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성장시키는 길

지행합일(知行合一)에 대한 사색

이경신 | 기사입력 2009/12/14 [00:05]

내 삶을 성장시키는 길

지행합일(知行合一)에 대한 사색

이경신 | 입력 : 2009/12/14 [00:05]
화석연료에 의존한 전기 사용을 줄이자는 생각에서, ‘혼자 엘리베이터 타지 않기’를 실천하기 시작한 지도 수개월째다. 물론 시간에 쫓기거나 몸이 피로하다 싶을 때, 마침 1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는 경우라면 나름대로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사실 조금 다리가 아프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단으로 오르내린다면 굳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눈 앞에 놓고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 명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는, 그 속에 끼여 편리를 맛볼 수 있도록 실천의 수위를 낮춘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때때로는 지켜내지 못한다. 날씨가 춥다거나 짐이 무겁다는 핑계로, 혼자서도 엘리베이터에 그대로 ‘훌쩍’ 올라타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생각과 행동의 간격을 줄여나가며
 
▲  후쿠오카 켄세이 <즐거운 불편> (달팽이)
이처럼 아무리 좋은 생각에 기반해 이끌어낸 작은 결심이더라도, 지켜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생각과 행동의 간격은 벌어져 있기 마련이다.

 
좋은 삶, 행복한 삶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생각을 하나 둘 퍼올리게 된다. 하지만 좋은 생각을 얻게 되었다 해도 바로 실천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한다. 그동안 몸에 밴 나쁜 습관을 고쳐나가는 데는 분명 변화를 향한 굳은 의지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습관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명의 이기에 젖어버린 생활을 좀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해왔다. 때로는 큰 어려움 없이 바른 생각만으로도 행동을 조절할 수 있었지만, 때로는 마음만큼 그리 쉽지 않았다.
 
자가용차 없이 지내기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니까. 만약 대중교통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면 발품을 좀더 팔면 된다. 여름에 에어컨 없이 사는 것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너무 더우면 움직임을 자제하고 부채를 이용하면 된다. 그래도 견디기 힘들면, 선풍기의 힘을 좀 빌린다. 겨울에 난방을 줄이는 것도, 어린 시절 추운 집에서 자란 덕분에 큰 노력 없이도 해낼 수 있었다. 오히려 실내공기가 열기로 답답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춥다고 느껴지면 옷을 겹겹이 입고, 실내화를 이용하는 것으로 충분히 견딜 만하다.
 
그런데 전자렌지 없는 삶은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특히 겨울이면, 냉장고에서 꺼낸 음식을 데워먹는 일이 번거로웠다. 그러다 점차 데우지 않고 먹는 데 익숙해지고, 차게 먹기 힘든 음식만 데워 먹으니 큰 불편은 없었다. 텔레비전은 없어져 오히려 더 좋기까지 하다. 간혹 쓸데 없이 멍하게 TV를 보며 시간을 버리는 일도 없고, 오히려 가족과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 좋다.
 
이렇게 하나 둘 편리한 물건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지만, 현재 내 도시생활 속에서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프린터 없이 지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찜통더위 속에서 음식을 보관하고 이불빨래를 하려면 가전제품의 도움 없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 나가려면 컴퓨터 문서작업, 인터넷 소통, 그리고 자료의 프린터 출력은 필수다. 게다가 먼 길을 오가는 데 있어 대중교통까지 외면하기는 어렵다. 자전거로 도로에 나서기에 실력도 부족하고,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가 두렵다.
 
이처럼 좋은 생각과 삶의 실천 사이에는 깊은 고랑이 놓여 있다. 그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 차이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작은 실천들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듯하다.
 
그래서 요즘 나 자신에게 요구한 실천들은 혼자 엘리베이터 타지 않기, 세탁기는 일주일 2회 정도만 사용하기, 될수록 걸레질을 하고 청소기는 적게 사용하기,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의 코드 뽑아놓기, 멀리 이동하여 일하거나 노는 기회를 적게 만들기 등. 사소한 일들이지만, 아직까지도 100% 지키고 있지 못하다.
 
일상의 작은 실천들을 지속적으로
 
아무리 좋은 생각이 많아도, 그 생각이 행동이 되고 삶이 되지 않는다면 곤란한 일이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좋은 생각을 내 주변에서 손쉽게 퍼 올릴 수 있어 더욱 그런 것 같다. 어쩌면 좋은 생각들이 내 생각이 아니라서 내 몸에서 겉돌아 행동과의 간격이 더 커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그 간격이 너무 벌어지도록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훌륭하고 좋은 말만 떠벌리지 않도록, 생각만 갈고 닦아 생각과 행동의 차이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길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생각 없이는 좋은 행동에 이르기 어렵기 때문에 생각의 방향을 잘 잡아나가려 고심하는 것, 생각을 넓히고 깊게 하려 애쓰는 것은 중요하다. 설사 남의 생각을 그냥 덥석 받아 안았다고 할지라도, 좋은 생각이 좋은 행동이 되고 좋은 삶으로 통합되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좋은 생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면, 남의 생각도 어느새 진짜 내 것이 되어 어색한 구석이 없어진다.
 
결국 좋은 관점과 바른 방향에서 생각을 키워나가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에 옮겨 좋은 습관으로 굳어지도록 하는 것, 좋은 습관을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면서 좋은 삶을 키워가는 것, 생각과 행동의 거리를 끊임없이 조절해나가는 것, 쉽지 않지만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신의 삶이 성장하길 바란다면 말이다.
 
대단하고 거창한 삶을 그리면서 주눅들 필요는 없다. 일상의 작은 실천들로 천천히 조금씩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좋은 삶을 꿈꾸며 나아가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람마다 실천항목을 달리 잡을 수도 있고, 각자 여건과 의지에 따라 실천의 수위를 조절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정신과 몸이 나태하도록 방치하지는 말아야겠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실천들 가운데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은 ‘해산물 줄여나가기’이다. 문명의 이기에서 등을 돌리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동물의 생존권을 지키는 데 동참하는 일은 더욱 힘들다. 어릴 때부터 바다 가까이 살아 해산물을 주로 먹고 자란 나로서는 익숙한 식재료를 식탁에서 멀리하는 일은 생각만해도 어렵다. 내가 완전한 채식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해산물 줄여나가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마도 ‘해산물 먹지 않기’까지 도달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 자신을 독려해가며 한걸음씩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뿌리깊은 습관도 바꿔놓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무튼 난 생각과 행동이 너무 멀어질까 두려워, 항상 스스로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운다.
 
* 함께 읽자. 후쿠오카 켄세이, 김경인 역 <즐거운 불편>(달팽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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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롱고스 2009/12/16 [14:33] 수정 | 삭제
  • 저도 지행합일의 삶을 추구하는데, 늘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드는 기분이네요^^; 그래도 이경신 님의 글을 읽고 힘내서 또 살아보렵니다^^감사해요~!
  • 일다 2009/12/16 [12:47] 수정 | 삭제
  •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즐거운 불편도 한번 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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