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자로 방송된 MBC PD수첩은 “IMF세대, 10년을 말하다” 편에서, IMF때 첫 직장을 구해야 했던 대졸자들의 고생담을 들어보고 10년 후 현재 삶이 어떠한지를 보도했다.
그런데 PD수첩에서 ‘IMF세대’의 표본집단으로 삼은 것은 모 대학교 경영학과 92학번 남성들이었으며, 그들의 아내들도 간간히 등장했다. PD수첩을 보는 내내 맘이 언짢았다. PD수첩의 관점대로라면 1997년 구직난을 겪은 남자대학생 92학번이 ‘IMF세대’의 중심이자 대표 세대인 셈인데, 과연 그러한가? 그 시기에 첫 직장을 구하느라 고생했던 사람들의 형편을 모 대학 92학번 남성들이 대표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PD수첩은 제작진들의 경험 내에서 IMF 세대를 규정하여,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IMF세대를 이야기하는 오류를 범했다. IMF때 고생한 사람들을 꼽아보자. 우선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대졸자들보다 쉽게 직장을 구했다고 이야기할 순 없을 것이다. 또, 1997년에 직장을 구하려 한 대졸여성들은 대졸남성들보다 더 힘든 위치에 있었다. IMF이후 여대생취업난은 여성노동계의 주요한 이슈였다. 그러나 PD수첩의 IMF세대-92학번 취재는 철저히 IMF를 겪은 남자 92학번을 중심에 두었다. 재미있는 것은 IMF시대를 겪은 여성들도 ‘92학번 남자의 아내’ 자격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번 PD수첩 방송내용은 적은 숫자의 동질성이 높은 모집단인 대학 ‘동창생’을 중심으로 IMF를 특정 경험집단으로 한정시켰고, 그 결과 정확한 보도에서 멀어져 신변잡기로 머물게 되었다. 제작진들이 ‘대학 졸업’이라는 조건을 기본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학번이 마치 나이와 같이 누구나 가지는 것, 혹은 대표로 쓸 수 있다는 오류에 빠진 것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남성’으로 대표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특정한 학번이 특정한 세대가 된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386세대, IMF 92학번. 이런 방식은 너무나도 ‘대학’ 중심이다. 20살에 반드시 대학을 가야만 시대를 대표하는 게 아니다. 진보진영에서도 성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학번’중심 문화다. 이번 PD수첩은 그동안 간과되어온 학번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씁쓸한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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