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골풀 옆을 미끄러져 지나갈 때에 안감힘을 써서 아름다운 골풀을 많이 따긴 했지만, 앨리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는 늘 더 예쁜 골풀이 있는 것이, 꼭 약이라도 올리는 것 같았다. (앨리스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앨리스는 고집스럽게 멀리 떨어져서 돋아 있는 골풀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늘 더 멀리 있네!" 초등학생일 때, 읽다가 던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궁금해진 것은 정말 뜬금없이 든 생각이었다. 어린이 철학프로그램이나 독서프로그램을 위해 동화책은 꾸준히 검토하고 있지만, 프로그램 계발과 상관없이 동화가 읽고 싶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게다가 읽고 싶은 것이 어린 시절에 읽다가 포기한 동화책이라는 것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너무 지루해서 다 읽지 못한 책들 가운데 하나다. 토끼 굴로 떨어진 앨리스가 채 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그만 지루해져 책장을 덮은 이후 처음으로, 앨리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며칠 전에는 다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난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어떤 책이나 척척 읽는 건 아니다. 읽다가 조금이라도 지루하고 재미없어지면, 바로 읽기를 포기하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의 습관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이유로 다 읽지 못하고 덮은 책들이 많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지루해서 포기했고, <올리버 트위스트>는 주인공이 너무 고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들자, 바로 책장을 덮었다. 그것은 <소공녀>와 <집 없는 아이>를 읽으면서 너무 애간장을 녹여, 아무리 해피 앤딩이라 해도 주인공이 고생하는 책은 딱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 이후였다. 또 동화책의 삽화가 너무 무서워 읽지 못한 것도 있다. 우리 집에 있는 <모히컨 족의 최후>는 그림이 어찌나 무섭던지, 나는 다른 책들은 그래도 몇 장 읽기를 시도했다가 포기했지만, 그 책은 한 줄도 읽지 않고 덮어버렸다. 그러다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동화책도 졸업을 했다. ‘나는 다 컸으니까, 이제 그림이 있는 책은 읽지 않겠어!’라고 다짐하고, 동화책들은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새롭게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그림도 없이 깨알 같은 글씨가 세로로 늘어서 있는 한국 소설책들이었다. 그렇게 꼭 30년이 지나, 문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떤 얘기였을까? 하는 궁금함에 그 책을 집어 들었다. 그렇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나 머리맡에 책을 던져놓고 잠으로 떨어졌지만, 다시 앨리스가 궁금해지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인내심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거울나라의 앨리스>도 읽었다.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이 동화책으로 엮을 것을 염두하면서 썼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구성이 탄탄해, 나는 더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들은 l800년대에 쓰여진 동화라는, 역사성을 생각하면서 읽어야 감동적인 것 같다. 당시로서는 참으로 새롭고 신선한 시도였다고 하는데, 읽는 내내 그 점은 감동을 주는 요소였다. 또 어렸을 때라면 눈여겨보지 못했을 점들에 주목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고민을 던지는 대목들이 많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고양이에게 가르쳐 달라고 한다. 이 질문에 고양이는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려 있어.”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내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길이 없다고 느낄 때조차, 여러 곳으로 향한 길은 이미 항상 내 앞에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왜 지금 여기 이렇게 있는 거야!’ 라고 탄식할 때 역시, 이미 내가 닿을, 바로 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꿈을 꾼다면, 그 꿈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도 본다. 다음에는 <올리버 트위스트>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그림이 너무 무섭지 않은 <모히컨 족의 최후>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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