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의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에띠엔느가 ‘어머니의 날’ 나에게 선물했던 그림을 발견했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흐뭇한 미소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지금쯤 청소년이 되어있을 것이다.
나는 직장 일에 바쁜 그들의 엄마를 도와,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거나 저녁을 준비해주곤 했다. 간혹 부모가 외출하는 밤에는 그들을 재워주기도 했다. 에띠엔느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그의 숙제를 봐주고 있었다. 학교에서 적어준 짧은 동시를 읽어보는 것이 숙제였다. 몇 번 읽으라는 표시는 물론 없었다. 아직 글을 완전히 깨치기 전이라, 에띠엔느는 학교에서 읽었던 것을 기억해가면서 떠듬떠듬 겨우 한 번을 읽었다. 나는 당연히 이제 본격적인 읽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래, 이제 다시 한 번 읽어보자” 했더니, 그는 한 번 읽었기 때문에 이제 숙제를 다 했단다. 어이가 없었지만, 잘 달래서 좀더 읽혀야지 마음먹고 “에띠엔느야,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몇 번씩 읽어 본단다” 했더니, “학교에서 많이 읽었어!” 하면서 팔짱을 끼고는 팩 돌아앉는다. 좀더 끈기를 가지고 다시 제안했다. “우리 학교놀이 하자! 네가 선생님하고, 나는 학생하고. 네가 한 줄을 읽으면 내가 따라 읽을게. 네가 나한테 읽기를 가르쳐 주는 거야! 너무 멋지지 않니?” 나는 스스로 참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고 마음속으로 흐뭇해 하고 있는데, “너도 읽기 배우고 싶으면 학교 가서 배우면 되잖아!”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저 하하 웃었고, 그 날 에띠엔느가 동시를 더 읽어보게 하는 건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에티엔느의 그림 속에는 꽃이 두 송이 피어 있고, 그 위로 새가 날고 있다. 그 시절, 에티엔느의 그림 속에는 늘 새들이 날고 있었다. 그 새들 속에서 나는 천진하고 자유로운 소년을 본다. 오늘은 그 아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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