 어딜가나 나오더라구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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